교회가 타락했을 때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그 타락했음을 알고 이에 반응한다. 중세 교회가 타락했을 때 교회 안에서의 변화는 지난 호에 다루었 던 종교개혁이다. 한편 교회 밖에서 일어난 움직임이 이번에 다루게 될 ‘계몽주의’이다. 종교개혁은 교회 안에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몸부림인 반면, 계몽주의는 타락한 교회를 떠나 지성으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탈 교회적 분위기(separation from church)에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과 계몽주의가 시작할 때부터 근대 (modern age)라고 부른다.

계몽주의는 ‘17~18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광범위한 사회 진보적 지적 운동’으로 표 현한다. 그러나 이는 계몽주의 쪽에서 바라보며 정의한 것이지, 성경적으로 보자면 교회와 성경을 배제한 인간의 지성을 통해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움직임이다. 종교 개혁은 중세 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지는 상황 속에서 다시 진리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인 반면, 계몽주의는 교회가 타락하자 유럽이 복음을 받기 이전의 그릇된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자신들이 이를 인지하든 못하든) 자연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쪽에서 보자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했던 종교개혁이 계몽주의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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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다루었듯이 중세 교회가 타락했을 때,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하나는 교회 안에서 등장한 종교개혁(Reformation, 1517)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 일어난 계몽주의 (Enlightenment)이다. 이번에는 교회 안에서 등장한 종교개혁에 대하여 다루어 본다. 종교 개혁에 대한 고찰은 중세 교회의 분위기와 진화론적 사고가 깊숙이 들어와 있는 현 교회의 상황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다섯 가지 구호인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 (Sola Christus)”,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맨 앞에 있는 “오직 성경”이다. 왜냐하면 나머지 네 가지 모두는 성경을 신뢰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 성직자와 달리 전통보다는 성경을 강조하였고, 성경을 기준으로 카톨릭의 전통을 비판했다. 여기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사람들 의 생각과 행동을 볼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성경 중심이었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30-1384, 영국) 종교개혁은 1517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 에 ‘95개조 반박문’(실제로는 ‘면죄부들의 효력의 포고에 대한 토론’이 원래 제목임)을 걸기 훨씬 이전부 터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된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존 위 클리프이다. 그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도록 함으 로써 성경을 일반인들에게 읽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기독교 역사가들은 이를 그의 가장 큰 공로로 인정한다. 그는 성경을 기초로 로마 카톨릭 교회와 참 교회를 구분하였고, 카톨릭 교회의 모든 전통과 교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교황이 사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기 때문에 사도들의 계승자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권좌라고 하며 비판했다. 위클리프와 같은 성경적 사고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인 “롤라드(Lollardy)”에 의해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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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교회가 세워지고 전도가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는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 나라에도 세워졌다. 그리고 교회가 세워지는 곳 마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자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죄로 인한 죽음과 고통, 창조자이시며 구원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파하는 교회는 처음에는 어디서나 핍박을 받게 되어있다. 기존 나라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보편적 생각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대가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대속과 내재를 통해서만 구원과 삶이 보장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2, 26)와 같이 예수님 자신을 전하는 자들에게 고난을 넘어서 꿋꿋이 성경을 신뢰하고 복음을 전하면 이 진리는 주님의 섭리 하에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된다

30년경 교회는 당대 세계의 최강대국인 로마에서도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교회의 숭고한 노력으로 115년경에는 로마의 거의 모든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결국 313년에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며 크리스천의 자유가 허락되었다. 더 나아가 380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수십년 사이에 교회를 가면 안되던 상황에서 오히려 교회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변하였다. 불법 종교였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유일한 종교가 되어버렸다. 크리스천의 고난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며 부와 명예를 얻는 사람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교회가 가장 바라던 대로 된 것이다

중세시대(Middle Ages, 5-15세기)는 시기적으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된 시기와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이 멸망 (1453년)된 사이를 일컫는다(중세라는 시대적 구분은 동양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이 시기가 공교롭게도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가 된 380년 과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과 비슷하기 때문에 중세시대라고 하면 쉽게 중세 교회를 연상하게 된다. 로마에서의 중세 교회는 부와 명예를 갖게 되며 긴장감을 잃기 시작했다. 또한 처음 받은 복음이 변질되어 성경과 동떨어진 교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잘 알려졌듯이 면죄부 판매, 마리아 숭배, 사제가 성만찬 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 고해성사, 자신의 몸 을 혹사함으로 속죄를 받는 등이다. 모두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교회에서 스스로 만든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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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 세상에 종교(religions)가 없는 나라는 없다. Wikipedia를 참고하자면 지구상에 약 4,200개의 종교가 존재한다고 한다. 왜 모든 나라는 종교를 갖고 있을까? 종교란 ‘규정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 체계나 문화적 체계’라고 말한 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자면 하나님 없이 영적인 것을 채우려는 시도가 종교이며, 즉 자신 들 ‘스스로 만든 신’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종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신념에서 시작하고 신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을 닮았다는 의미인데,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때 영적인 것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께서 볼 때 종교나 우상이나 차이점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온 인류의 역사가 성경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만이 분명히 이해될 수 있다. 즉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인류는 홍수 심판 때 방주에 탔던 노아의 후손이며, 그 조상은 성경의 하나님이 창조자이시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 종교, 철학, 세계관, 역사과학, 진화론며 구원자이심을 알고 있었던 분들이다. 그러나 바벨탑 이후 언어의 혼돈으로 각 민족이 형성되었으며 이후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후손에게도 전달하 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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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대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인류를 흩으신다. 이때 인류가 흩어지며 같은 언어 집단인 나라(nations)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창 10장; 11:6-9). 그 후 인류는 흩어지며 다시 과거를 잊어버리게 되는데, 과거 사실은 단 한 세대만이라도 끊기면 다음 세대는 결코 그 사실을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는 것,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죄로 인해 죽음이 왔으며, 모든 피조물이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등의 진짜 역사를 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를 잊기 시작한 때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위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각 나라가 갖고 있는 고대 전설과 설화들은 당시 조상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전설과 설화는 사람들이 지어 낸 이야기이며, 이를 전승한 사람들의 사고와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대표적인 건국설화와 전설들을 소개한다.
-고조선: 단군은 하늘 신의 아들인 환웅과 곰에서 여자가 된 웅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라와 가야: 박혁거세와 가야를 건축한 김수로는 알에서 났다.
-중국의 상나라: 시조인 ‘설’은 제비가 떨어트린 알을 먹고 잉태되었다.
-베트남: 바다와 산의 신에서 난 딸이 낳은 100개의 알에서 난 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로마: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후손과 전쟁의 신 마르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다 사람의 손에 자라게 되어 로마를 건국했다.
-이집트: 태양신이 하늘로 올라갔으며 여러 신 중에 하나인 ‘호루스’가 어머니 의 머리(head)를 자른 후 그녀의 머리를 소(cow)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잉카제국: 태양의 신 ‘인띠’가 창조한 자들이 첫 번째 왕국을 건설했다.
-아메리칸 인디언: 많은 설화에서 태양이나 달의 신이 등장하고 조개에서 최 초의 인간이 탄생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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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년 여에 걸쳐 사회진화론(Social Evolution)에 대하여 연재하였다. 사회진화론이란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에 진화 역사를 사실로 놓고 개인과 사회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말한다. 지난 글들을 통해서 거짓 역사인 진화론이 단지 과학책을 넘어 개인과 사회에 어떠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기본적인 삶의 기준이 성경이었고 유럽보다 진화론을 나중에 받 아들였다는 점에서 진화론 교육 전후에 대한 변화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미국은 1960년에서야 학교에서 진화론을 강조하였고, 이에 따라 1963년에 공립학교 기도 금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시점으로 성적타락, 이혼율의 급증, 낙태의 발생과 증가, 학원 총기사건 증가 등의 사회 변화의 격동기를 다루었다.

진화론의 보급 이후 가장 먼저 바뀐 것이 성문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윈과 그의 이론을 따르는 자들은 성선택을 가장 중요한 진화 과정 가운데 하나로 꼽았으며, 이는 성개방으로 이어졌다. 그 동안 억제되었던 혼전 성관계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미혼자녀의 증가와 낙태의 발생과 증가로 이어졌다. 아울러 결혼이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작품이 훼손되어 결국 이혼율 증가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은 결혼보다 동거 숫자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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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빅뱅에 대하여 마치 과학적 사실 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입증된 적 없는 추측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주가 여전히 팽창하고 있는 것 이 폭발에 의한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주가 팽창한다고 하더라도 빅뱅이 우주의 기원일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과 크기부터 시작하지 않고 훨씬 더 큰 크기로부터 확장할 수 있으셨다. 세속적인 교과서조차 수평선 문제와 성숙한 은하 문제와 같은 빅뱅의 한계를 알고 있다. 빅뱅이 사실이라면 우주는 그 구조와 온도에 걸쳐 현재 알려진 것과 같이 놀랄 만한 균일성 또는 “동일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 빅뱅이 옳다면 또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 하고 따라서 오래 전에 은하가 처음 형성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므로) 어린 은하로 보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운 은하와 같은 나이의 성숙된 모습 을 보여준다.
질문: 관찰할 수 있고, 측정 가능하며,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빅뱅이 실제로 발생했음을 알 수 있을까? 수평선 문제와 먼 은하의 성숙한 모습의 문제는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처음 ‘폭발’된 모든 재료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2. 지구는 46억년 되었다?
세속적인 과학자들은 지구가 46억년 전에 자연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증거가 우리 행성이 그보다 젊음을 확인시켜준다. 예를 들면, 현재 지구 자기장의 쇠퇴 속도를 보면 지구 자기장은 10만년 전에 시작해야 한다. 또한 지구의 화석, 석탄 및 다이아몬드는 수백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들은 모두 짧은 수명의 방사성 탄소 원자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10만년 보다 오래될 수 없다.
질문: 지구가 수십억 년이라면 왜 아직도 자기장이 있을까? 수백만 년 전에 형성됐다고 여기는 천연자원에서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 탄소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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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다윈의 사고 1859년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남성보다 훨씬 덜 진화된 존재로 여겼다. 먼저 여성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언급을 보면 쉽게 파악된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점이 너무나도 커서, 그토록 다른 존재가 한 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마치 완벽한 캥거루가 곰의 자궁에서 태어나 는 것과 같이 터무니없는 것이다.” “동물 사육자가 동물들을 인위적으로 선택하여 가축들의 형질을 결정하듯 남성이 성 선택을 통하여 여성의 진화를 이루었다.” “여성은 단지 성적인 매력이 우월하기만 하면 된다.”

다윈은 남녀를 진화 과정으로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 선택을 통한 경쟁’을 남 성 진화의 열쇠로 믿었다. 성 선택(Sexualselection)이란 동물이 자신의 짝에게 선택을 받기 위하여 모양이 진화되어 왔다는 진화 이론이다. 예를 들어 공작의 꽁 지깃, 수사슴의 뿔 그리고 수사자의 갈기 등이 매력적인 것은 이성을 선택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인지 동물들도 그렇게 느끼는 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윈은 1871년에 쓴 < 인간의 유래(TheDescent ofMan)> 에서 이와 같은 성 선택을 인간에게까지 확장 했다.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전체 분량 가운데 70페이지 정도를 인간의 성 선택 에 할애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었다. 예를 들어 다윈은 남성의 턱수염을 성 선 택의 결과일 수 있다고 하며, 여성이 턱수염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턱 수염을 가진 자들이 더욱 선택되어 남자가 턱수염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성 선택은 다윈이 자연선택을 설명하는 중요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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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019, 1) 사회진화론을 다루는데 있어서 러시아에서의 공산주의를 주로 다루 었다. 이번에는 중국 공산주의에 대하여 살펴본다.

중국 근대사 속 진화론 찰스 다윈(Charlest Darwin, 1809–82, 영국)의 종의 기원이 출판되었을 때 이를 전적으로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다. 진화론을 수호한다고 해서 ‘다윈의 불독’이라고 불리는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95, 영국)와 ‘독일 진화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헥 켈(Ernst Haeckel 1834-191, 독일)이 대표적인 사람이다. 특히 1898년 헉슬리의 책인 <진화와 윤리, Evolution and Ethics>가 출시되자 중국어로 번역되어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사회진화론의 아버지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영국)의 책도 번역되어 중국을 휩쓸었다.

중국의 공산주의를 다루기 이전에 중국에 진화론이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 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에 다윈의 자연선택과 함께 진화론이 알려지는데는 옌푸(嚴復, 1853-1921)라고 하는 사상가로부터로 알려진 것으로 본다. 그는 진화론을 선도하였는데, 그로 인해 당시 청나라와 대항했던 혁명가들은 “다윈의 깃발을 높이 치켜 세우면서”라며 자신의 편들을 독려했다. 이런 정치 적 운동의 지도자들은 당시 서구에서 나온 과학적인 인종 차별주의 사상에 동화되어 자신들이 중국을 통치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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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사업가들
앞서 다루었던 ‘사회진화론의 아버지’ 스펜서는 “실업자이거나 사회 부담되는 자들은 도움과 자선의 대상이되기보다는 죽는 것이 허락되야 하며, 그러려면 부적절한 사람들 을 제거하고 심하게 다그쳐야 한다”는 식의 끔찍한 자신의 철학을 보여주었다. 덜 적합한 자나 기업은 제거되어야 하며 ‘합리적 사람’은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냉혹한 진화 법칙은 스펜서의 일관된 결론이었다. 이는 진화의 냉혹한 ‘생존 법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와 같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던 성공한 사업가들은 기업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들은 부당한 경쟁으로 희생한 자들의 실패를 당연시했다. 몇몇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 사회에 너무 지나치게 적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긴 했 지만, 자유 방임주의는 자본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 은 자신들의 자세가 과학적으로 지지를 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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