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킨지,
현대 성 혁명의 아버지

앞서 다루었던 해블록 엘리스(Havelock Ellis, 1859-1939, 영국)를 우생학적 성 혁명의 주도자라고 한다면, 이번에 다룰 알프레드 킨지(Alfred Kinsey 1894~1956, 미국)는 ‘현대 성 혁명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성에 대하여 영향을 끼친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성(性)과 동성애 해방운동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당시에 기독교나 전통적 사고를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극도로 비난을 받았으며, 한편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찬사를 받았다.

킨지는 철저하게 진화론을 신뢰하며 진화론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 성도덕을 뒤엎으려는 일에 평생을 노력했다. 그의 삶의 목적들은 간통, 간음, 동성애, 가피학증
(sadomasochism 물리적, 정신적 학대를 통하여 성적 만족을 느끼는 성행위), 동물과 성행위(bestiality), 소아성애(pedophilia) 등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간주되던 것들에 대해 정상적이므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과학계와 일반인에게 납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지금은 그의 연구가 치명적 결함이 있으며 쓸모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점을 모르고 그의 결론을 인용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성 혁명은 사회문제, 질병의 전염, 가정파탄에 기여하는 결과를 남겼다.

킨지는 소년 시절 주일학교를 출석하였고 미국 보이 스카우트 멤버였다. 그의 성실한 신앙심은 진화론의 수용에 이어 우생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무너졌다. 그 후 그는 아주 적극적인 진화론자가 되었는데, 학우들이 ‘제2의 다윈’이 될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별히 기독교에 비판적이 되었는데, 이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생물 교사 로에스 (Natalie Roeth)의 영향이 컸다. 이 여교사는 생물을 가르치며 킨지를 철저한 진화론자로 변화시켰고,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유신 종교를 대항하는 전투가로 만들어 버렸다.

이 생물 교사의 영향으로 킨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 대학에서곤충 담 말벌(gall wasp)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담 말벌을 통해 진화를 증명하려고 야심차게 도전했으나, 진화의 증거는 얻지 못하고 담 말벌의 다양성만을 기록하였기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때부터 그는 생물학을 버리고 인간의 성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킨지는 영향력 있는 생물학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한데, 그의 책들은 모두 진화론을 변증하려는 것들이었다. 그의 책에 진화의 증거로 상동기관, 흔적기관, 발생반복설, 화석, 시조새, 돌연변이 등이 삽입되며 미국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심어주는 큰 공헌을 하였다. 어떤 것들은 50만 부나 팔리며 여러 번의 개정판으로도 출판되었다. 그러나 그가 제안한 진화론적 증거들은 오늘날의 진화론자들도 버린 것들이다. 교과서로 벌어들인 그의 수입은 자신의 성에 관한 연구에 어려움을 없게 할 정도로 풍족했다.

(性) 분야로 전환

킨지의 성에 대한 경력은 학생과의 상담 과정에서부터 시작했다. 원래 생물학이 자신의 강의였으나 이와 상관없는 성행위에 대하여 그림을 보여주며 자세히 토론했다. 처음에는 기혼자만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나중에는 누구에게나 코스를 개방했다. 그는 과목이 성과 관계없을지라도 결국 성에 대한 주제로 전환시켰다. 이에 대하여 학생들의 탄원도 들어왔다. 킨지는 대학원생과 교직원들을 성적으로 유혹했는데 그와 관계를 가진 자들이 50여 명에 달했고 거기에는 남자들도 포함되었다. 어떤 대학원생은 동성애자가 아니었지만 교수의 권위로 인해 성행위를 가졌으며, 심지어 그는 제자의 아내와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킨지는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문란한 성행위가 그 원인 중에 하나였다. 그는 성에 대한 경력을 쌓은 이래로 동성애 술집 방문이 많았으며 적지 않은 수의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킨지의 연구목적은 분명했다. 비정상적인 성행위가 부부간의 성관계만큼 정상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교도소 심리학자로도 일을 했는데,그때 유죄판결을 받은 자들에게 모든 사람의 죄는 누구의 죄도 아니라며 합리화시켰으며, 소아성애자들을 포함한 성범죄자들을 두둔하기도 했다. (미국 질병 통제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동성애 지향적인 사람들은 이성애자보다 소아성애에 관여할 가능성이 3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킨지는 종교 기관이 성행위에 대해 규제하므로 미국에 성 기능 장애자가 만연했다고 교회를 공격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변태적이고 문란한 사람이 성 개방에 공헌을 한 학자이며 성혁명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킨지 보고서(The Kinsey Reports) 킨지의 대표적 업적으로 불리는 것이 킨지의 보고서(The Kinsey Reports)이다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 (1948) and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 (1953). 이 보고서는 1998년에 다시 인쇄되기도 했다. 킨지의 보고서는 약 5,300명의 남성과 약 6,000명의 여성의 성행위에 대한 문조사 자료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총 3억 부 이상 팔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성 보고서가 되었다. 이 책은 기존 성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인 생각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성 개방의 혁명이 일어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 보고서를 통해 그를 현대 성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게 만들었다.

이중 몇 가지 결과는 아래와 같다.

– 남성의 67-68%가 혼전 성관계를 가졌다.
– 여성의 26%가 혼외 관계를 가졌다.
– 남성의 37%가 적어도 한 번의 동성애를 경험했다.
– 인구의 10%가 동성애자이다.

그러나 킨지의 보고서에 참여한 설문 대상들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어 설문에 참여한 자들은 대학생, 방랑자, 남성 매춘부, 게이 바에서 있던 동성애자, 성범죄자, 교도소 수감자 등이었으며, 노인, 흑인, 보수적인 남부 사람, 종교적 견해가 강한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완전히 배제시켰다. 설문 당시는 미국의 과반수가 종교 생활을 하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설문 대상의 80%는 비종교인이었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설문 대상을 형평성 없이 선택한 것이다.

킨지의 보고서는 중산층 여성들에 비해 상류층에서 간통이 더 흔하다고 보여주었다. 5,940명의 여성 설문 대상 중에 75%는 대학에 다녔고, 19.4%는 대학원에 다니거나 졸업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사가 이루어졌을 당시 미국 백인 여성의 7.5%만이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는 점을 보아도 설문 대상 선정에 형평성이 벗어난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 조사에 기여한 상당한 수는 매춘부, 댄스 배우, 다른 성매매 직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이었다. 킨지의 보고서가 발표될 당시에도 자신의 성적 성향을 주장하기 위해 조작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킨지가 발표했던 당시 1948년에 전체 인구의 37%가 분명한 동성애 경험을 가졌다고 했지만, 1994년 설문 조사에서는 훨씬 나중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낮은 10% 또는 1~3% 정도였다. 또 다른 예로 남성들의 74%가 매춘부들과의 관계를 경험했다고 했지만, 훨씬 이후인 1994년 보고서에서는 15%뿐이었다. 성 혁명이 일어난 이래로 성에 대하여 훨씬 더 개방적이 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킨지 보고서는 분명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킨지의 보고서가 발표했을 때, 언론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대부분의 결론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었을지라도 언론들은 그의 연구를 기념비적이라고 추켜 세웠다. 반면에 보수적인 미국 언론 중에는 킨지 보고서를 20세기 출판된 책 가운데 세 번째로 해로운 책으로 평가했다.

킨지의 보고서 이후

킨지의 보고서는 검증 없이 보편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사회는 빠르게 성 개방으로 흘렀다. 심지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킨지의 보고서만을 읽으며 그릇된 데이터를사실로 여기고 있다. 킨지 이후의 성적 타락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이다. 이러한 성적 타락은 더 나아가 이혼과 성 질병의 증가를 가져왔다.

킨지의 보고서가 발표된 이래로 오늘날도 킨지가 하던 식의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많은 상담가들은 상담원들이 행했던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으며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란 식으로 상담을 진행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국의 법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담가 자신들이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며 실제로 자신들이 그렇게 믿는 바이다. 킨지가 생각했던 것처럼 죄를 ‘본성’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의 동성애나 성적 문제로 상담을 요청할 경우 자녀들에 대하여 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식으로 오히려 부모를 설득시킨다. 이런 상황은 상담가들이 스스로 근본적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자세이며, 결국 상담원들 역시 본질적인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국 사회전반에 걸쳐 심각한 변화를 주었다. 언젠가부터 어떤 사람이 성적인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지었다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한 것’이 환영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성경에서는..

한편 성경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범죄 했다고 지적할 때는 그 사람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우쳐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가 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야 죄를 해결할 수 있으며, 결국 해결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레위기는 그 순서를 명확히 한다.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고…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 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레 4:28-31)

첫째로 어떤 사람이 모르고 범죄 했다면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누군가가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죄의 대가(피)를 치른 후에 제사장이 속죄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 사함에 필수적인 전제는 자신이 죄인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 다음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이 시대가 죄를 죄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성적인 영역에서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데에는 킨지의 그릇된 역할은 너무나 컸다.

다음 글은 킨지의 제자며 계승자인 워델 포머로이(Wardell Pomeroy)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