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세계관을 다루는 데 있어서 계몽주의- 진화론- 우생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철학과 사고의 변천을 살펴보았다. 우생학이란 ‘선별을 통해서 인간을 개량하려는 시도’라는 것은 7월 칼럼에서 다루었다. 우생학이 등장하면서부터 진화론적 지식인 들은 개인과 사회에 진화론을 훨씬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우생학을 주제로 다루면서부터 각 주제의 리더에 대한 인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 사람이 곧 생각이기 때문에 그 인물에 대한 이해는 세계관을 훨씬 정확하고 쉽게 파악하게 한다. 지난번에는 우생 학의 아버지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 영국)을 중심으로 통계학을 접목시킨 피어슨(Karl Pearson 1857-1936, 영국)을 다루었으며, 당대 우생학을 지지했던 영국 수상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경제학자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 영국), 미국 대통령인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 1858-1919) 등을 언급하였다.

앞으로는 진화론을 성(sex)과 접목시킨 아래 세 인물을 차례로 다룰 것이다.

  • 해블록 엘리스(Havelock Ellis,1859-1939, 영국): 우생학적 성 혁명의 주도자
  • 알프레드 킨지(Alfred Kinsey 1894-1956,미국): 현대 성 혁명의 아버지
  • 워델 포머로이(Wardell Pomeroy 1913-2001 미국): 킨지의 계승자

성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있으나, 그에 대하여는 앞서(2018년 6월) 다룬 적이 있기에 이번 시리즈에는 제외했다.

해블록 엘리스(Havelock Ellis, 1859-1939, 영국)

영국의 의사이며 작가였던 해블록 엘리스는 성 혁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꼽는다. 그는 동성애를 지지한 첫 영문 저자였으며, 트랜스젠더의 심리를 포함한 다양한 성행위에 대한 책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는 포르노 수준의 선정적인 책도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혐오스럽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성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젊었을 때 엘리스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진화론과 우생학에 관한 책들을 읽자마자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 그는 다윈을 ‘과학계에서 가장 탁월한 영웅 중 하나’라고 추켜세우며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때를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짜 중 하나’라고 쓸 정도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다윈뿐만 아니라 우생학의 아버지 프랜시스 골턴과, 적자생존이란 단어를 만들고 무자비한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허버트 스펜서등 당시 진화론 리더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신앙을 버린 후에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 기독교적 윤리로부터 사회를 해방시키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으며 평생을 그렇게 보냈다. 특별히 성적 해방에 집중하였다. 그의 사고는 진화론의 확산과 함께 사회에서 점점 더 정당화되었다.

엘리스는 난잡한 성행위를 일반화하는 일을 끊임없이 추구하였으며, 동성애뿐 아니라 어린이와의 성행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였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변태라고 부르지 않고, 전(前)성기기(pre-genital: 생식기가 발달하기 이전에 성적 발달 단계)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은 진화론이 등장한 후에 지식인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우생학이란 단어도 그중에 하나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드, 자아, 초자아 등의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새로운 단어들은 자신들의 사고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도록 도와주었고, 자신들의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곧 지식인에 속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이들이 만든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으며, 이를 비판 없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성경적 윤리관을 배척하게 되었다. 이런 식의 교육 상황은 오늘날에도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엘리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앞으로 닥칠 결과를 성적 욕구로 예언하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나 전쟁을 통해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아짐으로 여성들이 성관계를 갖지 못하게 됨으로써 격노하는 어려운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기존의 사회적 도덕적 태도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즉 자신이 바라던 대로 부부관계를 벗어난 성적 난잡함이다. 그는 성적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에만 사회가 평화로워진다는 극단적 사고를 폈다. 그에게 성은 모든 판단의 시작이고, 척도였으며 그의 이러한 태도는 성경적 기준을 배제한 진화론의 ‘성 선택(sexual selection: 자연선택을 성(性)과 접목시킨 진화론적 해석)’이 사실이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엘리스는 성행위를 하는데 환각 효과가 있는 메스칼린과 다양한 다른 향정신성 약물들과 환각제 약물들을 실험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 리스(Edith Lees)는 레즈비언이었으며, 그는 아내와 합의하에 그녀가 다른 여자들과 성행위 장면을 옷장에서 숨어서 보기도 했다. 이러한 변태적인 성 욕구자가 지식인이며 기독교적 고정관념의 해방자라는 대우를 받으며 성 혁명을 주도했음을 알아야 한다.

엘리스는 우생학을 열성적으로 지지했으며, 우생학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이설립한 <골턴 우생학 연구소> 회장과 <우생학 교육 협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그는 역사상 부적합하고 덜 건강한 사람들의 번식을 제한하려는 우생학적 실행 방법으로 ‘부적합한 사람의 불임’을 주장했다. 그는 사회의 부적합한 사람의 불임은 실용적인 판단이라고 확신했다. 이 불임은 자발적이며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강제적이어도 좋다고 여겼다. 그는 1차 세계대전 격은 이후의 미래 상황에 대하여도 ‘전쟁에서 강한 남자가 많이 사망했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약한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 결국 약한 인종이 남게 될 것’이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엘리스의 우생학적 사고는 세상에 낙태와 불임을 이끌었던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그는 생어와 성관계를 가졌으며, 이로 인해 그의 아내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두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생어에대하여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우생학, 성 혁명, 불임 등은 서로 별개의 분야가 아니다.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열매이기에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에 대한 뿌리는 바로 진화론이며,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의 시작을 인간 스스로 판단하려는 자세인 것이다

(마 16:20).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참으로 귀하지만(창 1:27), 한편 범죄 이후 죄인이기 때문에 참으로 악한 존재이다 (창 6:5; 8:21). 귀하지만 악하게 되어버린 인간은 예수 님을 통해서 다시 거룩한 위치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성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참으로 거룩한 축복이었지만, 범죄로 인해 우리는 이를 어그러지고 악하게 사용해왔다. 이 악하게 사용되었던 성의 바른 회복도 예수님, 곧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나머지는 모두가 타락한 인간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해블록 엘리스도 진화론의 신뢰와 함께 성경에 대한 신앙을 버렸을 때 자신의 타락한 생각을 옳다고 여겼던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생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2)

많은 사람들은 엘리스의 그릇된 생각을 수용했고 그의 성 혁명은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에 이어서 ‘현대 성 혁명의 아버지’인 알프레드 킨지 에 의해 더 보편화되어 버렸다. 킨지는 다음 달에 다룰 이야기이다.

*인물사진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