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뉴스레터]

진화론은 단지 과학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개인의 삶과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와 같이 진화를 사실로 놓고 개인과 사회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사회적 진화론(social evolutionism)이라고 한다. 이번 글은 그 영향들 가운데 ‘낙태’에 대하여 다루어 본다.

낙태란 인간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임신 중절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유산과는 구분된다. 낙태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여러 방법에 의해 시도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달로 자신이 의도한대로 쉽게 이뤄지기에 더욱 이슈가 되고 있다.

과학적 내용
과학적인 면을 볼 때 “생명은 언제 시작됩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생명’이 무엇인지 정확한 과학적 정의를 내리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과학을 통해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하다. 과학의 발달을 통해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순간, 배아가 엄마의 자궁 내에 붙는 순간, 아기의 심장이 뛰는 순간 등 각 단계가 관찰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누가 보더라도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생명의 시작임을 말한다.

수정된 이후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최근의 연구는 아기의 두뇌가 40 일이 되면 뇌파를 생성할 만큼 충분히 기능을 발휘하며, 12주 만에 안면 근육이 움직이며 미소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기는 7주부터 운동을 시작하는데, 16 주부터는 엄마가 아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과학이 생명에 대한 궁극적인 답변을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엄마의 뱃속에서 보여주는 아기의 발달만 보더라도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순간부터 생명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군다나 수정된 배아를 그대로 놔두었을 경우 모두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어디서부터 인간이다 아니다’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개인 사회적 영향
한국은 원치 않은 임신의 경우 여성 열 명 중 아홉 명이 낙태를 하는 것으로 최근 조사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계획 없는 임신의 경우 과반수 이상의 여성이 피임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이가 생기면 지우면 된다는 안 일한 생각이 큰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낙태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낙태를 한 여성들은 육체적,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낙태의 방법을 보면, 외과적 방법으로 자궁에 기구를 집어넣어 자궁 내막을 기계로 긁어내는 소파수술과 흡입기를 자궁에 삽입하여 태아 및 조직을 흡입하여 빼내는 흡입수술이 있으며 약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외과 수술의 경우 자궁을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자궁파열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것은 첫 임신부, 젊은 여성, 특별히 십대의 경우 훨씬 더 발생하기 쉽다. 또한 임신 기간이 상당히 흐른 후에 소파수술이 이루어질 경우 무리하게 경부를 열기 때문에 자궁경부 무력증과 자궁유착증과 같은 합병증에 시달리게 되며 불임의 원인으로도 이어진다. 외과적 방법의 낙태를 할 경우 가장 무서운 후유증은 출혈과 감염이며, 출혈이 심할 경우 자궁을 들어내기도 하고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으며, 낙태 횟수가 거듭될수록 불임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약물용법의 경우 믿을만한 낙태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때때로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고, 산모에겐 정신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낙태를 한 많은 여성들은 정신적 어려움도 겪는다. 자신의 아이가 버려졌다는 마음이나 수술 당시 배아나 태아의 상태에 대한 상상 등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 다. 드문 경우지만 강간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예를 들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도 낙태가 이루어진 후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예를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자신에게 적용시켜 낙태를 정당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일 리 없다.

낙태의 증가는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현상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경우 여아를 선별하는 낙태가 증가했던 시기도 있었으며, 이런 낙태 시도는 후에 결혼 적령기의 남녀 비율의 차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성경에서는
성경만큼 ‘생명’에 대하여 강조하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성경에서 생명이란 단어는 여느 생물 교과서보다 더 많이 등장하며, ‘자궁’에 대하여도 70번 이상이 언급된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렘 1:5)라는 문장은 신학적인 의미를 논하지 않더라도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의미다. 다윗은 시편에서 자신이 죄성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했다(시 51:5). 이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근본적으로 죄를 지은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한다. 시편의 또 다른 곳에서도 “주께서 내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와 같이 모태부터 자신됨을 말한다.

신약성경에서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이 임신했을 때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눅 1:25)고 하며 주님께 감사했다. 엘리사벳이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를 만났을 때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눅 1:42)라고 하며 축복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이미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완전한 인간임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피와 생명을 동일시하심을 보여준다.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창 9:4)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 17:11) “피는그 생명인즉”(신 12:23). 과학적으로 자녀의 혈액형은 부모의 혈액형의 재조합에의해서 결정된다. 이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순간 이미 부모로부터 온 생명체임을 말하는 것이며 이미 그 수정된 태아에는 생명 되는 피가 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이 생명과 피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다. 즉 성경은 생명체가 피 속에 성화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인간이 될까? 아주 명백하다. 생명은 창조주께서 처음으로 우리를 알았을 때부터 임신, 출생, 어린 시절, 성인기, 노년기, 죽음, 그리고 영원의 각 단계의 연속 선상에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이어지는 과정 중에 어느 시점부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출 20:13)이다. 그러므로 낙태도 살인이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고 명령하셨다(창 1:28). 생육은 모든 사람들이 순종하여야 할 하나님의 보편적인 명령 중 하나이다. 더군다나 자녀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이상의 어떤 부분이 있다.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실제로 자녀를 갖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복한다. 결혼한 지 오랜 동안 자녀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자녀를 갖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녀에 대하여 축복보다는 부담으로 여기는 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식이 없는 것을 도덕적 미덕으로간주하기도 한다(무자식이 상팔자). 이는 아이를 낳고 번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강간 등 원치 않는 상태에서 임신이 이루어지는 경우나, 모태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날 가능성의 판단의 경우 등은 근본적으로 모두 인간의 죄에 의한 결과이다. 이런 경우를 겪는 일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경우 이 어려움을 주님과 함께 안고 가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이다. 아이가 태어날 것인지 아닌지의 선택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크리스천이 양보할 수 없는 분명한 하나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인간의 시작이며, 낙태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이다.  

진화론과 미국의 변화
미국은 기본적으로 낙태가 거의 없던 나라다. 그러나 1960년부터 공립학교에서 인간 진화에 대한 내용이 강조 되었고, 아울러 1963년에는 기도가 금지된 이후 1960년도 말부터 낙태가 급증했다(표1). 이는 분명히 어떤 시점부터 미국에서 낙태에 대한 인식이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진화론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성경에서 멀어진 세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었던 미국이 진화론 교육을 통해 인간을 동물 중에 하나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나라로 변화한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수천만 명의 낙태가 이루어져왔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에 의해 죽은 유태인의 수 배에 해당되는 숫자이다.

1960년도 사람과 동물이 배아였을 때 그 모습이 유사하다는 헤켈의 발생반복설이 진화의 증거로 교과서에 들어갔다(그림1). 이는 학생들에게 진화론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뿐 아니라, 배아의 상태에서는 동물과 다름없도록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이 이론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작 논문이라는 것은 창조과학자들에게 여러 번 지적되었다).  

성경은 배아였을 때 역시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고유한 존엄성을 적용시키고 있으며, 이런 성경적 자세는 과학적 증거와 개인 사회의 영향을 검토할 때 분명 한 뒷받침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모태 안에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낙태는 “살인하지 말라”(출 20:13)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복종하는 죄이다.  

  • 이재만 회장 (지질학, 과학교육학, 구약학)

참조
1) Tony Perkins. “Fighting Abortion—The Measure of a Just Society”. Answers In Genesis. 2010.
2) Paul F. Taylor. “Abortion”. Answers In Genesis. 2007.
3) 전효숙 & 서홍관.“해방 이후 우리나라 낙태의 실태와 과제” Korean J Med Hist 12.129–143.Dec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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