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뉴스레터]

1750년대를 넘으며 유럽의 자연주의적 사고는 지구의 역사를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더 깊은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며, 점차적으로 지구가 성경보다 훨씬 오래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도록 이끌었다. 더 나아가 성경의 홍수 심판을 부정하는 분위기까지 이끌었다. 기타(Jean Guettard, 프랑스, 1715-1789), 디마헤(Nicholas Desmarest, 프랑스, 1725-1815), 화이트허스트(John Whitehurst, 영국, 1713-1788), 아르두이노(Gionanne Arduino, 이탈리아, 1714-1795) 등은 성경의 홍수 심판을 부정하거나그 심판이 지질학적 기록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지구가 성경기록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여겼다. 이들 중 아르두이노는 앞에 언급된 리만이 정리한 지층의 세 가지 분류의 이름을 원시기(Primitive), 제 2기(Secondary),제 3기(Tertiary)로 바꾸었다(1759년).

프랑스에서 다음 세 명의 과학자들이 오랜지구론 이론을 폈는데, 모두 지질학, 천문학,생물학 각 분야에서 당시에 주요한 위치에 있던 자들이다. 지질학에서는 뷰퐁(Comte DeBuffon, 1708-1788)은 지구가 혜성과 태양으로부터 왔다는 진화론적 가설을 내며 지구가75,000년이 넘을 것으로 가정했다(1778년). 천문학계의 라플라스(Pierre Laplace, 1749-1827)는 태양계를 오랜 시대에 거쳐 뜨거운 물질이가스구름으로 뭉쳐 형성되었다는 성운가설을 발표하였다(1796년). 이 성운가설은 후에 전자기학의 아버지인 맥스웰(James Maxwell, 스코틀랜드, 1831-79)에의해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반박 받았다. 생물학에서는 라마르크(Jean Lamack, 1744-1829)가 환경에 적응하고자 획득한 형질이 다음 세대에 유전되어 진화가 일어난다는 용불용설을 주장했다(1809).

오늘날에는 위의 세 이론들이 결코 과학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폐기된 이론이 되었을지라도, 당시 과학계에 지구와 생물이 오랜 세월에걸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막연한 생각을심어주는 큰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이 세 명 모두가 당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었을 뿐 아니라, 기원분야에 관련된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의 각각의 분야에서 동일하게 긴 기간을적용함으로써 마치 오랜 역사가 각 분야의 통일된 이론으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이 이론들은 후에 지질학에서는 동일과정설, 천문학에서는 빅뱅, 생물학에서는 진화론이 탄생하는 초석이 되었다.

1780-1820년은 지질학의 “영웅시대”라고불린다. 이때부터 지질학은 독립된 과학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이 때 지질학자들에 의해 더 많은 관찰이 이루어졌고 암석을 체계적으로 배열시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또한 지질학 분야의 첫 학회인 런던 지질학회(1807년)가 설립되었다.

  • 이재만 / 창조과학선교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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