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뉴스레터]

오늘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들 한다. 모더니즘이 합리적 이성을 지닌 인간을 믿고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의 철학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이성이 완벽하지 않고, 절대적인 진리에도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의 철학이다. 이렇게 상반된 철학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눈을 제시한다. 그리고 상반된 관점들은 그 끝에 이르러 상반된 삶과 사회를 낳게 된다.

세계관이란 말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우리가 노란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파랗게 보일 것이다. 세계관이란 바로 그 안경과 같다. 우리 바깥에 있는 세상은 결코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늘 어떤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볼 수 밖에 없다. 어떤 이는 색깔 없는 안경을 쓰면 세상을 그대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색깔없는 안경은 없다. 요컨대, 우리는 언제나 복잡한 세상을 어떤 특정한 관점에 따라 보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다. 세계관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들로 구성되지만 그 신념을 우리가 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맹자는 인간이 선하다고 믿었다. 반면에 순자는 인간은 악하다고 믿었다. 나 자신이 인간을 선한 존재로 믿는지, 악한 존재로 믿는지는 자신이 부하를 거느려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이 만일 대부분의 부하들을 늘 통제 하에 두고 계속 그의 작업을 체크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인간은 악하다-혹은 최소한 인간은 게으르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세계관은 다른 세계관과 맞부딪혔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누군가가 와서 알아서 스스로 일하도록 하는 관리방식을 채택했을 때, 당신이 그것을 환영할지 거부할지를 보면 당신의 세계관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신은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첫째는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직접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경우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신은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이름은 여호와라고 믿을 것이다. 둘째는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신의 존재 여부는 둘째치고라도, 우리가 그 존재를 알 방법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셋째는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고 꽉 짜여져서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할 틈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혹은 신의 존재에 대한 해명 없이도 우리 사회는 잘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혹은 지금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신이라는 존재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하는 태초에 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신념 혹은 세계관은 우리 삶의 전체 모습을 모양지울 것이다. 또한 창조주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는 성경이 말해주는 길과 진리, 그리고 성경과 다른 철학들이 말하고 있는 길과 진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함께 산책하는 가운데 두 가지의 세계관, 즉 성경적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을 한 자리에 비교함으로써 그 둘의 차이를 이해하고 성경의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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