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필자의 전공 (해양공학) 얘기를 하며 성경을 상고해 보고자 한다.

한달전 쯤 동남아시아 여러나라에 대참사를 가져다 준 쓰나미는 여러 생각들을 불러 일으킨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서술된 마지막 때의 재난에 관하여–. 그리고 이미 이전에 있었던 노아 홍수의 대 심판에 대하여. 지각이 이렇게 한 번 흔들려도 대 참사가 있는데, 노아 홍수때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가라 앉는 엄청난 전지구적 스케일의 대 화산및 조산,조륙운동이 있었을때는 과연 어떠했을까?

이번 해일을 일으킨 지진은 리터스케일로 무려 9.3이나 되는 이제까지 지구상에 기록된 2번째의 큰 지진이라 한다. 최고 해일 파고는 무려 35m 에 달했다고 한다.

이 해일은 심해에서는 무섭도록 빠른 비행기 정도의 속도로 전파된다. 천해에서는 그 속도가 많이 줄어들지만 그래도 자동차 속도정도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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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택일뿐!

자 이쯤에서 한가지만 짚고 넘어 갑시다.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그 사람 예수는 누구입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라고 가르쳤던 인류 최고의 위대한 성인 입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자”라며 “스스로 하나님”임을 자처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며 역사의 주관자”라 선포 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두가지 선택 밖에 없습니다 (제발 다른 선택 “미친 사람이지만 동시에 위대한 성인이다”도 있다고 우기지 마십시오!). 예수가 진짜 “창조주 하나님”인가? 아니면 “미친사람”인가?

즉,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던가 아니면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침을 뱉던가 둘 중의 하나란 말입니다. 즉, 위대한 성인으로서의 예수는 허구이며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지성 C.S. Lewis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하셨습니까? 당신은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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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그렇게 목을 꼿꼿이?

몇일전, 쓰나미로 인한 전세계적 재난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한다. 이 재난을 통해서 계시록에 예언된 말세의 처참함을 마음속에 떠오르게 한다.

바닷속의 땅이 한번 살짝 흔들려도 이런 대 참사가 있는데 그 마지막날 심판의 칼을 휘두르실 때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인간들은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나님 없이 독립해서 번영할 것이라고, 스스로 선포하고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지만 그 얼마나 어리석은 발버둥인지!

로마 시대의 디오 클레시안 황제는 기독교를 박해하기 위해
그 시대의 모든 기독 서적을 다 불태우고 모든 교회의 문울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이제 기독교는 곧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 장담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웃으셨다.
그가 죽고 그 다음 황제인 콘스탄틴때에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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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성에 관한 예언 (Prophecy at Jericho)

여호수아 6:26에 여리고성에 관한 예언이 있으며, 열왕기상 16:34절에 그 예언이 어떻게 정확히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참고: 계자=youngest son)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 6:26)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열왕기상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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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미국에서는 청소년의 성을 억제하는 것이 오히려 해롭다는 교육이론으로 인하여 오히려 safe sex 운운하며 심지어 공립학교에서조차 콘돔을 무료배급하는 교육정책을 펴 왔습니다. 최근에 이러한 진보 정책의 실패를 깨달음과 동시에 부쉬 대통령과 보수기독진영의 강력한 제안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abstinence education (순결/절제교육)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 한국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청소년 교육은 입시위주로만 진행되어 인성/도덕 교육은 저만치 뒷전으로 밀려난지 오랩니다. 청소년들이 용돈이 필요하거나 핸드폰 장만을 위하여 성매매를 하기도 합니다. 사회는 더욱 술을 들이키며 음란하여 지고 이혼은 폭증합니다. 이제는 심지어 일간 웹신문에서조차 음란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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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적 발상인 인종차별 (Racism: evolutionary thinking)

진화론과 인종차별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의 신봉자였던 나치 히틀러도 아리안 족, 게르만족을 우량인종(super race)으로 유대민족 등을 열등인종으로 단정하여, 열등인종인 유대인의 인종청소(약 600만 명 대량학살)가 인류의 진화에 공헌한다며 정당화를 시켰던 것입니다. 히틀러가 미쳐서가 아니라 우생학이라는 진화론적 신념하에 그러한 일들을 자행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류는 이담과 하와의(또한 노아의)후손이며 모두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사도행전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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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비성경적인 낙태가 아무 문제없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류문화 향상및 인구문제, 여권신장등을 내세우며 권장되기까지 합니다. 그 배후에서 진화론이 어떠한 역할을 하였을까요?

그 정당성을 제공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진화론의 확장에 큰 획을 이룬 헤켈의 법칙, 즉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Ontogeny recapitulates phylogeny.)는 이론입니다. 즉 모태 속의 태아가 동물의 진화와 같이 단세포로부터 시작하여 어류-양서류-포유류 등의 동물발달상태를 거쳐 결국 인간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출발하여, 어디서부터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이냐 라는 질문이 나오고, 인간이 아닌 “동물 상태(animal state)”일 때, 낙태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냐 라고 주장하며 정당성을 내세우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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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에 관해서 어떠한 믿음을 갖느냐는 것은 개인의 신앙에도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과학과 시대정신의 패러다임(paradigm)을 잡아 나아가는 데에도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 창조에 관한 연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적설계로 이루어진 (하지만 죄로인해 타락한 모습도 아울러 보여주는) 피조세계와, 과학이란 이름으로 위장된 진화론의 모순과, 그로 야기된 문제점들을 보시고 굳건한 창조신앙을 확립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읽는 모든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그 책을 지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가전제품과 생활필수품에는 제조 회사가 표시되어 있으며, 모든 건축물에는 설계자와 시공자가 있습니다. 만든 사람이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유사과학 진화론은 이러한 대전제를 부정하고 모든 피조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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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줄 아는 크리스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다 마치신 후에 너무나 피곤하셔서 쉬신 것이 물론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피곤치도 아니하시며 쉴 필요도 없으신 분입니다(사40:28). 그러면 왜 7일째 쉬셨을까? 이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위임한 인류에게 안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쉼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공급 받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더욱이 타락 이후, 인류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아주 곤고한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서로가 그 결핍 가운데 허덕이며 물질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다투고 빼앗고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쉬고 있으면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일수록 더욱 쉼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특히 적어도 7일에 하루는 쉬며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안식과 교제를 반드시 공급받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육체도 상하게 되고 우리의 영혼도 병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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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30-31에 보면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형제가 “머리를 감고 나면 머리카락 몇 개가 빠지는데 그런 것까지 다 하나님의 뜻이냐?”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에게 그 마태복음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실 정도로 전능하시고 우리의 작은 일까지도 관심을 갖고 계시며 세심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의 비유적 표현이라고 대답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찮게 생각하는 이 머리카락 하나에도 자세히 보면 엄청나게 세심하고 정교한 하나님의 설계를 볼 수 있습니다. 현대 기술로 가발이나 조화등 겉모양은 아주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생명이 있어 자라고 향기를 내게 하는 것까지 흉내를 내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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