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결문제 해결의 오류 (The Fallacy of Begging the Question)

 나는 천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4살짜리 소년을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과 망원경을 가지고 소모임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젊은 자라나는 천문학자에게 외계 우주선을 믿는지 물었다. “물론이죠”라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왜 외계우주선을 믿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의 재치있는 답변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다른 방법으로 외계인이 여기에 왔겠어요?” 매우 논리적이지 않은가? 외계인들은 우주선이 없으면 결코 지구로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명백하게, 외계 우주선이 존재해야만 한다!

이것은 이성적 사고에 있어서 매우 일반적인 오류인 –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의 훌륭한 예이다. 이 오류는 어떤 사람이 단지 그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가정하거나, 어떤 논증의 전제가 실재로는 결론에 의지하고 있을 때 발생한다. 이 경우에, 우리의 젊은 학생은 우주인들이 지구로 여행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김으로써 외계 우주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문제의 요지이다. 이 젊은 야심찬 천문학자는 원 안에서 사고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4살짜리 아이로부터 이러한 우스운 사고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가 자라면서, 우리는 이성적으로 되어야 하고,  이런 종류의 논리적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많은 어른들이 기원에 관해 논쟁할 때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보는 것이 충격적인 이유이다. 어떤 예들은 명백하다: “진화는 사실이기 때문에 참이다 (Evolution must be true because it is a fact).”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 이 오류는 알아내기 쉽지 않다. 다음의 논쟁을 고려해 보자.

“성경은 기적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진실일 수 없다. 그리고 기적들은 자연 법칙에 위배된다!”

그렇다, 기적들은 잠재적으로 자연 법칙의 보류를 수반할 수 있다 (모든 기적들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연 법칙을 초월하신다는 것을 명백히 하기 때문에, 그분은 원하신다면 자연 법칙을 중지시키거나 위반하실 수 있다. 그러나 비평자의 주장은 단지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당연시 할 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논쟁자는 성경이 거짓이라는 것을 논증하기 위하여 이미 성경이 거짓이라는 것을 가정했다. 그는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논쟁하는 것을 들어 보았을지 모른다:

“성경은 단지 지구가 몇천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참일 수 없다; 반면 우리는 지구가 수십억 년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모든 논쟁들은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래된 지구 논쟁은 자연주의적 가정 (자연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과 동일과정설 (현재의 속도와 과정이 과거의 속도와 과정을 대표한다는) 의 많은 부분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지구의 과정의 현재 속도를 외삽함으로써, 특정 지질학적 형태를 침식하거나 퇴적시키는 데, 그리고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는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주의와 동일과정설을 거부한다 (예를 들면 대홍수 동안의 침식 속도). 자연주의와 동일과정설을 가정함으로써, 비평가는 이미 성경이 틀렸다는 것을 가정했을 뿐이다. 그는 이 가정을 성경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사용한다. 그의 논리는 순환적이다.

“창조는 참일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모든 과학적 증거들을 무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를 범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적 증거가 어떻게든 진화를 지지한다고 가정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논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를 거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것은 잘 확립된 자연의 사실이다.”

이 논증 또한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를 범한다. 왜냐하면 진화의 진위가 주제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라고 늘 순환 논리를 극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진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짓말하지 않으신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 이들 명제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지하는 유일한 명제라면, 이 논쟁은 선결문제 해결의 요구를 범하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논쟁이 우리가 거부하는 코란을 “증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철학적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갈 때이다. 선결문제 해결은 매우 이상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재로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떄문이다 (valid). 타당한 논증은 결론이 전제로부터 올바르게 도출되는 논증이다. 일반적으로 논리적 오류는 타당하지 않다; 결론이 전제들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들을 오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는 결론이 전제들로부터 도출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전제를 다른말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는 사실이기 때문에 참이다.”와 같은 논쟁은 논리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유요하다면 어째서 오류라고 여겨지는 것일까?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가 잘못된 이유는 그것이 임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순환논리는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결론을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전제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본질적으로 전제와 같으므로). 따라서, “진화는 사실이기 때문에 참이다.”와 같은 논쟁이 기술적으로 유효한 반면 오류인 이유는 논쟁자가 단지 그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가정할 뿐이기 때문이다. 임의적인 가정은 논리적 사고에 있어서 사용되면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이 정 반대를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는 거짓이기 때문에 참일 수 없다.” 라고 주장하는 것도 똑같이 적절할 수 있게 된다.

순환 논리를 피할 수 없고 오류가 아닐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선결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유효한 것이 아니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은 임의적이기 때문에 오류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임의적이지 않다면? 처음에는 논쟁의 결론이 가정되어야만 하지만 임의적이지는 않은 몇몇 상황이 존재한다. 여기에 한 예가 있다:

  1. 논리의 법칙들이 없으면, 우리는 논쟁을 할 수 없다.
  2. 우리는 논쟁을 할 수 있다.
  3. 따라서, 논리의 법칙들이 존재해야만 한다.

이 논증은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은 미세하게 순환적이다. 이 논쟁은 논리의 법칙들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부정논법 (modus tollens)이라고 불리는 논리의 법칙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전략적으로 우리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가정했다. 그러나 이 경우 그것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어떤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논리의 법칙을 사용해야만 한다 – 심지어 논리의 법칙의 존재까지도.

그러나, 위의 논쟁은 임의적이지 않다. 논리의 법칙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논리의 법칙들을 가정할 훌륭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논리의 법칙들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주장을 하기 위하여 논리의 법칙들을 먼저 가정해야 한다. 그는 그 자신을 반박하게 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사용하는 순환 논리의 예들은 대부분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를 범하는 것들이다 – 그것들은 임의적이다. 진화론자의 다음 논쟁을 고려해보라:

“성경은 별들이 단 하루만에 창조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참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별들이 생기기 위하여 수백만년이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별들이 수백만년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가정함으로써, 비평가는 그것들이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지 않았다고 가정했다. 그는 전략적으로 성경이 틀렸음을 논증하기 위하여 성경이 틀렸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를 범했다. 다른 한 예를 보자:

“우리는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에 있기 떄문이다!”

이 주장은 미증명 사실을 사실로 가정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에 있게된 방식이 바로 문제의 요점이기 때문이다.

비평가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미세하게 가정하는 논쟁들에 주의하라. 특별히, 진화론자들은 종종 자연주의와 동일과정설, 엄격한 실증주의, 그리고 때로는 진화 그 자체에 대한 가정들을 당연시여긴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것들은 바로 문제의 중심에 있는 질문들이다. 진화론자가 이러한 것들을 당연시할 때, 그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좋은 논리적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임의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