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버무림의 오류 (The Fallacy of Equivocation)

어떤 주제에 관해 토론할 때, 단어들의 의미와 그것들이 토론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단어들은 하나 이상의 이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들 중 하나만이 주어진 문맥에 올바르게 적용된다. 누군가 어떤 단어의 의미를 논쟁 도중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바꾼다면, 그는 얼버무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우스운 예가 하나 있다: “닥터는 의학에 관해 잘 알고 있고, 닥터 리슬은 닥터이다. 따라서 그는 의학에 관해 많이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짧은 주장은 닥터의 의미를 하나 (의사)에서 다른 하나(박사)로 바꾸고 있으며, 이는 이 주장을 오류가 있도록 한다. 이러한 얼버무림은 종종 “유인 상술 (bait and switch)” 오류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청자는 어떤 단어의 한가지 의미로 유인되었고, 그 의미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위하여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라는 단어에 관하여 얼버무림의 오류를 종종 범한다. 이 단어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진화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변화”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모든 생명체들이 공통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두 개의 의미들이 적절히 쓰일때가 있긴 하지만, 두 의미들은 한 주장 내에서 융합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진화론자들은 “변화”라는 의미에서의 진화를 보여줌으로써, “공통조상”이라는 의미에서의 진화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여러분은 진화론자들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틀렸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화가 일어나는 것을 항상 관찰할 수 있기 떄문이다. 생명체들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들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그렇지만, 물론, 동물들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오류가 진화론적 논쟁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 박테리아, 종분화, 핀치새의 부리의 크기와 모양 변화, 새로운 개 종류가 만들어지는 것, 대립형질의 빈도의 변화와 같은 모든 것들이 변화의 예들이다. 그러나 이것들 중 어느 하나도 생명체의 기본적 종류들이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진화론자들이 “실재 일어나고 있는 진화”의 예로서 이러한 것들을 인용한다면, 당신은 공손하게 그들이 얼버무림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당신은 Answers in Genesis 에서, 우리가 종종 “원자가 인간으로 변하는 진화 (particles-to-people evolution)” 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지 모른다. 이것이 지나치게 번잡한 문구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얼버무림을 피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한다.

사람들이 종종 얼버무리는 또다른 단어는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이다. 과학은 일반적으로 오늘날 우주의 일관적이고 예측가능한 행태를 연구하는 데 사용하는 과정들 – 과학적 방법 – 을 가리킨다. 이것은 현상과학 (operational science)이다. 그러나 과학은 또한 지식의 총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전학의 과학). 더우기, 과학은 또한 과거 사건에 관한 모델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것은 기원과학 (origins science)이다. 혹은 그것은 특정 모델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들 의미들 중 어느 하나라도 논쟁 도중에 전환된다면, 그것은 얼버무림의 오류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컴퓨터와 의학, 우주탐사 프로그램 등 많은 것을 주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진화의 과학을 거부하는가?” 이 주장은 현상과학을 기원과학의 하나의 특정 모델과 융합시키고 있다. 기원과학은 반복가능하고 실험가능한 현상과학의 측면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는 결코 직접 반복되거나 실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의학 등은 모두 현상과학의 산물이다 (오늘날 이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연구).

현상과학과 진화를 융합함으로써, 논쟁하는 사람은 진화라는 단어에 적절하지 않은 신뢰성을 부여하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현상과학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기원과학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진화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진화는 기원과학에 있어서 하나의 특정한 모델일 뿐이다.

오래된 지구를 믿는 창조론자들은 종종 “해석 (interpretation)”이라는 단어에 관하여 이 오류를 범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항상 성경의 해석과 자연의 해석을 비교해야 한다.” 성경 해석은 명제적 문구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자연을 해석할 때, 자연에 관한 명제적 문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명제적 문구를 이해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 두개의 다른 해석이라는 단어의 의미들을 융합함으로써, 오래된 지구를 믿는 창조론자들은 자연에 관한 과학자들의 발언을 성경과 같은 레벨에 놓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