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열가지 재앙이 정말로 일어났습니까?

 이집트는 수수께끼와 놀라움의 땅입니다. 피라미드의 불가사의, 고대 왕조의 부유함, 많은 사원과 무덤, 그리고 오벨리스크 등 모두는 우리의 현대 기술사회가 따라갈 수 없는 웅장함을 낳습니다.

추가적으로, 수세기동안 이집트의 젖줄로써, 매년 비옥한 검은 토사를 토해냄으로써, 마르고 황폐한 사막을 파릇파릇하고 무성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나일강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이집트”라는 단어는 오늘날과는 다른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성경은 스데반 집사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약속을 맏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을 기록합니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7:34).

가치를 깎아 내리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집트의 노예제도와 강제된 구속의 정도에 관련해한 가설들에 대하여 다양한 논의가 오늘날 존재합니다. 더우기 야곱의 후손들이 고센 지방에 정착한 것과 속박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모세의 등장과, “출애굽”을 낳은 열가지 재앙에 대한 신빙성과 같은 것들의 진실성은 끊임없는 역사적 수정주의와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반대론자들과 가치를 깎아 내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아주 많습니다. 그 주제는 방대하고 학술적이며 이 장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란 가운데에는, 다루어졌을 때, 찰스 헤스톤과 쎄씰 B. 드밀이 유명한 영화 십계 (1956)에서 성경적 신학보다는 헐리우드 영화만드는 방식에 더 능숙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측면들이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설교하며, 사도바울은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사도행전 13:17).

솔직히, 성경의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것을 전제하며,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계몽된 시대에서는, 창조에 관하여, 그가 원하시는 것을 그가 원하시는 때에, 그리고 특별히 그가 원하시는 민족을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내시는 일에 대하여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존재할 그 어떤 공간도 없습니다. 현대적 사고방식에서 이 이야기 자체가 사이비-역사적, 비논리적, 차별적, 그리고 비과학적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설명을 구해야만 합니다.

고대 이집트 사회

이집트의 열가지 재앙을 다루는 연대표(그것이 어느 파라오의 시간대에 속하며, 언제 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나 히브리 민족이 출애굽을 하게 되었는지)는 폭넓은 논의이며 이 논문의 범위 밖에 있습니다. 성경적 자료는 우리에게 구체적 연대를 거의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성경적 기록입니다. 정확하게 언제 일어났는가는 나중 기회에 논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가장 큰 뉴스거리가 되었을 법한, 그 땅 전체를 유린한 일련의 불행들에 대하여 고대 이집트 역사는 무덤에서도, 신전에서도, 석비에서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복하기 전에, 이러한 침묵에 대하여 매우 그럴듯한 설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신성한 사회였습니다. 현대적 말투로 하면, 정부와 교회와의 분립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만신전이 일상생활속에 촘촘히 박혀 있었습니다. 사회 전체는, 그것이 농업, 상업, 가정 생활, 정치, 혹은 전쟁에 관한 것이든 간에, 어떤 종류의 신을 수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하피는 나일강의 신으로서 음식과 풍요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오시리스는 지하세계의 신이었으며 망자가 그의 궁극적인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감시했습니다.

윌리암 워드는 이집트의 신들과 주변국들의 신들 사이의 엄청난 대조를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가나안 국가들의 신들은 부도덕과 폭력에 넘겨진, 피에 굶주리고 변덕스러운 신들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신들은 그 반대였습니다. 개, 고양이, 늑대, 하마, 악어, 개구리, 나무, 메뚜기 등의 생명체에 깃들어 있는, 평화로운 다신론적이었습니다.

파라오 자신도 신성 사회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었습니다. 그는 하토르의 아들 호루스였으며, 문자적으로 신적인 명령에 의해 통치했던 신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집트인의 생활에 있어서, 파라오는 의심할 수 없고,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절대적인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번영과 국가 안보, 그리고 모든 좋은 것들과 생명 그 자체에 필수적인 근원이었던, 신적인 대리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미디어는 수세기가 지난 우리의 미디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조종하는 이들에게 부끄러운 것들은 발표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분명, 파라오와 같이 엄청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운 실패를 기록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히타이트인들과의 전쟁이었던 카데쉬 전쟁에서 잘 나타납니다. 람세스 2세는 결정적인 승리는 커녕, 자기 생명을 겨우 보존한 채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왕은 엄청난 선전을 통해, 단독으로 그의 마차를 이끌고 적진으로 뛰어들어가서, 용감하게 그들을 무찔렀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라오와 같은 신이, 모세와 아론이라는 두명의 먼지 묻은 목동과 여호와라는 이름의 사막 신에게 창피와 패배를 당했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열가지 재앙

다른 한편으로, 이집트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편 105:23). 그것은 기록되었고, 이야기되고, 또 이야기되었으며, 축하되고, 대를 이어서 기념되었습니다. 왜입니까? 왜냐하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그의 약속에 충실하셔서, 그들을 포로된 상태로부터 구하시고,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며, 그들을 광야를 통해 인도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열가지 재앙은, 피, 개구리, 이, 파리, 온역, 종기, 우박, 메뚜기, 암흑, 그리고 죽음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세 5경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재앙들에 대한 세 가지의 다른 견해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열가지 재앙으로 알려진 것은, 단지 신화와 전설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전승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적 기록은 완전히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경계 바깥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언제부터 이러한 사건을 목격하지 않은, 단지 실수하기 쉬운 인간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 이 주제에서 하나님을 넘어선 최종적인 권위가 되었습니까?

두번째 견해는 성경적 자료를 완전히 버리기를 주저하지만, 각각의 재앙이 조심스러운 연구를 통해 과학주의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연적 현상”으로서 설명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슬프게도, 자연주의로 가득차 있는 오늘날 매우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세번째 견해는 하나님이 이집트의 왕의 완고한 마음을 열가지 재앙이라는 방식으로 다루시는 이야기를 사실로 여기며,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을 받아들이는 견해입니다. 각각의 재앙은 그의 종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이루신 일이며, “너는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지라”(출애굽기 6:7) 고 말씀하신 하나님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조율된 일입니다.

이집트의 거짓 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심판

이집트의 열가지 재앙이 정말로 일어났는가를 묻는 것은 몇몇 재미있는 일들을 수반합니다. 세속적 연구자들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렇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열가지 재앙이 파라오를 포함한 이집트의 신들에 대한 것이라고 제안하는 듯 합니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출애굽기 12:12).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민수기 33:4).

고고학과 성경 역사의 저자인, 요셉 P. 프리는 5가지 중대한 관찰을 하고, 10가지 재앙이 분명히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성경적 기록이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열가지 재앙에 대하여 묘사하는 다섯 개의 키워드를 제시합니다.

  1. 강화 (Intensification). 이집트인들은 분명히 재앙을 이해하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메뚜기와 개구리로 점점 고조되는 재앙은 일반 대중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물이 피로 변하는 광범위한 오염은 강의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온역의 규모와 암흑의 강도는 궁중 마술사들의 제한된 레파토리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2. 예측 (Prediction). 모세는 재앙이 닥치는 것과 물러가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예측의 정확성은 인간의 추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3. 차별 (Discrimination).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했던 고센땅은 몇몇 재앙이 닥치지 않았습니다. 우박과, 파리 그리고 온역을 특정 지역에만 제한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행위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4. 순차적 (Orderliness). 어떤 사람들은 재앙의 강도가 각 가정의 장남의 죽음으로 최고조에 이른다고 봅니다. 재앙들은 궁중 마술사들이 그들의 속임수를 통해 따라할 수 없도록 순차적으로 닥쳤습니다 (출애굽기 7:11). 세번째 재앙 이후로, 그들의 모방은 그쳤습니다. 장남의 죽음은 파라오가 수그러들게한 궁극적 징벌이었습니다.
  5. 도덕적 목적 (Moral purpose). 이것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열가지 재앙 각각은 단지 요행이 아닌, “너는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지라”(출애굽기 6:7) 는 하나님의 주장의 표현입니다.

열가지 재앙은 적어도 세가지 도덕적 주제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집트인의 세계관을 적시고 있던 복잡한 다신론이 있었습니다. 많은 신들은 도덕적 가치들을 떨어트렸지만, 그들 중 어느 하나도 손가락을 들어 국가적 재난을 피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신성사회로서, 이집트는 예언자, 마법사, 신전 제사장등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집트가 모을 수 있었던 모든 주술과 성직자들의 기술은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자신을 신으로 여겼던 파라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무력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국가는 그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도덕적인 우주에 살고 있으며, 그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정의하고, 이에 따라 상을 주시고 벌하시는 것은 그의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스라엘은 주변의 이교도들과 나을 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몇세기 후에 바벨론 망명 하에 다시금 노예상태에 놓였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출애굽기의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현대적 사고

성경의 기록을 대충 읽어도 출애굽기의 많은 부분들이 초자연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명백합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각각의 재앙에 “과학적” 설명을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분석가들의 자연주의적 설명으로부터 그 어떤 만족할 만한 것도 전면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19 세기에, 과학자인 그레타 호트 박사는 피로 변한 나일강은, 일종의 홍조류와 홍수로 인해 떠내려온 특정 토사의 색깔의 혼합 때문이라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브래드 스팍스의 작업은 이러한 자연주의적 접근을 반박하는 좋은 연구로서 추천할 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우리는 출애굽기에 기록된대로, 그것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론

끝으로, 성경은 “이집트인들의 경험”을 단지 과거의 유물로 붙들고 있는것이 아닌, 오늘날 현대 교회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합니다. 법을 결정하시는, 동일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간곡히 명하십니다. 가나안이나 이집트의 이교도적 신들처럼 우리에게 변덕스럽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 인격으로, 그의 자비로우심으로,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죄와 멸망의 속박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분으로서 그렇게 명하십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