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빠진책들?

 어떻게 성경은 매우 많은 책들을 빠트릴 수가 있습니까 왜 유대인들과 초대 교회는 하나님에 관한 다른 고대문서들을 제외시켰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책들이 옳은 것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오늘날 비평가들 중에서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과 일치하게, 구약에 포함되었어야 하는 몇몇 책들이 제외되었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비평적 공격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챕터는 구약이 다른 고대 유대인의 기록을 포함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다룰 것이며, 성도들에게 이러한 공격들에 대해서 어떻게 올바르게 대응할 것인지를 설명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경

유대인의 성경은 그 자체의 주장에 의하면, 그 숫자가 정해져 있고, 신적인 기원을 가지며, 권위있는 책들의 모음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어떤 책이 포함되고 어떤 책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유대인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구약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지도, 같은 방식으로 세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원전(canon)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각각의 책들이 기록한 역사와 가까운 시점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만한 설득력 있는 이유는 없습니다 – 처음 다섯 권은 모세의 시대에, 역사적 기록들은 실재 일어난 때와 가까운 시점에, 시편은 다윗왕의 일생 중에, 선지서들은 그들이 계시를 받았을 때에. 구약의 많은 책들이, 포로 생활을 마치던 이스라엘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기원전 5세기정도에 완성되었다는 가설은 증거가 없이 추측에 근거한 것입니다.

로마에 의해 사로잡히기 전까지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의 반란을 이끌었던 요세푸스 (A.D. 37-100)는 그의 유대교 변호에서, 유대인들은 그리스인들과 달리 많은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서로 다르고 모순되는, 셀수 없이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지 않고, 과거의 기록을 포함하고, 신적 계시를 통해 받았다고 믿어지는, 단지 22권의 책들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22권의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39권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 그리고 12 권의 “소선지서”는 하나의 책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었기 때문에, 요세푸스는 “그 어떤 유대인도,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바꿀 정도로 용감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적인 유대인 철학자 필로 (기원전 25 – 기원후 50)는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모세)가 기록한 것 중 한 단어도 변경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확립한 법과 관습들에 반한 행동을 하기보다, 천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스라 선지자가 기원전 400년 경 알려진 책들을 모아서 정확하게 필사하도록 했다는 잘 확립된 전통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확인되며, 탈무드 및 다른 유대 문학에서 표현된 관점과 일맥상통합니다. 신약학자 존 웬햄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모세 5경이 실질적으로 모세의 정경이었던 것처럼, 구약 정경이 실질적으로 에스라의 정경이었다는 것을 의심할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구약의 소실된 책들

구약에는 명백히 성경적 사건들과 등장 인물들의 삶을 더 구체화해 줄 수 있는 기록들에 대한 언급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됩니다: 야셔서 (the Book of Jasher) 가 여호수아 10:13과 사무엘하 1:18에서, 주님의 전쟁에 관한 책 (the Book of the Wars of the Lord)이 민수기 21:14에서,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 (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와, 유대왕들의 연대기(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가 열왕기상 14:19,29 에서(이들은 역대 상, 하 일 수 있습니다) 언급됩니다. 추가적으로, 솔로몬의 행적에 관한 책 (열왕기상 11:41), 다윗 왕의 연대기 (역대상 27:24), 선지자 사무엘의 기록 (아마도 사무엘 상,하), 나단 선지자의 기록, 갣 선지자의 기록 (역대상 29:29), 아히야의 예언, 선지자 이도의 환상 (역대하 9:29) 에 관하여 언급됩니다. 사무엘 상, 하와 역대 상, 하와 일치할지도 모르는 책들을 제외하면, 위에서 언급된 다른 책들은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내용에 관하여 논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명백히, 그 책들은 히브리 구약 정경에 독자적인 책으로써 포함되기 위해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성경 편찬자들에 의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경 (The Apocrypha)

말라기서부터 마태복음까지, 우리는 400년 이상 성경이 침묵한 것을 봅니다 (다니엘서 11장에서 이 기간동안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적으로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유대인 자신들도 이 기간 동안, 그 땅에 선지자의 음성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 기간은 “신구약 중간기”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간극을 메우는 다른 책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아포크리파 라고 알려진 14 권 (만약 예레미아의 기도가 바루크와 독립적이라고 여겨지면 15권) 의 책들은, 역사와, 그 당시 유대인들의 사상을 설명하며, 역사와 신화, 사실과 상상, 시, 그리고 종말론적, 묵시 문학의 혼합입니다.

에스드라 상은 요시아 왕으로부터 기원전 587년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 그리고 페르시아 왕들 치하의 예루살렘의 재건을 다룹니다; 명백히 역대 상, 하, 에스라 그리고 느혜미아가 사용되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흥미로운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에스라 3장과 에스드라 5장 사이의 족보입니다. 에스드라 하는 이스라엘과 지구에 대한 미래의 심판에 관해 에스라가 받았다고 하는 일련의 환상을 포함합니다.

토빗의 이야기는 이 유대인이 어떻게 앗수르 정복기에 망명했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는 그가 레위기의 율법을 충실히 이행한 것을 자랑하며, 이야기는 그와 그의 아들 토비아스의 일생을 간략히 다룹니다. 주디스서는 “앗수르의 왕 느부갓네살”의 시대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합니다. 흥미롭게도, 주디스는 앗수르 장군 홀로페르네스로부터 그녀의 도성을 구하고, 이야기의 영웅이 됩니다. 에스더서는 갑자기 끝나는 성경의 에스더서의 이야기에 6장을 덧붙힙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를 크세르크세스 (성경의 아하수로스)왕 대신, 그의 아들 아르탁세르세스의 시대로써 묘사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에스더서를 되풀이하거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에스더서와 다르거나 모순됩니다. 그것은 에스더의 긴 기도문을 포함하며, 성경과 다르게, 하나님의 이름과 주님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집회서는 둘 다, 세상의 허영에 대한 도움이 되고 진실한 평가와 거룩한 삶의 가치를 포함한 지혜문학입니다. 바룩은 예레미아의 서기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예레미아 36:4), 예루살렘의 멸망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기원후 100년 정도에 기록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룩이 기록했다고 하는 다른 책들 (바룩 2서, 바룩 3서)도 있습니다. 짧은 세명의 거룩한 자녀들의 노래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불 가운데서 불렀다고 하는 노래이며 (다니엘 3), 수사나의 역사는 다니엘이 두 사악한 판사들의 계략으로부터 연약한 소녀를 구출하는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벨과 용은 다니엘서의 내용에 추가적으로 덧붙이며,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를 그 배경으로 합니다; 벨은 다니엘이 경배하기를 거부했던 우상이며, 당시의 경배의 대상이던 용은 다니엘에게 매우 분노합니다. 짧은 마나세스의 기도는 유다의 마나세스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혔을 때, 드렸던 회개기도라고 합니다 (역대하 33:12-13). 마지막으로, 마카비의 두권의 책은, 기원전 2세기 유대에 의한 셀레우코스 왕조에 대한 전쟁인, 마타티아스 마카비우스와 그의 아들들의 마카비안 전쟁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마카비의 두번째 책은 유대인들의 영웅적인 고난과 순교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합니다.

외경과 우리의 성경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책들이 기원전 1,2세기(어떤 책들은 그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에 동의하며, 따라서 에스라 혹은 다니엘에 의해 기록된 진본일 수 없습니다. 에스더서와 같이 성경 기록의 추가적인 내용들은 열정적인 작가의 상상이나, 히브리 문학을 직접 접하지는 못했지만, 성경의 이야기나 다른 구전들을 듣고, 그 기억에 의해서 고안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책들은 히브리 성서의 일부로서 고려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필로는 다섯 권을 제외한 모든 구약 성경을 인용하거나 (모세 5경을 2,000번 인용한 것을 포함하여), 언급하지만, 전혀 외경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비슷하게, 요세푸스와 1세기의 얌니아 유대 공회, 그리고 유대의 탈무드는 명백하게 외경이 히브리 성서의 한 부분이 아님을 명백히 밝힙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서 기원전 450년 경 말라기서로 끝났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충실한 선지자”가 나타나야 할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초기의 영어 번역 성경 대부분은 외경을 포함했습니다. 14 세기 존 위클리프와 그의 팀의 번역은 외경을 구약 전반에 걸쳐 흩어 놓았지만, 나중 번역은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외경을 따로 배치했습니다. 1555년 커버데일의 성경은 조심스럽게, 외경이 “의사들에 의하여 다른 성경의 책들과 같은 명성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심지어 후대 개혁가들, 청교도들, 세익스피어, 밀튼, 번연, 그리고 스캇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1560년의 제네바 성경도 구약과 신약 사이에 외경을 포함했습니다만 그것들은 “정경이라고 불리는 다른 성경과 일치한 점을 제외하고는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자세히 설명되거나, 기독교의 그 어떤 주장을 증명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고 엄중히 조언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역사와 “거룩한 생활 방식에 대한 설명”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더 확장하는 데 쓸모있다고 여겨집니다. 1599년부터, 제네바 성경은 외경 전체를 빼 버렸습니다. 1611년 킹 제임스 판은 외경을 끝에 포함시켰습니다. 1647년까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외경을 “인간의 글” 그 이상이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에서 외경을 암시하는 것을 찬으려 시도해 왔고, 이것은 사도들이 외경을 그들의 정경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히브리서 1:3은 지혜가 “영원한 빛의 반영이고, 하나님의 사역의 흠없는 거울이며, 그의 선하신 이미지”라고 표현된, 솔로몬의 지혜서 7:26에 대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12:22의 “무수한 천사들”은 에스드라 2권 6:3에 묘사되어 있는 “무수한 천군들”을 반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 단어들의 유사성은 매우 약한 연관성을 보이며, 특별히 두 암시적 표현들은 일반적인 생각과 단어들입니다. 웬햄은 이러한 것들이 고의적인 암시였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현대 종교적 문학적 암시도 고금의 찬송시를 정경화해야 할 것입니다.” 라고 지적합니다. 비록 사도들이 외경을 넌저시 언급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단 한번도 그 원천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반면 그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에는 거의 언제나 그것을 밝힙니다.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지도자였던 아타나시우스 (A.D. 296-373)는 정경화된 책들과, 읽으면 도움이 되지만 성경으로 여길 수 없는 책들, 그리고 피해야 할 책들을 구분함으로써, 당시 로마 제국 전체 및 다른 지방에서 널리 퍼져 있던 교회의 견해를 대변합니다. 출수사에서(?) 그는 정확히 우리가 가진 성경과 같은 66권의 책을 나열합니다. 그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한 것처럼, 저는 단순한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단순함과 순수함으로부터 어떤 사람들의 교묘함에 의해 유혹될까봐 걱정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쭉 진짜 책 (정경)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다른 책들 (외경)을 읽음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까봐 걱정입니다.” 아타나시우스는 거룩한 영감을 받은 성경과 출처가 불분명한 책들을 뒤섞는 사람들에 대하여 경고했습니다. 그는 “출처가 불분명한 책들”을 이야기 할 때, 외경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것처럼 위조된 몇몇 책들과 편지들을 언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물려 받았고, 신성으로 영감받았다고 인정된” 책들을 묘사하며, 정경(can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입니다. 아타나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그 누구도 이것들에 무언가를 추가하도록 하지 마십시오; 이것들로부터 그 어떤 것도 빼지 마십시오.” 그는 외경의 몇몇 책들이 교회에서 읽혀지는 것이 허용되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타나시우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한 때 어거스틴을 포함한 몇몇 교부들은 외경을 정경으로 여겼습니다. 동방정교회는 외경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트렌트 공회 (1546-1563)에서, 로마 교회는 공식적으로 외경을 그들의 정경에 포함시켰습니다 – 그렇지만, 그들은 “제 2 정전” 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공회는 그들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파문을 선포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정경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 그들의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외경이 필요했습니다. 마카비 하 12:39-45 는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하는 것의 중요성은 바룩 3:4과 마카비 하 12:44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용서를 얻기 위하여 자선적 기부를 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토빗 4:10과 12:9 에 나옵니다.

반면, 종교개혁 이래, 개혁주의 교회들은 많은 타당한 이유들로 인해, 외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일부로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펴 보았듯, 몇몇 외경 특별히 토빗과 주디스에는 명백한 역사적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유대인의 탈무드, 그리고 얌니아 공회 (A.D. 100)는 외경을 정경으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추가적으로, 우리에게 사해 사본으로 알려진 것을 기록한 사람은 외경을 전혀 성경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외경들도 스스로 성경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한 말인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this is what the Lord say)”에 해당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A.D. 170년 사르디스 교회의 지도자였던 멜리토는 유대인의 성경의 정확한 한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예수라렘으로 여행을 갔고, 그는 몇몇 유대인이 의심을 품었던 에스더서를 제외하면, 우리가 가진 구약과 정확히 일치하는 리스트를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몇몇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구약을 사용한 것에 비하면 미미하긴 하여도, 외경을 인용하였습니다만, 그들이 외경을 구약과 동등하다고 인정한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이 외경을 성경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수백번 구약을 직, 간접적으로 인용하셨지만, 그들은 외경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인용할 수 있었음에도 단 한번도 외경을 인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위 하나만으로도, 외경은 성경에 추가되어서는 안됩니다. F.F. 부르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우리 주님과 그의 제자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구약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의 의미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셨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약의 한계가 어디인가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른 책들?

에녹서는 외경의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외경에 포함된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포함되어야만 한다고 제안합니다. 유다서 14-15는 에녹 1서 1:9의 인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유다가 이 글을 인용했다고 해서 그 책 전체가 신적인 권위를 갖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가 주장을 하기 위해서 그가 인용한 구절들을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기원전 2세기 경 기록된 이 책은, 창세기 5:18-24에 언급된 에녹이 그 저자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노아의 때의 홍수와, 천사들의 타락을 언급합니다. 지옥과 천국에 대한 환상, “인자”, 지구와 우주에 관한 천문학, 그리고 태초로부터 메시아의 왕국까지의 세상의 역사에 관한 종말론적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과 비슷한 면은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 초기 영지주의 이단에 영향을 미쳤거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가 된 적이 없습니다.

무녀경 (Sibylline Oracles)은 기원전 200년과 기원후 250년 사이에 창작된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 시문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에 전혀 언급된 적이 없으며, 현존하는 초기 기독교 기록 중 이것을 성경으로 고려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 저자가 간혹 어떤 책을 인용하거나, 암시한 것이 그들이 그것의 권위있다고 고려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33에서 바울은 메난드로스를 인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아테네에서 설교했을 때 (사도행전 17:28) 아르투스를 언급했으며, 디도서 1:12-13의 에피메니데스로부터 인용한 크레타인들에 대한 요약은, 한 설교자가 설교 할 때 실례를 들거나 인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70인역

70인역은 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70이라는 이름은 그것이 70명 (아마72명)의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작업은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까지, 그리스어는 로마 제국을 걸쳐 가장 일반적인 언어였고, 70인역은 사도들과 초대교회가 사용한 구약 본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가끔 70인역을 인용했고, 이러한 이유로 히브리 원문과 의미는 같지만 형태가 약간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가끔, 신약에 존재하는 구약의 인용이 전혀 다른 번역본으로부터 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2:18-21은 히브리 원전이나 70인역의 이사야서 42:1-4 본문 모두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점은 작으며 그 의미를 변경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다른 책을 인용한 것이 아닌, 단지 어떤 번역 본문이 사용되었느냐의 문제입니다. 최초의 70인역 완본은 외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원후 4,5세기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경이 정확히 얼마나 일찍부터 포함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결론

유대인들과, 예수님, 제자들, 그리고 기원후 첫 3,4 세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39권의 책이 히브리 구약의 유일하게 신적으로 부여된 본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합니다. 오직 이 39권의 책들은 확실한 수의, 신적인 근원을 가지며, 권위있는 책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