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출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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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비평가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 점차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새로운 종교입니다. 그들의 반박은 다음의 질문과 비슷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기독교보다 훨씬 더 오래된 종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서 옵니까?”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몇가지 접근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믿음 체계가 오래되었거나 새롭다는 것은 그것의 진실성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주장 전체는 비논리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대는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 일으킵니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기 전, 하나님은 인간에게 진리를 가르치시는 데 관심이 있으셨나요? 이 장에서는 비평적 주장들의 기본적 전제를 해체하는, 성경 안에 있는,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개념에 대하여 탐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출현이란 무엇인가?

많은 독자들은 구약에서 특정 인물들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에 대하여 혼란스러워 합니다. 성경은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출애굽기33:20), 어떻게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수 있습니까? 이 구절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 전에, 이 구절들 중 두개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창세기 18:1-3).

야곱: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세기 32:24-30).

많은 신학자들은 이 구절들을 하나님의 출현이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theophanies” 혹은  “Christophanies” 로써 좋아합니다. 이 단어들의 뜻은, “하나님의 출현” 혹은 “그리스도의 출현” 입니다.

구약은 또한 몇번에 걸쳐 “하나님의 천사”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예를 들면, 이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그녀가 삼손을 낳을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스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이에 그 여인이 가서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사사기 13:3-6).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위의 구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천사”를 언급한 많은 다른 구절을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의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동의합니다. 다양한 구절에서 제시된, 이 “천사”의 몇가지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천사”는 남성 대명사로 지칭됩니다 (창세기 16:13; 사사기 6:21).
  • 그는 하나님과 동일시됩니다 (사사기 6:11, 14; 스가랴 12:8).
  • 그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사사기 6:21; 13:20).
  • 기드온과 마노아는 그들이 “천사”를 대면했기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사기 6:22; 13:22).
  • “천사”는 미래의 일들을 정확하게 예언했습니다 (사사기 13:3).
  • 그의 이름은 “기묘자(wonderful)” 입니다 (사사기 13:18; 이사야 9:6).
  • 그는 하룻밤에 185,000 명의 앗수르 병사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열왕기하 19:35).

비록 천사들이 때때로 이러한 기적이나 예언들을 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천사 (the Angel of the Lord)” 를 일반적인 천사로 볼 수 없는 명백한 예들이 존재합니다. 그는 때때로 하나님과 동일시 되었고, 예배를 받으셨으며, 그를 보았던 적어도 두명의 사람이 그를 대면한 것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은 이러한 속성과 행동을 명백하게 하나님의 것으로 봅니다.

고려해야 할 몇몇 다른 언급도 있습니다. 스가랴서 3:1-2 에서, “하나님의 천사”는 야훼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야훼와 구별됩니다. 요한복음 1:18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사람들은 성부 하나님 혹은 성령 하나님이 아닌 숭자 하나님만을 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군대대장” (여호수아 5:14)은 “하나님의 천사”와 같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대장”이 검을 들고 있었으며, 거룩한 천사들이 거부하는 일인, 여호수아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10, 22:8-9).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천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시긴 하였지만, 신약의 예수님의 출생 이후에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9:1-6, 22:6-10, 26:14-19; 고린도전서 9:1, 15:8).

이러한 진리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약의 “하나님의 천사”가 다름아닌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해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불렸고,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보였고, 경배를 받으셨으며, 성부와 성령 하나님과 구별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중요성과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타나심 (theophanies)는 예수님의 특별하심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또한 몇몇 사람이 성경의 하나님을 그릇되게 연관시키는 동떨어진 이신론적 신과는 달리,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보여 줍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불가운데에서 4명이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할 때에도 하나님이 나타나신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니엘서3:25 는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예수님을 가리키는 듯 하고, 실재로 예수님일지도, 혹은 천사일지도 모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분명히 용광로에서 네번째 존재를 보았습니다만, 우리는 이때 이교도적인 왕이 그의 다신론적 관점에서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말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스며, 그는 용광로에 있는 네번째 인물을 영어로는 “a son of the gods” 라고 직역되는 “bar’elahin”이라고 부릅니다. 이 직역은 뉴킹제임스 버전 성경의 주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성경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 이외에, 구약에서 예수님의 출현은, 예수님이 단순하게 말씀하신 것처럼,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시기 전에 그가 존재하셨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58).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은 또한 그의 처음 출현하시기 전부터 그가 존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1-3; 골로새서 1:16).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미가엘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의 설립자인, 찰스 테이즈 러셀은, 예수님이 만물의 창조자가 아닌,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예수님과 미가엘은 같은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님과 미가엘을 연결시킵니다. 존 칼빈과 매튜 헨리는 다니엘서 12:1-4에 관한 그들의 각각의 해석에서 비슷하게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 둘 중 아무도 예수님이 창조된 존재라고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미가엘은 “하나님의 천사”를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서 10:13에서, 미가엘은 “최고 왕자들 중 하나”라고 불립니다. 예수님은 단지 어떤 그룹의 한분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셨을까?

예수님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신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예언으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은 여인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부서뜨릴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이사야서 7:14 역시 암마누엘이 처녀에게 잉태되실 것이라는 예언을 말씀합니다. 그는 또한 인간과 공함하실 수 있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4:15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주요 이유들중 하나는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10:4는,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은 계속해서 레위기의 제사장들이 우리의 죄를 결코 제거할 수 없는, 같은 제사를 반복해서 드렸음을 나타냅니다. 대신에, 이 제사는 인간의 죄를 가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제거되기(용서되기) 위해서, 우리는 완벽한 사람의 피를 필요로 합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14).

마리아에 의해 잉태되심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혈육-구원자(kinsman-redeemer)”(룻기 3:12)가  되시기 위하여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아담의 문자적인 후손이 되심으로, 예수님은 아담의 아들들을 위한 완벽한 대속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돌아가셨고, 무덤에 묻히셨으며 구약의 성취로써 부활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3-5). 그는 아담의 후손들과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1-22). 단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은 율법을 완벽히 이루셨고, 흠없는 어린양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히브리서 9:14; 베드로전서 1:19). 죄없는 삶을 사심으로, 그는 우리가 따라야 할 순종의 완벽한 예를 제공하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을 입고 사신 완벽한 삶과 죽음으로, 그는 사탄의 능력을 부수셨습니다 (히브리서 2:14).

구약의 성인들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어떻게 인지하였나?

창세기 18장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최소한 2번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12:7, 17:1). 그리고 다른 몇번,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1, 13:14, 15:1).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과거와 같은 형태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결론짓는 것은 이성적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주님과 두명의 “남자”(천사)를 보았을 때, 아브라함은 그에게 달려가 절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전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 하나님을 보았을 때, 어떻게 그가 하나님인 것을 알아차렸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언급한 많은 다른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고려할 때,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천사”를 본 거의 즉시 그를 알아본다는 것을 압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셨을 때일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한 후,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몸을 가린 후, 그들은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창세기 3:8). 그들이 하나님을 마주하기 전에 동산에서 거니시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나타나셨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메세지를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파라오,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통하여 미래의 사건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다니엘과 에스겔, 요한 등의 사람들에게 환상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곳에서,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에게 왔다”고 말씀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경우들에서, 하나님이 실재 나타나셔서, 그 인물과 대면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 가능합니다. 혹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을 때처럼(열왕기상 19:12-13), 하나님이 육체적으로 나타나시지 않은 상태로 음성으로만 말씀하셨다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성경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들과 말씀하셨다고 말씀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왜 때때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셨는가에 관계 없이, 우리는 그가 나타나셨을 때, 그의 메세지를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알려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사람과 천사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가?

히브리서 13:2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어떤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적어도 그의 손님들 중 한명은 초자연적인 분이라는 것을 온전히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대접하던 사람들이 천사들이었는지 “하나님의 천사”였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19:1-2의 롯, 그리고 사사기 6:11-24의 기드온).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사람과 천사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명백한 구분이 있습니다.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들인 반면 (히브리서 1:13-14), 사람은 영적인 요소를 지닌 육적인 존재입니다 (누가복음 24:39; 사도행전 17:16). 천사들은 (적어도 그들중  몇은), 하나님이 허용하실 때, 인간의 형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천사의 형상을 입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인간이 “천사보다 열등한” 존재로 지어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시편 8:4-6을 인용합니다. 천사들은 분명히 인간들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몇 측면에서는 인간이 천사보다 더 잇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2는 우리에게 “천사들도 보기를 원하는” 것들, 말하자면, 구원의 메세지에 관련한 것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이 되셨고, 오직 아담의 후손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들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의 형상을 입지 않으셨고, 그들을 위해 돌아가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2:16).

따라서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해 천사들이 사람의 형상을 취할 수 있지만, 천사들은 실재 아담의 후손이 될수는 없습니다. 반역한 천사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역한 인간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기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사탄과 이러한 많은 반역한 천사들이 인류를 속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6:10-13, 고린도후서 11:14-15).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듣는 메세지가 성경, 특별히 복음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분별해야 하며, “영을 시험해야”합니다 (요한1서 4:1-3, 갈라디아서 1:6-9). 우리가 실재로 거짓의 아비에 대항하여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거짓 그리스도”가 아닌, 진정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성경을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야 합니다(마태복음 24:24).

결론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이 장의 초반부에 제기되었던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류에게 진리를 가르치는데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태초로부터,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특정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그는 에녹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다른이들과 의사소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법을 주셨습니다.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이 그들의 죄악된 길에서 돌아서도록 경고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그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신약은 예수님을 성부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로서 보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빌립에게, “나를 본 이는 아버지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9). 예수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1세기에 놀라운 기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 대하여 친밀한 관심과 걱정을 가지셨으며, 때때로 하나님은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그들과 교류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거짓 종교들은 인류의 타락이후 곧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이 제 6일에 인간을 만드신 이후로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을 증인 없이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