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표 전쟁?

 이집트와 다른 고대 국가의 초기 역사와 성경의 역사가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보다 1세기 전, 그것이 실재 역사건 날조된 역사건 간에, 어느 나라가 더 유서깊은지를 보기 위하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960년대에 초강대국들 간에 군사 경쟁이 일어났던 것처럼, 예수님의 탄생 1세기전의 고대문명 가운데에서도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각 나라는 자기네가 더 오래된 역사를 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저자들은 진실에 관심이 있는 듯 보인 반면, 다른 사람들은 어느 나라가 더 자신들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내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는 1,800년을 거슬러 갔습니다. 이집트는 11,000년이었고, 바벨론은 터무니 없게도 730,000년이나 거슬러 갔습니다.

예수님 이후 일세기에, 유세비우스와 같은 기독교인 (“교회사의 아버지”)은 성경의 연대와 이방의 연대를 조화시키기 위하여, 올바른 세계의 연대표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고대 왕들의 명부는 너무나 많은 치료를 받아서,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이후로,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들이 고대의 연대표를 올바로 이해하려고 시도해 왔으나, 같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구하러 오다

다름아닌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뇌”라고 때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이 그의 일생동안 조금씩 이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의 생각을 The Chronology of Ancient Kingdoms Amended 라는 책에 모았고, 이 책은 그가 죽은 1년 후 출판되었습니다.

뉴턴은 현대 고고학의 잇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그리스와 라틴 고전들을 매우 잘 읽었기 때문에, 기원전 700년 이전의 고대 기록의 연대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기본적인 주장들은 견고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포함한 모든 구체적 묘사에서 정확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410-415)
  • 성경 그 자체를 제외하면, 초기 국가들의 역사들은 그 사건들이 벌어진 지 훨씬 더 지난 후 기록되었습니다 (483-484).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에 대해서 최초로 기록한 역사가는 기원전 484년에서 425년까지 살았던 헤로도투스 였습니다.
  • 대부분의 초기 역사에 관한 기록은 외부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거나 왜곡되었습니다.
  • 고대인들은 간극들을 메우기 위하여 큰 가정을 하기를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193).

뉴턴은 이집트에 대한 페르시아의 침략을 예로써 언급했습니다. B.C. 525-523 에, 캄비세스 통치하의 페르시아는 이집트를 침략해, 앗시리아와 다른 이전의 국가들이 갖고 있지 않았던, 역사적 기록들 대부분을 파괴했습니다. 이집트의 제사장들은 그들 역사의 대부분을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해야 했으며, 그들의 노력에 있어서 속임수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뉴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캄비세스가 이집트의 기록들을 빼앗아간 후, 제사장들은 그들의 신들과 국가가 더 오래되게 보이도록, 매일 새로운 왕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517). 기원전 오세기 중엽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제사장들은 11,340년에 걸친 341 명의 이집트 왕들의 명부를 만들었습니다! 헤로도투스조차 그것을 미심쩍어 했습니다.

수상한 인물들

뉴턴은 성경을 제외하면, 초기 역사가들은 기원전 250년 전후까지 절대적 연대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그 전에는, 그들은 일반적으로 왕들의 통치 연도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3명의 왕들의 평균 통치 기간이 100년으로 가정했고, 날짜들을 이에 따라 대충 끼워 맞췄습니다 (204).

뉴턴은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이것이 이성적입니까?” 그리고, 그는 영국의 군주들과 같은, 몇몇 알려진 왕국의 왕조들을 분석했습니다. 놀랍게도, 평균 통치 기간은 고대의 역사가들이 주장했던 것은 반 정도인, 겨우 18년에서 20년이었습니다. 성경시대 조차, 남 유다의 왕들의 평균 통치 기간은 21년을 조금 넘었고, 북 이스라엘의 왕들의 평균 통치 기간은 약 17년 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한 최초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많은 사건들을 4년마다 열렸던 올림피아드와 연결시켰기 때문에, 뉴턴은 특별히 그리스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이슨의 아르고호 탐험과 같은, 그리스 역사의 중요한 날짜들을 정확히 밝혀 냄으로써, 뉴턴은 이러한 고정된 날짜들과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쉽게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왕들의 통치 기간에 대하여 그가 알아낸 것들을 적용했을 때, 기원전 700년 이전에 기록되었던 역사의 절반은 증발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트로이 전쟁과 아르고호 탐험은 일반적으로 가정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근대의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로마 왕들의 명부와 같은 다른 왕들의 명부또한 그들의 통치 연대에 있어서 과장되어 있으며, 그 명부는 반으로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뉴턴은 그리고 계속해서 이집트와 같은 다른 나라들의 역사들을 살피고, 가상의 이름들과, 신화적인 시대를 배격했습니다. 그의 추정에 따르면, 그의 시대에 활용가능했던 정보에 기반해서, 뉴턴은 고대 이집트에 있어서 단지 22명의 이름만이 실재 왕들을 반영한다고 계산했습니다 (486).

상황을 종합하다

알렉산더의 제국이 서로 전쟁하는 왕국들로 쪼개졌을 때, 각국은 서로 더욱 긴 역사를 갖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 (356-323 B.C.) 가 그리스 군대를 이끌고, “알려진 세계”를 가로 질러 바빌론/앗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고 인도 지역을 점령하기 이전에 살았던 저자의 역사적인 기록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더 오래된 역사들은 때떄로 후대의 저자들에 의해서 인용되었지만, 그 최초의 기록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후대의 저자들의 기록에 의존해야 합니다.

문제는 알렉산더의 제국이 그의 장군들에 의해 통치되던 서로 전쟁하는 파벌들로 쪼개지면서, 각 왕국들은 그들 자신의 역사를 홍보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입니다.

이집트에 대한 마네토의 역사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에, 역사를 가공하는, 진정한 “가내 수공업”이 번창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가들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이집트에 살았던 마네토 (기원전 3세기)일 것입니다. 그는 제사장들이 그에게 말한 긴 이집트 왕조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역사는 헤로도투스가 그보다 200년 전에 기록한 것과 거의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네토 이후 2세기가 지나,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라고 하는 그리스 역사가는 새로운 판의 이집트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마네토의 왕조들을 무시했고, 이집트 왕들의 숫자를, 헤로도투스가 했던 것처럼 단지 몇명으로 축소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의로 신기한 이야기들을 말하고,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신화들을 꾸며낸” 헤로도투스와 다른 고대의 역사가들 또한 거부했습니다.

엉망진창입니다! 뉴턴은 마네토의 작업을 거부하고, 그 대신 디오도루스와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조화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뉴턴은 마네토의 명부에 기록된 다른 왕들의 이름들이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반면, 그는 최종 명부의 길이는  마네토의 명부의 길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다고 믿었습니다 (515).

바벨론에 대한 베로수스의 역사

몇 세기를 지나, 바벨론의 제사장들은 많은 신화들과 함께, 그들의 왕들의 엄청난 명부를 제작했습니다. 이러한 글들을 사용해서, 베로수스라는 바벨론의 천문학자는 세 권으로 이루어진 바벨론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290-278 B.C.). 그가 기록한 바벨론의 역사는 몇백만년에 걸친, 창세로부터 전설적인 왕들과, 신비한 바벨론의 홍수를 기록합니다.

그리스의 다양한 도시와 주의 역사

질투심을 가졌던 도시 국가연합인 그리스 또한 이 역사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스는 이집트와 바벨론과 같은 고대 왕들에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역사가”였던 로즈의 카스트로 (기원전 1세기)는 그리스의 신들의 초기 연대들을 고안해 내고, 시키온의 설립자로 알려진 아이기알레우스로 시작하는 많은 왕들의 명부를 만들었습니다. 아르고스는 이나코스라는 그들 자신의 왕을 고안해 냈으며, 아테네는 오기게스 라는 이름의 왕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고대의 연대에 관한 이러한 혼란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고대의 연대를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명백하게, 정확성입니다. 그리고 정확성은  성경과 완벽하게 일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고대 역사의 모든 연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닌, 모래의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현대의 세속적 역사가들은 성경에 대한 깊은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이집트 연구가 제임스 K. 호프마이어가 기록한 대로, 그들은 역사를 “불신의 해석학”으로 해석합니다. 심지어 신학자들조차, 소위 다른 고대 문화의 역사를 수용하기 위하여,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를 확장하려고 합니다. 성경 본문은 즉시 부정확한 것으로 가정됩니다.

아이작 뉴턴은 올바른 접근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올바르게 이해되었을 때) 고대 역사의 그 어느것도 성경적 역사와 부딪칠 수 없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흥분되는 발견들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격담을 담은 기록은 100% 사실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인류 역사의 연대표를 연구함에 있어서 유일하게 확실한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