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수의 그것이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있었는가?

 약 4m 길이, 1m 너비의 놀라운 수의가 1357년 프랑스에서 처음 나타났고, 지금은 이탈리아의 토리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천에는, 현실적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 (그리고 몸)자국이 잔상처럼 남아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것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육신을 감싸고 있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수의의 상이 기적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27:59, 마가복음 15:46, 그리고 누가복음 23:53을 인용하여, 이러한 기적의 가능성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지셨을 때, 하나의 천이 사용되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육신을 감싸고 있었던 천과 동일한 것일까요? 이것에 대하여 곧 더 언급하겠습니다.

주장들, 논란, 그리고 주의할

어떤 사람들은 그 수의가 실재로 도마와 다데오 유다의 소유였고, 예수님의 부활 직후 에데사로 옮겨졌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프랑스로 가게 되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근대에, 많은 실험들이 수의에 행해졌습니다. 가장 논란이 일었던 것들중 하나는, C-14 분석입니다. C-14은 단지 몇천년의 범위 내의 연대를 제시할 수 있으며, 많은 필요한 가정들로 인해 매우 부정확합니다. 어쨌든,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그것은 “몇백만년”에 해당되는 연대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탄소로 구성된 고대 유물들에 대해서 C-14 분석법을 사용합니다.

천으로 만들어진 수의는, C-14 의 후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중세” (약 1500년 전) 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수의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의 연구는 연대 측정에 사용된 부분이, 그 수의를 수선하기 위하여 사용된 천조각이었다는 것을 밝혀 냈고, 따라서 다시금 논란이 일었습니다. 어쨌든, 토리노 수의의 다양한 측면에 대하여 많은 실험들이 행해졌고, 상호 심사 논문들이 출판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이 수의에 관하여 “누가 무엇을 말했거나” 혹은 “누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고 하는 것등에 관해 깊이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올바른 기초 위에서 출발하기 위하여, 그 근원을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토리노의 수의의 진정성을 옹호하거나 반박하는 많은 논쟁들이 있어 왔습니다.

성경은 토리노의 수의가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있었다고 말씀하는가?

먼저, 토리노의 수의는 성경에 그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으며,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것 처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내리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큰 천에 호소해 왔고, 그것이 예수님과 함께 묻혔다고 가정합니다.

십자가 처형 이후, 예수님의 육신은 빌라도가 명한 채찍질 (마태복음 27:26), 가시 면류관 (마태복음 27:29), 그리고 그의 손과 발에 박힌 못들 (사도행전 2:23)로 인해 피로 얼룩졌을 것입니다. 그의 옆구리를 관통한 창(요한복음 19:34)으로 인해 더 많은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 천에는 많은 피가 묻어 있었고, 예수님의 육신을 최초에 닦는데 쓰였을 것입니다. 이 천이 예수님의 육신이 무덤으로 옮겨졌을 때까지 남아 있었을까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의 기록을 피상적으로 살필 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더 구체적인 것을 묘사합니다 (요한복음 19:38-40).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육신이 무덤에 놓여지기 전에 그 육신을 가져갔습니다. 나중에 니고데모도 참여해서, 75파운드의 향신료를 뿌리고 천으로 그 몸을 감쌌습니다. 향신료를 뿌리기 위하여, 관리인들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감싸고 있던 피묻은 천을 제거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나중에 같은 천을 재사용하였다고 가정할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들이 시신을 닦기 위한 정결 의례를 따라, 시신을 감싸기 위하여 새로운 깨끗한 천을 사용했을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어떤 복음서 저자들도 예수님 시신을 싸기 위한 하나의 조각으로 된 천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 단지 예수님의 얼굴을 싼 작은 천 (손수건으로 표시된)과, 나머지 부분을 감싼 몇몇 다른 천들(요한복음 20:7)이 언급되어 있을 뿐입니다. 사실, 요한은 나사로도 같은 방식의 매장을 당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43-44).

예수님의 부활 시, 요한과, 누가 모두는 예수님의 얼굴을 덮었던 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12; 요한복음 20:3-7). 그들은 다른 것들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우리는 무덤 안에 다른 어떤 천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의에 관한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생각을 성경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을 주의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을 옳게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15). 성경의 본문을 올바르게 읽을 때, 무덤 안의 수의에 관한 어떤 언급도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매장된 수의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마태복음 27:59, 마가복음 15:46, 혹은 누가복음 23:53을 사용하여 수의가 무덤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예수님의 얼굴을 덮은 천과 함께, 시신을 덮는 데 도움을 주었던 수의라고 주장합니다. 성경 본문은 이렇습니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마태복음 27:58-60).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마가복음 15:44-46).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누가복음 23:50-54).

이러한 구절들은 천 하나가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덤에서 예수님을 싸고 있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천이었을까요?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가 언급하는 천은,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졌을 때 예수님의 몸을 싼 깨끗한 세마포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손과 발의 못자국 (사도행전 2:23), 십자가에 못박히시기전 매 맞으심 (마태복음 27:26), 가시관을 머리에 쓰심(마태복음 27:29), 그리고 창으로 찔리심으로 인한 물과 피를 쏟으심(요한복음 19:34)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깨끗했던 이 최초의 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지신 후에는 깨끗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그 세마포는 먼저 시신을 닦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 세마포가 십자가로부터 무덤으로 직접 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이러한 구절들은 그렇다라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요한은 더욱더 자세한 묘사를 제시함으로 이러한 오해를 명확히 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의 구절들은 단지 강조점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구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요한복음 19:38-42).

요한은 아리마대 요셉이 매장에 앞서 시신을 가져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니고데모와 75 파운드의 몰약과 침향과 함께, 시신을 세마포로 쌌습니다. 몰약과 침향을 몸에 뿌린것으로 보아, 그 이전의 천은 제거되었음에 분명하며, 그 천이 다시 사용되었다는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

“이제 더러워진” 천이 예수님의 시신을 싸기 위하여 다시 사용되었다고 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몸 전체를 감싸기 위하여, 또다른 하나의 커다란 천이 사용되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 단지 예수님의 얼굴을 감싸기 위한 천과, 세마포 뿐입니다 (요한복음 20:7). 세마포와, 얼굴을 감싼 천은 성경적 매장 풍습입니다. 다시금, 요한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감싼 것이 거의 동일하다고 기록합니다 – 세마포와, 얼굴을 감싼 천, 그러나 추가적 수의의 존재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1:43-44).

나사로가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다리는 그의 몸 전체를 감싼 큰 천에 의해서 감싸져 있지 았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몸 전체를 감은 천이 아니라, 끈과 같은 천이라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하는, 추가적 확증입니다. 요한과 누가 모두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끈과 같은 세마포와, 얼굴을 감싼 천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한다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다른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요한복음 20:3-7).

끈과 같은 세마포가 기적적으로 서로 연결되었다고 호소할 수 있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저에게 그러한 주장을 편지로 보내온 적은 있습니다). 무덤 안에 다른 어떤 천이 있었다고 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추론되지 않은 생각을 성경에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권위보다 더 위에 놓는 것입니다.

스티븐슨과 헤이버마스는 고대 유대의 기록은, 매장에 있어서 커다란 천이 사용되었음을 드러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othonia (보통 “끈과 같은 천”으로 번역되는)는 무덤에서 사용된 모든 천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누가복음 24:12 에서 여러 천들을 포함시코 있듯이 말입니다(얼굴을 덮는 손수건과 수의).

만약 othonia 가 무덤에서 사용된 모든 천들을 가리킨다면, 요한은 왜 이 단어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대신에, 요한은 이용어를 사용하였지만, 다른 무덤용 천들을 배제시켰습니다 (예를 들면, 얼굴을 덮는 별개의 천은, 세마포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음을 묘사한, 요한복음 20:6-7에서 발견됩니다. 반면 누가는 othonia가 함께 놓였음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마포 일 수 있지만, 스트븐슨과 헤이버마스의 주장대로 모든 무덤용 천일 수는 없습니다. Othonia 라는 단어가 단지 세마포가 아닌 다른 것이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과장된 해석인 듯 합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매장하기 위해서 피묻고, 더러운 한폭의 천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특별히 높은 수준의 정결에 기초한 유대인의 매장 관습을 통해 조명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님과 함께 이러한 천이 무덤에 있었다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토리노의 수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릴 사용된 최초의 천일 가능성이 있는가?

한 폭의 천이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있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명백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알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최초에 감쌌고 닦은 데 사용된 천은 어디로 갔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리마대 요셉의 것이었지만, 니고데모가 가지고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도마와 다대오 유다의 손으로 들어가 결국 프랑스의 리레이에 도달했을까요? 우리는 다만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무덤에 있었던 천들은 매장에 사용된 향신료들로 뒤범벅이 되어있을 것이지만, 토리노의 수의에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토리노의 수의가 예수님을 닦는 데 사용된 최초의 천이었다면, 우리는 나중에 이 천이 제거 된 후 첨가된, 향신료가 없다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토리노의 수의가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졌을 때, 그를 닦는 데 사용되었을까요? 저는 그 가능성을 열어 두겠지만, 우리는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결론

성경은 예수님이 묻히셨을 때 한 폭의 큰 천이 사용되었음을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끈 형태의 천과 머리를 싸맨 천이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토리노의 수의가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있었다는 것을 교리화 해서는 안됩니다.

토리노의 수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릴 때 사용한 천일 가능성이 있습니까? 가능하지만, 다시금, 확실히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형상이 나타났다는 일반적인 주장을 논박합니다). 토리노의 수의가 대단히 매력적인 특징을 가진 흥미로운 물건입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이 더욱 연구되어야 할까요? 물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수의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신성한 유물”을 위조하는 것이 성행했던 중세 유럽의 시대라는 점 때문에, 그 수의의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유리에 그린 유화에 빛을 비춰서 천 위에 오래 노출 시키면, 토리노의 수의와 매우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수의에 관련된 모든 질문들을 살펴보는 것이 이 장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추측성 사건들에 관하여 조심하시길 바라며,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의 진실성은 토리노의 수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