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진화론에 대하여

지난 몇년간 창조와 진화에 관한 논란의 강도가 매우 강력해 졌습니다 – 그러나 우리가 예측하지 않은 곳에서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논란의 강도가 교회와 세상 사이에 점점 증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논란이 발생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논란의 불꽃은 복음주의적 진영 내에서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형태의 진화론을 수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뿐 아니라, 몇몇 사람들은 아담과 이브는 원숭이와 같은 동물로부터 진화했거나 아예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유신진화론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된 주제들입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함에 있어서, 독자들이 기억해야할 두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유신 진화론이라는 용어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불행히도, 그 토론을 하는 다양한 그룹들에 의하여, 많은 의도적으로 모호한 어휘가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원숭이와 같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생각과, 우주가 140억년 전 빅 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온전히 믿지만, “저는 유신진화론자가 아닙니다”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둘째, 진화론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독자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유신진화론, 지적 설계 등)가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검사해야합니다. 이러한 검사는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가정을 하지 않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방식으로 해야만 합니다 (대모데후서 2:24-26).

용어의 정의

진화라는 단어는 다른 문맥에서 분명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진화를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한 조사를 하는 질문들을 통해 파헤쳐져야만 하는, 다른 용어들을 사용합니다. 이 개념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어떠한 연속체를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한쪽 끝은 이신론적 관점에서 본 자연계에서 하나님의 역할이고, 다른쪽 끝은 하나님이 그의 계획을 실행하시기 위하여 몇십억년에 걸쳐서 계속해서 그의 창조물을 임시방편적으로 어설프게 손보시는 것입니다. 진화를 이해하는 매우 기초적인 방식은 단지 오랜 시간 (몇천년 혹은 몇백만년)에 걸친 변화로써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주 진화를 1차원적으로 접근합니다 – 생물학적인 차원. 저는 이 논의를 그러한 첫번째 차원 이상으로 확장시켜, 세가지 기본적인 진화의 형태를 포함하기 원합니다: 천문학적, 지질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Page 97. 도표

 

 

위에서 언급한 연속체 안에 그들의 관점이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것들에 동의합니다. 1) 우주는 약 140억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2) 빅뱅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3) 지구는 약 45억년 전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4) 지구상에서 생명체는 화학물질들이 서로 반응하여서 자발적으로 최초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들어짐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5) 생명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점점 더 복잡해 졌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공통된 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하나님이 위의 각각의 과정을 인도하셨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주와 행성이 몇십억년 되었다고 믿으며, 생명체가 서서히 오늘날 우리가 보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이름 (유신진화론자)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을 안다면, 유신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역사의 어떤 시점에 개입하셔서 우리가 오늘날 보는 세상이 유발하게 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유일하게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점은 하나님이 개입하신 정도입니다. 어떤사람들은 천문학적 진화와 지질학적 진화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일어난 반면, 하나님께서는 생물학적 진화에 보다 밀접하게 관여하셨다고 제안하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것은 어떤 형태의 진화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름짓기 놀이: 이름 안에 무엇이 있는가?

유신진화론, 오래된 지구 창조론, 진화론적 창조론, 바이오로고스, 점진적 창조론, 그리고 지적 설계론 모두는 하나 혹은 다른 형태의 진화론을 장려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모임들의 이름입니다. 좀더 명학하게 – 어떤 한 사람의 관점을 작은 표를 달은 상자 안에 넣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 자신이 자신들에게 어떤 표식을 한다고 할지라도, 기원에 관련된 특정 주제를 이해함에 있어서 그 색상의 명암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이러한 주제를 다른 사람들과 논의할 때, 그들은 그들의 특정 견해를 이해하기 위하여 진지한 질문을 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대한 그들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이론들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성경으로 그들의 관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그들 자신의 관점을 똑같이 성경으로 뒷받침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성경적 창조론자가 누군가가 진화를 믿는다는 것을 듣자마자, 그는 그 사람이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나신 것이 아니며, 아담과 이브가 비유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가정해서는 안됩니다.    

유신진화론/ 진화적 창조론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가리켜 “유신진화론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셔서 우주를- 빅뱅으로부터 인간과 그랜드 캐년까지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다음의 이름을 가진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습니다. Thank God for Evolution, Finding Darwin’s God, I love Jesus and I accept Evolution, Evolutionary Creation 등등. 최근에, 진화론적 관점은 많은 유명하고 인기있는 부르스 월트키, 팀 켈러, 프랜시스 콜린스, 피터 엔스, 조엘 헌터, 오스 구이네스 등과 같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습니다.

최근에 우주의 진화론적 이해를 가장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은 바이오로고스 재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 재단은 유명한 유전학자이며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는 프랜시스 콜린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이오로고스 홈페이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 중 하나인 데니스 베네마는 기원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을 구분하는 유용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그들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젊은 지구 창조론자, 늙은 지구 창조론자, 그리고 지적 설계론자들]은 현대 과학의 몇몇 측면을 부인합니다. 주류 과학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유일한 기독교적 관점은 진화적 창조론과 유신 진화론적 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이 싸워야할 적이 아닌, 하나님이 지구상에 생명적 다양성을 불러 일으키시기 위하여 사용한 몇몇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이 관점은 인간이 모든 다른 생명체와 같은 조상을 공유하며, 우리 인간 종이 한 쌍의 부부가 아닌, 집단으로써 생성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진화적 창조론 진영 내부에도,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역사적 커플이 있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은 한 무리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대표자로 선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진화적 창조론 진영의 다른 사람들은, 마치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는 것에 실패하는 것을 대표하는 것처럼, 아담과 이브는 단지 예표론적 인물들이었다고 느낍니다. 과학 (인간 개체군 유전학) 은 명백하게 인류가 개체군으로서 발생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그것이 제가 촛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입니다 (이것이 저의 전공 분야이기 때문에). 저는 신학을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두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주 이러한 점에 대하여 과학이 아닌 신학을 논하려고 합니다.”

바이오로고스 재단과 관련된 사람들은 과학과 기독교 믿음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장려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권위있는 자료로써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자연과학적 방법이 물질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으로부터의 증거에 따르면,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론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 가장 좋은 설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화가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개입하신 방법이라고 단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학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같은 바이오로고스 자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바이오로고스의 비젼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성경이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이라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영을 통하여 오늘날 교회에게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 살아있는 기록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본다면, 그들이 과연 “권위있는” 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정당할 듯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들을 하는 것은 우주에 관한 진화론적 이해를 가진 사람들과 이 주제에 관해 토론할 때, 중요한 부분입니다.

진화론적 창조론 진영 내의 논란이 있는 생각들 중에는, 아담과 이브가 누구이며, 그들이 실재 존재했는가, 그리고 타락의 상태에 관한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담과 이브는 실재로 존재했어야 하며 모든 인간의 실재 조상이었음에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은 진화한 인간 집단 구성원 중 두명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인류를 대표하도록 선택되었다고 말합니다. 또다른 사람들은 본문으로부터 진짜 아담은 필요하지 않다고 보며, 그를 단지 상징적 위치에 놓습니다. 아담의 역사성에 관한 질문으로부터 타락이 실재 사건이었느냐 아니면 인간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어떤 상징의 형태였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인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때,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질문을 해야만 할 또다른 이유를 제공합니다.

설계자가 없는 지적 설계론

몇몇 사람에게는 놀랍게 들리겠지만, 지적 설계론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은 유신 진화론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지적 설계론 운동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빅뱅과 늙은 지구,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진화론적 작용의 일반적인 개념을 믿습니다. 그들은 다위니즘 (혹은 신다위니즘)이 목적과 방향이 없이 무작위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지만, 어떠한 형태의 안내된 진화를 받아들입니다. 생물학적 체계의 특정한 면이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하다”고 결정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이 지점에서 진화의 과정이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를 만들기 위하여, 그 과정을 이끄셨다고 제안합니다.

지적 설계론 운동내의 늙은 지구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하여 의견의 불일치가 존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의 영을 발전된 원인에 주입하심으로써, 인류를 시작하셨다고 제안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실재로 먼지로부터 아담을 창조하셨으며 이브가 정말로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지적 설계론 운동의 몇몇 인기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관점을 명확하게 밝힌 반면, 다른 사람들은 많은 군중들에게 호소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모호한 수사법속에 감추는 듯 보입니다.

월드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비히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겸상 적혈구 빈혈과 같은 일반적인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을 연구할 때, 우리는 자주 그것을 인간의 조상의 단 하나의 돌연변이로 역추적할 수 있습니다. 몇몇 추가적 가정을 가진다면, 같은 사고방식이 다른 종들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영장류들과, 공통적인 유전적 사고와 같은 모든 세상을 찾는 것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공통 조상으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전수 받았다면, 그것은 왜 우리 모두가 그것들을 지금 갖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저는 그것이 설득력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히가 신-다윈주의의 무작위성을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화론자입니다. 2010년 학회의 강의에서, 비히는 한 답변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진화가 일어났다는 점에 있어서 신-다윈주의적 진화를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적어도 생명체 사이의 비슷한 점을 합리적으로 설명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습니다.”

동일하게, 윌리엄 뎀스키는 최근, 인류가 진화된 원인으로부터 나왔을 가능성(하나님이 진정한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영을 주입시키심으로) 을 포함하여, 진화론이 성경의 기원에 관한 설명과 일치할 수 있다고 확언했습니다. The End of Christianity 라는 책에서, 그는 진화론적 과정의 자연계의 악이 설명될 수 있도록,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존재했던 죽음과 고통에 관한 설명을 했습니다. 그의 다른 책에서, 뎀스키는, 자신은 개인적으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히 창조되었음을 믿고 다윈주의적 진화론을 거부하지만, 지구가 몇십억년 되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빅 뱅과 지질학적 진화와 몇몇 형태의 생물학적 진화를 인정하는 지적 설계론 운동의 많은 다른 지도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러한 문제들의 존재는, 조심스럽게 기도하며, 이러한 생각들을 다른 기독교인들과 어떻게 너그러운 방식으로 논의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지적 설계 운동에 대하여 생각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는, 설계자의 정체성입니다. 지적 설계 운동은, 그 설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장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 운동의 두드러진 지도자들 중에는, 로마 카톨릭, 복음주의자, 개신교, 통일교의 일원들 등이 있습니다. 이 운동 내부의 개개인들 중에는 창조주가 누구라고 그들이 믿는가에 대하여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지적 설계 운동 자체는 그 어떤 특정 설계자를 지칭하려고 의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지적 설계 운동은 폭넓은 기독교 전통 및 무슬림에게도 받아들여 졌고, 그들의 논쟁은 “고차원적 능력”의 개념을 가진 그 어떤 종교에 의해서도 잠재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지적 설계 운동이, 성경으로부터 이미 알려진 것을 지지 하는 과학적 주장을 내놓긴 하였지만, 그 운동의 폭넓은 개념의 상태는 신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야기합니다. 천문학적, 그리고 지질학적 진화의 상태에 대하여 불일치가 거의 없는데 반해, 생물학적 진화를 통한 얼마만큼의 변화가 허용될 것이냐에 대한 동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대하게, 사람들은 알라를 믿던, 예수님을 믿던, 문선명씨를 믿던간에 지적 설계의 깃발 하에 문제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점진적 창조론

전형적인 유신 진화론 진영의 구성원으로 생각되지 않을지 모르는, 세번째 기본적 관점은 점진적 진화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날-시대 창조의 형태로써, 창세기 1장의 날들은 겹치는 아주 오랜 기간이라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은 Reasons to Believe 라는 조직의 휴 로스입니다. 일반적으로,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우주의 기원에 관하여는 빅뱅을 믿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부스러기들로부터 형성되었으며, 지구는 45억년정도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구의 생명의 역사에 관하여 생물학적 진화론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점진적 창조는 전형적인 유신 진화론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점진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한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다섯번째 지적을 확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문학적, 그리고 지질학적 진화의 요소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들이 관점이 주로 늙은 지구 창조론, 혹은 날-시대 창조론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주장은 빅뱅과/ 네뷸라 가설, 그리고 지구의 나이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을 의지합니다. 몇십억년에 걸친 느린 생물학적 변화 대신, 하나님이 초기 형태의 생명체들이 멸종되는 것을 허용하시는 한편, 발달된 단계의 생명체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생명체들을 각기 다른 시점에 창조하셨고, 몇몇 커다란 멸종사건을 통해 그들을 없애 버리셨기 때문에, 화석 기록은 완벽하게 형성된 생명체들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인류에 있어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약 100,000 년 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실재 인물이며 모든 인류의 조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원인(hominid) 종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관점

창세기 1장-11장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 대하여 많은 글들과 심지어는 책들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구와 생명체들의 진화를 포함한, 우주의 진화론적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장-11장을 솔직하게 읽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 대신 창세기 1장의 날들은 오랜 세월로 되며, 몇몇 사람의 관점에서는,그 날들이 서로 겹침으로써, 셋째날은 사실 넷째날 다음에 시작하는 것으로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날-시대 이론을 배제하고, 창세기 1장 1절과 1장 2절 사이에 간극을 삽입하고 나서, 나머지 창세기 1장을 일반적인 6일로써 읽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전체가, 인류 혹은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진실을 포함한 전설이나, 신화 혹은 비유의 한 형태이지만, 역사의 시간이나 상태에 관한 실제 사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제안합니다.

확실히 하자면, 창세기 1장과 2장을 솔직하게 읽고,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우주의 역사에 관한 진화론적 관점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창세기에 기록된 사건의 순서와 오늘날 알려진 진화론적 우주의 형성 사건의 순서 사이에는 많은 노골적인 모순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조화시키고, 다양한 진화론적 과정을 수용하기 위하여, 창세기 본문의 많은 부분을 묵살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래의 도표는, 진화론적 관점과 성경적 역사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 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모순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이것은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적 관점을 믿는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때 중요한 논점이 됩니다.

 

 

Page 103. 도표

 

 

어떤 권위?

이 세상에 관한 진화론적 관점과 성경 본문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해야합니다. 공정하기 위하여, 이 장에서 언급한 모두는 성경이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확언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정확하게 “진화” 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봐야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권위있다”고 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지에 대하여 물어봐야 합니다. 다음의 글은, 각각의 경우 권위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들이 평가할 수 있도록 발췌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성경이 권위를 갖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류 과학”의 해석이 권위를 갖는 것입니까?

“창조의 순서를 자연의 역사와 조화시키기 위한 젊은 지구 해답은, 성경 해석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이치에 맞습니다. 사실, 종교개혁의 시대까지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또한 그 견해를 주저없이 받아들일 것이지만, “자연”은 그 견해와 매우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하는 듯 보입니다. 저 외의 많은 사람들이 젊은 지구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뎀스키 박사는 여기서 “자연” 이라는 단어를, 자료의 자연주의적 해석은 지구가 몇십억년 되었다고 결론내린다고 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책의 뒷부분에서 그는 사람들은 “자연이라는 책을 이해하기 위하여 과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신학을 공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뎀스키는 더 나아가, 성경은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를 바꿀 수 있고, 과학은 성경에 대한 이해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만약 우리가 오래된 지구 (자연이라는 책이 가르치는) 를 거부하려면, 우리는 그러기 위한 확고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베네마 박사는 “과학(인류 개체군 유전학)은 인류가 두명의 사람이 아닌, 집단으로써 발생했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고 믿습니다. “주류 과학”에 의해 최근에 고안된 인구 모델에 의하면, 2 명이 아닌, 약 10,000 명 정도되는 집단이 있었습니다. 현대과학적 사고의 측면에서 보면, 인류의 기원으로서 한 커플을 고려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바이오로고스 재단을 대표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 모두는 그들의 입장을 정리한 홈 페이지의 선언에 충실할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연 과학적 방법론이 가장 신뢰할 만한 안내를 제공하며, 현대 과학의 증거는,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적 과정의 결과로써 가장 잘 설명된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개입하시는데 사용하신 방법이 진화라고 확언합니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적 혹은 그 어떤 다양하고 비슷한 관점에서 보면, 지층과, DNA 서열, 그리고 우주의 가스 구름의 패턴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은, 분명히 창세기 1장 -11장의 정직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지식을 압도합니다. 6일은 분명히 일반적인 날이 아닌 다른 것이었으며; 아담과 이브는 실재 사람일 필요가 없었고; 우리는 개체군 유전학이 인간의 기원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전해 준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타락은 비유의 한 형태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중요합니다. 천문학과 인류학, 지질학, 그리고 생물학에 있어서 성경은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성경이 인류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는 분명히 신뢰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성경이 이 세상의 역사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포함한, 기독교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권위있는 자리로부터 치워진다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그의 생각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가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실재대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만약 아담과 이브가 단지 원인을 대표하는 것이었다면; 만약 가시와 엉겅퀴가 범죄 이전에도 항상 존재해 왔다면….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째서 성경을 그들의 삶의 도덕적 권위의 자리에 놓을 수 있으며, 성경이 미래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주류 과학”이 이러한 영역에 있어서 권위가 되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러한 것들은 답변되어야 할 중대한 질문들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식과 인간이 어떻게 죄악으로 인해 타락했는지, 홍수의 성질,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 사이에는 중요한 연관성이 존재합니다. – 하나님이 실재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사랑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지만, 그들이 이 주제에 관해 교회 내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성경말씀 위에 굳건히 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포함한 훌륭하고 거룩한 사람들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것을 부인하고 (마태복음 16:23), 유대인들 앞에서 그가 행한 위선적 행위들 (갈라디아서 2:11-13)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성령님의 역사와 진리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행동들과 생각을 회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기독교인들과 연합하려 할 때, 이러한 같은 진리와 성령님이 바로 믿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진리와 성령님이 각각의 믿음의 사람들을 점점 더 예수님을 닮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진화론적 관점과 성경적 관점에 대하여 나눌 때,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