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특이합니까? 성경이 왜 독특한 책일까?

도입

지역교회의 목사가 되기 전에, 저는 10년 이상 대학교 사역에 헌신했었습니다. 저는 대학생들과 계속해서 기독교의 주장들을 나누었고, 거의 매일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혼외 성관계가 잘못되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없이 영원토록 고통당하는 지옥이란 곳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임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위대한 사람이었고, 좋은 종교 선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만약 누군가가 괜찮은 삶을 산다면, 결국 그와 하나님 사이는 다 좋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을 들을 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그들은 그들이 믿는 것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책에서 이러한 생각을 읽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들의 부모님이 이러한 관점을 교육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어떤 교수들이 이러한 관점을 거들먹거리며 말하는 것을 그들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혹은 그들 자신이 이러한 생각들을 스스로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진리로 만들지 않습니다. 당신은 2더하기 2가 5라는 것을 열정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것을 진리로 만들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심일 수 있지만, 진심으로 틀렸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그 자신을 위하여 질문하고 답변하기를 구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유일한 책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확실히, 독닥적으로, 그리고 정확히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을 평가할 다림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천국, 지옥, 예수님, 그리고 구원에 관한 어떤 생각도 성경의 거울에 세워서, 당신의 믿음이 정확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멍청하거나” 혹은 “무지하거나” 혹은 양쪽 다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왜 믿는지에 대한 그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단지 눈먼 신앙으로 믿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믿음은 맹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증거에 뿌리내리고 있고 (히브리서 11:1), 믿음은 사실과 진리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디도서 1:1). 성경의 독특한 영감받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조사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곧 성경을 믿는다는 것이 어둠으로의 도약이 아닌, 빛으로 들어선다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독특한 책이고, 하나님의 책이며,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는 어떤 증거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조사할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만, 이 장에서는 다섯개만 살펴 보겠습니다. 각각의 증거들은 성경의 독특성을 지지합니다.

  1. 성경 자신의 주장

성경을 건성 읽는 사람이라도, 곧 그는 그가 매우 범상치 않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성경의 주장들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만약 그가 조심스럽게, 그리고 생각하며 읽는다면, 그는 분명히 성경이 그 자신에 대하여 매우 독특한 주장을 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몇백 구절에서, 성경은 노골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그것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 그 자체라고 선포합니다. 컴퓨터 용어 색인은, 약 3,800번에 걸쳐서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혹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라고 선포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적으로 성경의 “언어의 제한 없는 영감”(verbal plenary inspiration)을 주장해 왔습니다. 제한 없는(plenary)이라는 단어는 full 이라는 뜻의 라틴어로부터 왔고, 언어의(verbal) 라는 단어는 word를 의미합니다. 이 주장은 성경 저자들이 단지 그들의 생각만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닌, 그들이 사용한 단어들까지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글자와, 문장의 동사 시제 까지. 만약,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단지 생각만 영감을 받았다면, 그러한 “생각”은 다양하고 폭넓은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치 숫자 없이 수학이 불가능한 것처럼, 단어들 없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숫자를 바꾼다면, 당신은 수학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단어를 바꾼다면, 당신은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단어는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보수적이고,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영감받은 책이라고 할 때, 우리는 부분적인 영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모든 성경” 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경이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았다면, 독자는 무엇이 영감을 받았고 무엇이 영감을 받지 않았는지를 결정하는 재판관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어떠한 부분은 더욱 영감을 받았고 따라서 다른 부분보다 더욱 진리에 가깝다고 하는, 점진적 영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은, 구약과 신약 모두, 동등하게 영감받았습니다. 레위기 3:16은 요한복음 3:16보다 조금도 덜 영감받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1은 요한계시록 22:21보다 조금도 덜 영감받지 않았습니다. 레위기 3:16이 당신에게 요한복음 3:16보다 덜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똑같이 영감받았으며,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언어의 제한없는 영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들은 성경이 단지 부분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영감받은 것도 아닌, 단어와 알파벳까지 완전히 영감받았다는 것을 단언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 또한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는 디모데후서 3:16-17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라고 기록합니다. 성경은 그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받은” 책임을 주장합니다.

그리스어 신약은 문자적으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숨쉬신(All Scripture is God-breathed)”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문자적 숨입니다 – 제가 이야기할 때, 저의 음성은저의 생각을 반영하기 위한, 저의 횡경막으로부터, 저의 허파와, 성대를 거쳐 혀와 입술과 치아에 의해 표현된 저의 숨결인것과 같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그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시기 위해, 마치 그가 성대와 혀 그리고 입술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숨결과 음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바울이 그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베드로도 비슷하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베드로후서 1:16-21). 같은식으로, 사도 요한도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그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 1서 4:6).

물론 비평가들은 이러한 주장이 순수한 순환논리이며, 따라서 합법적인 논쟁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명백하게, 그 누구라도 책을 쓰면서 그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또 그래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독특함을 변호할 때, 매우 중요한 출발점은 하나님께 영감 받았다고 하는, 성경 자신의 주장입니다. 만약 성경이 영감받았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 다른 방법으로 이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감받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쉽게 묵살될 수 없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법정에서조차, 피고는 자신을 위하여 변호할 수 있으며, 그의 증언은 증거의 조명하에 그리고 피고의 증언의 신뢰성이라는 조명 하에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였다고 주장하는, 성경의 인간저자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믿을만 한가?” 역사적 문헌을 간단히 조사해 본다면, 우리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목숨을 바쳐, 성경의 진실성을 변호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아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그의 메세지를 받았으나, 그의 말씀에 대한 변호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고 했으며 그의 가족들마저 그를 거부했습니다 (에레미아 11:1-3, 11:21, 12:6). 이것을 고려할 때,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반대편의 선지자들은 선뜻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아 23:21, 23:32, 28:1-17).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예레미아는 불필요한 체벌을 즐기는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그는 진리를 가지고 있었는가?” 입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모세,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 느헤미아, 그리고 사도들과 같은 다른 많은 신뢰할만한 증인들의 증언은,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밝히지 않고서는, 무시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를 사악한 사람, 혹은 믿지 못할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또한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와 같은 사람들 또한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이 기록했던 글들과 그들의 삶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는 믿음 때문에 순교했습니다.

우리가 대부분 순교한, 사도들의 도덕적 가치에 대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신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한 베드로, 바울 그리고 요한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부정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글에서, 거짓말을 꾸짖었고, 정직을 강조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존경받을만 하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될 것을 독려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이 선포하는 것들로 인해서 고난받기를 감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이 실수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법대의 주요 창립자 중 하나인, 시몬 그린리프는 그가 성경에 기록된 부활의 신빙성에 관한 증거들을 조사해 보기 전까지는, 성경에 비평적이었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그들이 성경에 기록한 기록들의 진실성때문에 죽기를 감수한 것을 고려한 후, 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전쟁의 연대기는 이러한 영웅적 절개, 끈기, 그리고 불굴의 용기를 그리 많이 제공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믿음과 그들이 주장하던 사실들에 대한 근거를 자세히 검토할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기록한 믿음으로 인하여 처형당하는 것을 감수함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그들의 고백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들이 매우 속고 있었거나, 혹은 그들이 말하고 받아들인 것들이 정말로 사실이었다는 결론 중 하나만 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거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그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하는 그 어떤 증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주의한 독자 조차도 곧 성경의 인간 저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이 내쉬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 늘상 존재하는 작가의 가정은, 그들이 하나님이 내쉬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진실이거나, 혹은 뻔한 거짓말입니다. 분명히, 만약 성경이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단지 성경 자신이 그렇게 주장한다라고 하는 것밖에 없다면, 우리의 주장은 매우 약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면, 듣는 사람은 우리의 변호가 순환적 (임의적인 출발점을 갖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말씀을 포함한 모든 주제의 최종 권위가 되시므로 (히브리서 6:13), 임의적인 출발점이 아니시고, 임의적인 논리적 악순환을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전혀 주장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방어해야할 기독교인들은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는 것입니다.

  1. 성경의 증명된 정확성

 성경이 독특한 책이라는 것을 믿는 두번째 이유는 성경의 증명된 정확성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저자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으셨다면, 누구나 기대할 수 있듯이, 성경은 그 역사적 정확성에 있어서 독보적입니다. 예를 들면, 의사였으며, 다른 누구보다 신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한 누가는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레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 1:1-4).

누가는 자신을 역사가라고 주장했으며, 지금까지 일류 역사가로써 알려져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이며, 스코틀랜드의 애버딘 대학의 인문학 교수이신 윌리엄 램지 경은 고대 소아시아의 역사와 지리의 20세기 최고 전문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중 하나로 생각되었던 그는, 한때 성경에 대하여 대단히 비평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의사 누가의 글을 고려해 보게 되었고, 오랜 연구 후에 그는 누가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가 중 하나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누가의 기록을 면밀히 조사한 후, 그는 “누가. 사랑받은 의사!” 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램지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책들 중 하나에서, 누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저는 누가가 기록한 역사가 그 신뢰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다는 견해를 취합니다. 당신은 누가의 글을 다른 모든 역사가들보다 더 심하게 검증하려 시도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의 글은 가장 정밀한 조사와 힘든 대접을 견뎌낼 것입니다. 누가는 일류 역사가입니다. 이 저자는 역사가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의 하나로 여겨져야 합니다.”

램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의 한 예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이야기한 누가복음 2장입니다. 성경 비평가들은 예전에 예수님은 기원전 4년, 헤롯이 죽기 이전에 태어나셨으며, 구레뇨는 기원후 8-10 동안 총독을 역임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이러한 비평가들은 누가에 의한 기록은 부정확하며, 그를 신뢰할 만한 역사가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결론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위 “오류”는, 윌리엄 램지 경과 다른 고고학자들이 구레뇨가 두번 총독을 역임했다는 사실, (첫번째는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그리고 헤롯이 죽은 후 두번째)을 알아냄으로써 해명되었습니다. 그래도 성경의 오류를 찾으려고 흠잡는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사실을 갖기 이전에는,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지어 왔습니다.

성경의 신뢰도를 떨어트리기 원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오랫동안 사용된 또 하나의 예는 벨사살 왕에 관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를, 큰 연회를 준비할 때, 신비스러운 글씨가 벽에 쓰여지는 것을 목격한 왕이라고 기억할 것입니다 (다니엘 6). 하나님은 그에게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 그의 왕국이 나뉘어지고 메데스와 페르시아에게 정복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비평가들은, 고대의 세속적 역사에 따르면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벨사살이 아닌, 나보니두스라고 불린 사람이기 때문에, 다니엘서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웃었습니다. 많은 세기동안, 역사적 기록들은 명백하게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라는 것을 보여 주었는데, 어느 날 어떤 고고학자들이 한 원기둥을 발굴해 냈습니다. 그 원기둥에는 벨사살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고고학자들의 삽은 벨사살 왕에 대한 더욱 더 많은 기록들을 찾아 냈고,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벨사살왕과 함께 다스렸던 나보니두스라는 것을 알아 냈습니다. 나보니두스는 벨사살의 아버지였고, 그들은 섭정의 형태로 함께 다스렸습니다. 이 사실은 왜 벨사살 왕이, 만약 다니엘이 벽의 글씨를 해석할 수 있다면, 그를 “왕국의 셋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다니엘 5:7). 그러나 근대 고고학이 벨사살에 관한 원기둥을 전혀 찾지 못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 그것이 성경을 덜 진실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래도 진리입니다. 단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제한적일 뿐입니다.

자유주의적 비평가들이 성경의 신뢰도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또다른 전형적인 예는 히타이트 문화에 관한 반복된 언급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역대하까지 히타이트 사람들에 관하여 48번 언급됩니다. 1875년까지, 알려진 모든 고대문서의 기록에서, 이 사람들에 대한 단 하나의 언급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것이 성경에서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1876년 조지 스미스가 소아시아의 제라비스라 불린 지역에서 한 기념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다가 거대한 고대제국 히타이트를 발굴하면서 바뀌었습니다.역사가들은 현재 히타이트를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동등한 위치에 놓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대학에는 히타이트만을 연구하는 부서가 따로 있습니다. 히타이트인들은 단지 실존인물일 뿐 아니라, 그들의 제국은 고대의 가장 위대한 제국들 중 하나였음이 밝혀 졌습니다. 다시금 성경의 비평가들이 틀렸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1806년, 프랑스 과학 연구소는 80개 이상의 성경의 역사적/고고학적/지리학적으로 부정확한 것들을 열거 했습니다. 1940년까지, 오히려 그 리스트에서 열거된 모든 혐의들이 잘못되었음이 증명되었고, 오늘날 그들이 지적한 것들 중 단 하나도 부정확한 것이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성경은 실수없이 과거를 기록하신, 유일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정확합니다.

  1. 성경의 초자연적 구성

성경이 특이한 책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세번째 이유는, 성경의 초자연적 구성입니다. 현재 10명의 다른 저자들에게, 하나의 일반적인 주제에 관하여 서로 독립적으로 책을 쓰라고 요청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각각의 책들이 얼마나 비슷하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 중 하나는, 많은 다른 지역과, 다른 조건 하에 살던, 매우 다양한 저자들 (약 40명)에 의해, 1600년 이상되는 시간동안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특이하게 66권의 책을 모은 것이 아닌, 하나의 책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았고, 다른 인생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3 대륙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매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글을 썼습니다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추가로, 그들은 다양한 배경과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우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인간 저자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고, 서로의 글에 대하여 잘 몰랐음에도, 성경은 단 하나의 모순점도 없이 종합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흐르는 완벽한 연합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종교적인 책들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이슬람의 코란은 마호멧의 장인인 아부-베크르의 지도 하에, 자이드 이븐 타빗, 한 사람에 의해 편집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기원후 650년, 한 집단의 아랍 학자들은 우트맨의 필사본 (마호멧의 셋째 후계자)에 기반해서 하나의 통일된 버전을 출판했고, 코란의 일관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모든 다양한 필사본들을 파괴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기록된 그 어느 책도 성경과 같은 책은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사람들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조직된 조화를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책을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사람이나 집단의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합니다. 유일한 설명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유일한 설명은 40명의 인간 저자들 뒤에 한 신적인 저자,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1. 성경의 계시적 성격

성경의 신적인 기원에 관한 또다른 놀라운 묘사는, 그것의 많은 성취된 예언들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몇백년 전에,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한 방식으로 미래를 예언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책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지금으로부터 300년 후, 당신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가 뉴욕시의 파크 애버뉴를 건널 것이고, 그는 금발 머리를 한 여자가 운전하는 W98-665 번호판을 단 파란색 픽업 트럭에 칠 것이라고 이야기 했고, 그 사람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 졌다면, 당신은 아마 그 사람이 미래를 예측하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내릴 것입니다.

그 누구도 그의 예측이 구체적인 작은 부분까지 들어 맞은 예언을 몇백년 전에 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의 저자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이러한 성질의 예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예수님의 초림에 관하여 몇백번의 예언이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예언들은 모호한 성질의 것이 아닌, 그의 탄생, 일생, 죽음 부활,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의 재림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예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미래를 예언하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46:10).

그리고 그것에 정확하게 그가 성경의 다양한 인간 저자들을 통하여 하신 일입니다. 다음의 도표는 예수님의 초림에 관하여 성취된 300번의 예언들 중의 일부입니다.

Page 55. 도표

물론, 비평가들은, 구약을 이미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그가 메시아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예언이 성취된 것처럼 짜집기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비판을 유심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베들레햄에서 태어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그가 이사야 선지자가  처녀로부터 잉태할 것이라고 이사야서 7:9 에 묘사한 것을 미리 준비했으며, 십자가형이 알려진 처형 방법이 아니었던 시절 이사야서 53장에 그의 죽음을 묘사한 것이 미리 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이것이 정확하게 선지자들이 예수님이 천국을 떠나 베들레헴에 태어나시기 약 700년 전에 기록한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그가 세상에 오시기 거의 1,000년 전에, 다윗왕이 마치 십자가 빌 밑에 서서 증언하고 있듯이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도록 조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시편 22)? 당신은 예수님이 두 도둑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도록 조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그가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유다가 은 30에 그를 배신하도록 조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그가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실 것을 조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위하여 그들의 삶을 바칠 결단을 한,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도 조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은 이 모든 것을 그가 미리 배열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태어나시기 이전에, 이미 이 모든 것을 준비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는 태어난 이후에 이 모든 것들을 조작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천구의 보좌를 떠나 기적적인 처녀 잉태를 통하여 이땅에 오시기 전부터 계획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마태가 그의 복음에 기록하듯,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26:56).

성경처럼 예언의 성취를 가지고 있는 책은 이 지상에 없습니다. 무슬림의 코란이나, 몰몬경이나, 힌두교의 우파니샤드 등 그 어떤 종교적인 책들도 확인가능한 실현된 예언은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성취된 예언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몇몇 임의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분명히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사람의 세속적인 글에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어 왔습니다. 저는 그의 소위 말하는 “예언서”들을 읽어 보았는데, 그것들은 매우 모호하고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므로, 몇백개의 다른 시나리오로 적용이 가능합니다. 그는 거의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그가 1999년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이,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경우, 그는 항상 틀렸습니다. 성경은 특이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적이고-인간적인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특이하게 하나님께 영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1. 성경의 보전

성경은 그 보전 방식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책입니다. 만약 성경이 그 주장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호하고, 잘 관리하실 것을, 그가 말씀하신대로,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비평가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당신들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주 많이 번역되어 왔기에, 우리가 오늘 가지고 있는 것은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발언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언젠가 듣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변할 것입니까?

성경은 매우 오래된 책이고, 종이는 그리 오래 보존될 수 없으므로, 우리가 현재 원래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록이 성경의 진본과 같다는 것을, 초기 필사본을 찾아냄으로써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고대 필사본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든 신약은, 신약을 그들의 글에 인용한 초기 기독교 작가들의 글을 통해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성경이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의 그들의 삶속에서 의미하는 것들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성경”이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은, 고대 필사본의 증거를 검사하면, 쉽게 논박됩니다. 다른 고대 문서들과 비교할 때, 성경의 필사본 증거는 독보적입니다. 기원전 58 – 51동안의 “갤릭 전쟁”라고 알려진, 줄리어스 씨저의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씨저의 기록의 약 10개의 복사본이 존재하며, 가장 이른 것도 원본보다 900년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갈릭 전투의 정확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호머의 오디세이의 최초의 완벽한 복사본은 원본보다 2,200년 이후의 것이지만, 그 누구도 그것의 신뢰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카툴루스의 작품의 세 개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고, 가장 이른 것은, 그가 처음에 기록했을 때보다 1,600년 이후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개의 복사본들은 신뢰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누군가 성경의 필사본 증거를 고려하려고 할 때, 그것은 그 어떤 다른 고대의 글들보다 독보적입니다. 그리스어 신약 전체, 혹은 부분을 포함한 필사본은 5,500개가 넘으며, 가장 이런 것은 기원후 120-140 사이에 기록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신약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고, 우리는 신뢰할 수 있게 성경이 전해졌음을 보여 줄 수 있는 18,000 개의 이러한 번역사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우기, 초기의 작가들이 그들의 논평이나 편지에서 성경을 인용한 86,000 편의 글들이 있습니다 (한 예로, 클레멘트는 그가 1세기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히브리서를 인용했고, 그는 사도 요한이 죽기 전에 죽었습니다). 추가적으로, 구약의 필사본을 복사하는 과정의 정확성은 사해 사본의 발견을 통하여 더욱 확증되었습니다. 사해 사본은 이스라엘의 쿰란 지역에서 1949년, 양떼를 돌보던 목동에 의해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 지역의 건조한 기후로 인해, 사해 사본은 놀랍도록 보존되었습니다. 사해 사본의 대부분은 기원전 250-150 사이에 기록된 구약의 단순한 필사본이며, 구약의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필사본이나 부분적 필사본입니다. 이 발견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사실임을 알고 있었던 것을 더욱 확증한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나시기 100년 전에 기록된 이사야 서의 완벽한 필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나신지 900년 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필사본과 비교해 보았을 때, 단지 알파벳 17개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 차이점은 문체적 삽입, 접속사, 혹은 특정 단어의 다른 스펠링등 미미한 것들이었습니다. 사해 사본과 마소라 사본들의 이러한 미미한 차이는 원본에 기록된 의미를 조금도 바꾸지 않습니다. 성경이 오랜 시간에 걸친 복사 과정을 통하여 변했다고 하는 주장은 필사본 증거에 의해서 반박됩니다. 고대의 어떤 다른 문학작품보다 성경의 필사본들의 신뢰성을 입증할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같은 책은 없습니다.

그 어떤 책도 성경처럼 살아남은 책은 없습니다. 성경은 단지 올해의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시대의 책입니다! 성경이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8) 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성경은 파괴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멸시되었으며, 그것을 금하는 법도 만들어 졌습니다. 성경은 불태워 졌으며, 밀수품으로 여겨졌지만, 성경은 견뎌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경을 보전하셨습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 줍니다. 성경의 초자연적 구성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인합니다. 성경의 예언적인 성격과 성취된 예언은 그것이 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결론내리기 충분해야 합니다.

성경 자신의 주장, 정확성, 구성, 그리고 예언의 조명 하에, 우리는 단지 두가지 선택만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그것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시는 데 관여하셨거나, 그렇지 않으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는 데, 다양한 사람들을 통하여 관여하지 않으셨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성경이 좋은 사람들의 작품이라면, 그들은 정말 “좋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짓말장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로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지 않으셨다면, 좋은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쓴 것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닌 사악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반면, 만약 성경이 나쁜 사람들의 작품이라면, 그들이 죄를 금지하고, 선을 명령하며,  불신하며 사는 인생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받는다고 규탄하는 책을 썻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유일한 실행 가능한 대안은, 하나님이 그가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선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이 책을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한 무명시는 이것을 잘 요약해 줍니다:

The Holy Bible must have been,

Inspired of God and not of men.

I could not if I would, believe

That good men wrote it to deceive.

And bad men could not if they would,

And surely would not if the could,

Proceed to write a book so good.

And certainly no crazy man

Could e’re conceive its wondrous plan.

And pray, what other kinds of men

Than do these three groups comprehend?

Hence it must be that God inspired,

The Word which soulds of prophets fired.

남은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당신의 삶이 따라야 할 권위임을 믿습니까?” 성경은 특이한 메세지를 담은 특이한 책입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종교들은 사람은 그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그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죄의 댓가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16-17; 에스겔 18:20; 로마서 6:23). 따라서, 만약 좋은 행위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다고 (갈라디아서 2:21)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그의 목숨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다고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10:17-18).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악이 받을만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고 주장합니다 (로마서 5:8; 베드로 전서 3:18). 그리고 그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때, 그의 죄 없으시며, 따라서 무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로마서 1:4). 성경의 이 메세지는 우리는 구원을  획득할 수 없으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하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유일한 책에서, 그는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6; 사도행전 4:12). 우리는 모두 이 특이한 책에서 발견된 메세지를 가지고 무엇을 할 지 결정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