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 한때 크리스쳔?

미국의 오래된 대학들 대부분은 한때 성경을 선포하는 학교들이었습니다. 하버드와 예일 (원래 청교도) 그리고 프린스턴 (원래 장로교)는 한때 풍성한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버드는 기독교 목사님인, 찰스턴의 존 하버드의 이름에서 온 것입니다. 예일은 성직자에 의해 시작되었고, 프린스톤의 첫해 수업은 요나단 디킨슨 목사님에 의해 가르쳐 졌습니다. 프린스톤의 문장에는 Dei sub nummine viget 이라는 “하나님 아래서 그녀는 번창한다”는 뜻의 라틴어가 적혀 있습니다. 사실, 많은 다른 대학들도 목사님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기독교적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모교인 카본데일의 남부 일리노이 대학 (SIUC) 도 1879년 설립되었을 때에는 기독교적 근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의 좌우명은 Deo Volente 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면”이라는 뜻의 라틴어였습니다. 제가 SIUC 에 들어간 1990년대까지, 기독교 전통의 거의 모든 자취는 사라졌습니다. 학교는 오랜 연대와 진화론적 생각에 관한 “사실”을 힘주어 가르치고 있으며, 노골적으로 성경의 권위 (성경은 진실이고 권위가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행동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바꾸어야 한다는)를 배격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많은 학교들이 그들의 기독교적 기반을 저버리도록 했을까요?

타협의 시작

의심할 나위 없이, 오래된 지구와 진화를 믿는 믿음과의 타협이 이러한 학교들의 몰락에 기여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일은 1899년 아더 트위닝 해들리까지, 오랫동안 목사님이 학장으로 계셨습니다. 해들리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였고, 현재의 경향은 성직자가 아닌 사람들이 학장으로 있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해들리의 진화론에 대한 집착은 그의 책, “The Relations between Freedom and Responsibility in the Evolution of Democratic Government” 에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그들의 구조의 다양성을 수반하지 않은 채, 다양한 문화를 가진 집단을 형성할 가능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등한 동물들의 진화와 인간의 진화를 구분짓는 것입니다. 주된 차이는, 자주 말해 지듯, 인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개인들간이 아닌 그룹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차원적으로 조직된 형태의 동물 생활에서, 개인의 집단에 대한 종속은 어떤 사회의 인류에서와 마찬가지로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주된 차이점은 이러한 인간 집단의 진화는 육체적인 과정인 아닌, 정신적인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명백히 알 수 있었습니다. 1800년대 말까지, 지구의 역사가 몇백만년 이상에 걸쳐 생겼다고 하는(geological evolution) 반 성경적인 개념이 학교를 지배했고, 곧이어 다위니즘 (biological evolution)이 강하게 뒤따랐습니다.

예일의 다음 총장은 제임스 로랜드 앤젤이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는 기독교 대신, 세속적 인본주의의 종교(진화와 오래된 연대)를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1909년, 다위니즘을 지지하는 “심리학에 대한 다윈의 영향” 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학교의 자연주의로의 전환은 최고조에 다랐습니다.

오래된 연대와 진화에 대한 생각은 인간의 견해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보다 더 월등한 궁극적 기준이라는 믿음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런 형태의 의견은 인본주의 혹은 세속적 인본주의라고 알려집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생각이 우리의 문화속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 12:48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 그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세계관들의 변화

The Sacred and the Secular University 는 공공연한 기독교적 편견을 전혀 보이지 않는 두명의 세속적 역사가인, 로버츠와 터너에 의한 통찰력 있는 연구입니다. 그들은 미국의 대학들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자연주의적 철학 (세속적 인본주의)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하여 논의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대학들에서 가정 먼저 과학의 영역에서 무너졌다고 지적합니다: “과학에서, 지배적 구성체로부터의 중대한 출발은 1870년대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중대한 혁신이었습니다.” 라고 덧붙힙니다.

자연주의의 종교는 성경의 기초를 이루는 책인, 창세기의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됩니다. 자연주의는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만물은 그들이 항상 그래왔던 대로 진행된다(베드로후서 3:4-5)라고 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생각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자연주의자들은 과거에 노아의 홍수(창세기 6-8)와 같은 대격변은 없었고, 창조주간동안 초자연적인 창조는 없었다는 등의 주장을 할 것입니다. 시편 11:3에서,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고 말씀하십니다. 금이 간 기반은 대학들에서 그들의 기독교 세계관이 무너지게 하였고, 자연주의적인 측면과 함께 세속적 인본주의를 채용하도록 했습니다.

금이 기반

균열은 1700년대 후반과 1800년대 초반에 처음 나타났고, 1830년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칙들이라는 책의 영향으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오래된 연대 지질학에 관한 믿음(millions of years/geological evolution)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대홍수와 성경적 연대에 관한 믿음을 심각하게 손상시켰고, 지질학 역사전문가인 테리 모텐슨 박사의 말씀대로, 라이엘은 “상처받은 피해자를 죽이고, 관에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1800년대 중반까지 대학들로 스며들었고, 오래된 연대를 필요로 하는 두권의 책인, 1859년 다윈의 진화론적 모델(종의 기원)과 그의 후작인 인간의 유래(1871)를 위한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기독교 대학들이 이러한 타협적인 자세를 취한 후, 성경적 기독교로부터 자연주의와 무신론으로 곧 미끄러지게 되었습니다.

로버츠와 터너는 기독교인들이 자연주의적인 과학자들과 타협하는 이유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자연주의적 묘사에 관한 시야내에서 현상을 일으키겠다는 과학자들의 투지는 과학계 밖의 기독교인들로부터 상반된 견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많은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 가장 일반적으로 기독교적 사상에 관하여 “자유주의적” 접근을 취하는 사람들은 –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에 관한 편재주의적 개념을 취하는 데 있어, 과학자들과 함께함으로써, 그러한 결과를 피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편재주의적 관점은 신성이 우주 내에 묶여 있다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자연주의적 과학자들이 가르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성경을 포기하였고,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나 성경에 관하여 언급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성경을 떠남

어떤 자유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그들의 사고의 출발점에 놓는 것을 포기하였고, 자연주의적 과학을 그 자리에 두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두개의 종교를 혼합했다는 것이,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들이 이 두가지를 혼합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기독교인들이 진화와 오래된 지구 연대를 포함하는, 자연주의적 관점을 채택하기 시작할 때, 그들의 신앙의 나머지 부분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역사적인 사실로서 기록되었고,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과거 기독교 대학들의 종말은 개인과 교회, 기독교 대학들과 신학교에게 있어서,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 위에 굳건히 서고, 성경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그 어떤 교리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3-4).

이러한 문제점이 아직도 현대의 기독교 대학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기 원하시면, 이 책의 그레그 홀 박사가 쓰신 글과 함께, 켄 햄과 그렉 홀 박사가 브릿 비머와 함께 쓴 Already Compromised 라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