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나이가 구원과 관련된 주제인가?

이 세상이 몇 백만년, 혹은 몇 십억년 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기독교인일 수 있을까요? 먼저, 복음과 구원의 이해를 요약하는 몇 몇 구절들을 고려해 봅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린도전서 15:17).

네가 말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물론 우리는 많은 다른 구절들도 인용할 수 있습니다만, 그 중 어느 하나도, 구원받기 위하여 젊은 지구/ 우주를 믿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고린도전서 6:9-10) 사람들게 관한 리스트를 고려할 때, 분명히 “오래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은 그 리스트에 없습니다.

지금은 주님 곁으로 간, 많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래된 지구를 믿었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고전적인 간극이론을 채용함으로써 몇백만년의 시간을 설명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날-시대이론, 혹은 유신진화론, framework 가설, 혹은 점진적 창조설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성경은 구원은 누군가가 지구 혹은 우주의 나이가 무엇인가를 믿는가에 대한 요구 없이,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 주어진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의 조명 하에,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지구와 우주의 나이에 관하여 무엇을 믿든지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문제는 아닐지리도, 오래된 연대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심각한 결과를 수확하게 됩니다.

권위의 문제

오래된 연대에 관한 믿음은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지구와 우주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한, 세속주의자들의 실수하기 쉬운 연대측정법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누군가 몇백만년의 시간을 성경에 끼워 맞추려고 시도할 때, 그는 성경 본문에 의해 허용되지 않는 간극(gap)을 만들어 내거나, (창세기 1장의 문맥상 명백한 일반적인 하루인) 창조의 날들을 오랜 시간으로 재해석 해야만 합니다.

다른말로 하면, 그는 성경 밖에서 온 무언가 (몇백만년의 시간)를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실수하기 쉬운 생각의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위에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다른 영역에 있어서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도록 자물쇠를 푸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들이 문을 더 활짝 열어젖히게 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것이며, 이러한 일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심화되는 현상처럼 보입니다. 일단 타협의 문이 조금이라도 열리기 시작하면, 다음 세대는 그 문을 더 크게 열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서구 세계에서 성경의 권위가 상실되도록 한 중대한 요소입니다.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잠언 30:6).

모순의 문제

몇백만년이나 되는 오래된 시간의 믿음이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과 모순되는 많은 예가 있습니다. 그 중 몇개를 소개하겠습니다:

  1. 가시 – 화석화된 가시들은, 몇백만년 되었다고 하는, 화석 기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출현하기 몇백만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저주 이후에 가시가 생기게 되었음을 명백하게 가르칩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세기 3:17-18).

  1. 질병 – 암, 관절염, 뇌종양과 같은 질병의 증거들도, 몇백만년이나 되었다고 하는 동물의 화석 기록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질병들도 아담의 범죄가 있기 몇백만년 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물의 정점으로서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는 그의 창조물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창세기 1:31) 라고 묘사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암과 뇌종양을 “매우 좋았다”고 부르시는 것은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습니다.
  2. 음식 – 창세기 1:29-30은 하담과 이브와 모든 동물들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모두 채식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전이라고 하는 시간, 따라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동물이 다른 동물을 먹는 많은 예들을 보여 줍니다.

죽음의 문제

로마서 8:22는 죄의 등장, 타락의 결과로 인하여, 모든 창조물이 신음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창조물들이 신음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죽음 (동물들과 사람을 포함한)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죽임이 “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고린도전서 15:26), 언젠가 죽음은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4). 로마서 5:12와 다른 구절들은 인간의 육적인 죽음 (그리고 실질적으로 죽음 그 자체)은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한때 완벽했던 창조세계로 들어왔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몇백만년의 세월을 믿는다면, 결과적으로 범죄 이전에, 몇백만년에 걸친 죽음, 질병, 고난, 육식 행위, 가시 등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죽음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한 동물을 첫번째 희생 제물로써 죽이신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21). 그리고 이것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죄를 대속하실, 하나님의 어린양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속으로 들어 오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생긴 체벌인 죽음의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오래된 지구를 믿는 것이 자신의 구원 자체에 관한 문제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기독교인이 몇백만년 동안의 죽음이 범죄 이전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재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복음의 기반이 몇백만년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공격받고 있는 문화에서, 다음 세대가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입니다. 몇백만년의 역사를 믿는 것은 한 개인의 구원과 관련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다음 세대, 특별히 그들이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서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것저것 종합해서 추측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만약 복음의 기반 (창세기 1-11)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째서 복음이 사실이어야 합니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서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에 따른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 왔던것 뿐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성경의 가장 최초의 장을 믿게 된다면, 그 나머지 부분은 쉽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으로, 만약 누군가가 성경의 첫 장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진실을 말씀하시기 시작하는 부분은 과연 어디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인인 우리들은 창세기를 포함한 성경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권위를 가진 것으로써 가르치기 시작해야만 합니다.

몇백만년이라는 사고에 영향받은 문화가운데 복음을 증거할 때, 우리는 “로마서의 길”에 대한 “창세기의 기반”을 설명하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죽음, 무덤에 묻히심, 그리고 부활하심에 관한 복음의 메세지를 설명하기 전에, 창세기에서 발견되는 복음의 기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다음 세대에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는 진화론적 생각들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나쁜 소식을 가르치고 나서, 이 나쁜 소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좋은 소식” (the gospel)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창세기-로마서 길” 접근이라고 부릅니다.

창세기로마서

창세기 1:1 –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31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 죽음과 고통의 부재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3:17-19 – 죄의 형벌은 죽음입니다; 죄로 인하여, 세상은 더이상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로마서 5:12 –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담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우리 모두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3:23 – 우리는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6:23 – 죄에대한 형벌은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 죽음 –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구원의 선물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10:9 – 당신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요한복음 3:16, 사도행전 16:30-3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5:1 – 구원을 받음으로, 당신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고, 그와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