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과학(the Anti-Science)?

어떤 진화론자들은 진화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분자가 사람으로 변하는 진화(molecule-to-man evolution)의 원칙들을 필요로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성경적 창조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과학을 이해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평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들이 매우 역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왜냐하면 진화는 사실 과학의 원칙과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만약 진화가 사실이라면,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실 성경적 창조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과학의 전제조건들

과학은, 우주는 논리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우주는 시간과 공간에 걸쳐 균일한 수학적 법칙들을 따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다른 영역과, 다른 시간대 안의 조건들이 매우 다양하지만, 그렇더라도 근본적인 균일성은 존재합니다.

이러한 규칙적인 패턴이 우주에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과학자들이 미래에 관하여 성공적인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천문학자들은 먼 미래의 행성, 달, 소행성들의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자연에 이러한 균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예측은 불가능하고 과학은 존재할 수 없으 것입니다. 진화론의 문제점은, 이러한 규칙적인 패턴은 성경적 창조 세계관 하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성경적 세계관을 필요로 한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  그가 우주에 질서를 부과하셨기 때문에, 우주에 질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대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만물을 그의 능력으로 지탱하신다고 가르치므로 (히브리서 1:3), 창조론자들은 우주가 논리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법칙과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기대합니다. “주야에 맺은 언약, 천지의 법칙”(예레미아 33:25). 더우기,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사무엘상 15:29, 민수기 23:19) 어디에나 계십니다 (시편 139:7-8). 따라서 창조론자들은, 물리적 상태가 매우 다른 곳에서도,  우주의 모든 지역에서, 같은 법칙을 따를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 자체는 이러한 중요한 성경적 원리를 필요로 합니다.

더우기,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 계시고 (베드로후서 3:8), 우리의 편의를 위하여, 계속해서 이 우주를 균일한 방식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상태가 현재와 미래의 상태와 매우 다를지라도, 하나님이 우주를 지탱하시는 방식(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임의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에도 진리라고 신뢰할 수 있는 특정한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계절, 낮과 밤, 등 (창세기 8:22). 따라서 어떤 주어진 상태에서, 바른 그리스도인은, 주어진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우주를 균일한 방식으로 유지하신다는 것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원칙들은 과학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같은 미리 정해진 초기 상태를 이용하여, 통제된 실험을 행할 때, 우리는 항상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래는 과거를 반영합니다”. 과학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변함없는 능력의 결과로써 균일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균일성 없이 과학 실험은 의미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실험을 행할 때마다 다른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과학적 지식의 가능성 자체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과학을 있는가?

과학은 성경적 균일성의 원리(다른 많은 성경적 창조 원칙들 외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누군가 과학자이며 동시에 진화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화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과학자들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 대답은, 진화론자들은 오직 그들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만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균일성과 같은 성경적 원칙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원칙들이 파생된 성경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일관성은 세속적인 사고에서 흔한 일입니다; 세속적 과학자들은 우주가 디자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인정하지는 않지만) 마치 우주가 디자인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균일한 방식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가정하고 과학 활동을 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오직 그들이, 그들이 고백하는 진화론적 믿음에 반대되는, 성경적 창조 가정 (균일성과 같은)에 의지해야만, 과학을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일관성 있는 기독교인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에 관하여 과거의 경험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측면에서 미래는 과거를 반영할 것이라고 (창세기 8:22)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연에 균일성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진화론자들은 “미래가 과거를 반영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요?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음, 그것은 항상 그래 왔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것이 앞으로도 그럴 것을 기대합니다.”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환논리입니다. 과거에 균일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미래에도 균일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 우리가 미래는 과거를 반영한다는 것 (균일성)을 이미 가정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미래에 일어날 것 같은 일의 기초로 사용할 때, 우리는 이미 균일성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진화론자들이, 과거에 균일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미래에 균일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할 때, 그들은 단지 균일성을 가정함으로써, 균일성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순환논리.

진화론자들은 물질의 성질 자체가, 그것들이 어떠한 규칙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라고 논쟁할지 모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균일성은 단지 우주의 성질이다라는 것이죠. 이 대답 역시 실패입니다. 첫째, 그것은 질문에 대한 대답일 수 없습니다. 균일성이 우주의 하나의 속성일지 모르죠. 그러나 질문은 어째서 그러한가? 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적 세계관하에서, 이러한 속성의 기반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진화론자들이 어떻게 균일성이 우주의 하나의 속성인지를 알 수 있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그들은 우주는 과거에 어떤 균일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균일성에 대하여 어떤 다른 경로를 통해 알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이 미래에까지 계속될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까? 이 우주의 많은 것들이 변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자연 법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진화론자들은 좀더 실용적인 답변을 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음, 나는 그것이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균일성은 작동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사용합니다.” 이 대답은 또한 두가지 이유로 인하여 실패합니다. 첫째, 우리는 단지 균일성이 과거에 작동해 왔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균일성을 가정할 수 있는 이유를 이미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오직 기독교인들만 이러한 가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미래에도 계속해서 작동하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균일성이 미래에도 진실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둘째, 그 대답은 균일성이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확한 포인트입니다. 자연이 균일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논점은 오직 성경적 창조 세계관만이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비일관적일 때 만이 과학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그들이 한편으로는 성경적 창조를 부인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적 창조 개념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 “나는 이 글을 학계에서 필요한 엄격한 잣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당신이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과학은 균일성을 필요로한다’ 와 ‘과학은 성경적 세계관을 필요로한다’사이의 논리적 간극은 매우 큽니다. 어디서 제가 빠진 논리에 관한 정보를 찾으 수 있겠습니까?

답변: 그 추론은 사실 공식적으로 대단히 간단합니다; 빠진 부분을 메워 봅시다.

  1. 과학은 균일성을 필요로한다.
  2. 균일성은 성경적 세계관을 필요로 한다.
  3. 따라서, 과학은 성경적 세계관을 필요로 한다.

이 글의 대부분은 두번제 전제를 변호했습니다. 균일성은 정말로 성경적 세계관을 떠나서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과학은 성경적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균일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학자는 반드시 온전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과학 자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경적 세계관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명백히, 과학자들은 일관적이지 않게, 성경적 세계관을 의지하면서, 동시에 반면, 세속적 세계관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미래는 과거를 반영한다(특수한 상황에서)는 개념이 길게 논의되었습니다; 이것은 균일성의 중대한 측면이며, 과학에 있어서 꼭 필요합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우리에게 균일성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합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고, 우주를 꾸준한 방식으로 유지하시며, 우리에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 없이, 이러한 균일성의 근거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주제에 관하여 더 자세히 알기 원한다면, 많은 기술적인 논문들이 나와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가인, 코넬리우스 밴 틱 박사와 그렉 반센 박사가 이 주제에 관하여 글을 썼습니다. 데이비드 흄은 균일성의 문제점에 관하여 그의 세속적인 관점에서 글을 썼습니다.

유신진화론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어떤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기독교인과 같이, 균일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 우주를 어떤 법칙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하고 있는 신에 의지하여 말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창조를 믿는 대신, 그들은 이 신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를 사용하여 창조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신 진화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창세기가 문자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창세기가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면, 창세기 8:22이 문자적으로 사실이라고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가 미래에 어떤 정도의 균일성에 의지할 수 있다고 약속하신 부분입니다. 성경적 창조 없이, 균일성에 관한 이성적 기반은 사라집니다.

땅이 잇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22).

균일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단지 아무런 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에 게시된 대로 기독교적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시간을 초월하시고, 변치 않으시며, 신실하시며,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그 자신을 인류에게 드러내신 하나님만이, 시간과 공간을 통하여 균일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시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성경적 창조론자들만이 자연의 균일성을 설명할 수 잇습니다.

진화론은 비이성적이다.

사실,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믿을 그 어떠한 이성적인 이유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생명이 진화의 결과하면, 그것은 진화론자들의 뇌는 단지 오랜 시간의 무작위적-경우의 과정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 뇌는, 어떤 과거에 생존에 유리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존된, 화학 작용의 집합체일 뿐입니다. 만약 진화가 사실이라면, 모든 진화론자들의 생각은 단지 오랜 시간에 걸친 화학작용의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진화론자는 “진화가 사실이다”라고 하는 주장을, 이성적인 이유가 아닌, 눈 먼 화학작용의 결과물로써,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문적인 분석은 인간의 생각은 단지 화학작용이 아니다라는 것을 가정합니다. 합리성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다양한 선택들을 고려하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진화론은 이성적 사고를 위하여 필요한 전제조건을 약화시키고, 따라서 지식과 과학의 가능성 자체를 파괴합니다.

결론

진화는 반-과학이며 반-지식입니다. 만약 진화가 사실이라면, 과학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과학과 기술이 의지하고 있는, 자연의 균일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무런 이유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마음의 생각이 단지 화학 작용들의 피할 수 없는 결과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성적인 분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이 과학을 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비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한편, (무의식적으로) 성경적 창조의 원칙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