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가 계속 처녀였다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인가?

성모 마리아는 놀라운 여인입니다. 사실, 그녀와 거의 맞먹을 수 있을 만큼 귀한 여인들도 드뭅니다. 하나님은 모든 다른 여인들은 단지 꿈꿀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마리아를 명예롭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창세기 3:15 의 여인의 씨에 관한 예언으로부터 오래 기다려 진 사건을 위하여 그녀를 선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헤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누가복음 1:28-35).

마리아는 성령님의 잉태케하심으로 임신했던 처녀였고,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크리스쳔 중에서 마리아가 처녀였고 예수님의 임신과 출산 때까지도 처녀였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궁극적인 성취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14)”.

그러나, 어떤 사람들 중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도 계속해서 처녀였다고 하는 것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떤이들은 이것이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적 관점 사이의 논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 같은 많은 개혁주의자들도, 마리아가 그녀의 일생동안 처녀로 머물렀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가?

두 개의 다른 복음서는 마리아가 다른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그들의 이름까지 제시합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마태복음 13:55-56).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마가복음 6:3).

어떤 이들은 이러한 형제, 자매들이 사실은 사촌이나, 더 먼 친척이라고 제안해 왔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복음서의 저자들은 왜 사촌을 가라키는 그리스 단어 (anepsios) 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이 그리스 단어는 그 당시 존재했을 뿐 아니라, 성경에 사용되었습니다(골로새서 4:10). 만약 그들이 더 먼 친척들이었다면, 왜 누가복음 1:36에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관계적 상태를 묘사하던, 친척을 의미했던 그리스어 단어 (suggenes)가 사용되지 않았을까요? 왜 마태와 마가는 가장 일반적으로 형제(adelphos)와 자매(adelphe)로 해석되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어떤 다른 문맥에서도, 그 의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절의 논리적 포인트는 해설자 아담 클락의 주석에서 잘 지적되었습니다:

“왜 다른 가정의 아이들이, 목수 요셉과, 그의 아내 마리아, 그들의 아들 예수님, 그리고 그들의 다른 아이들을 위하여 묘사된 것이 확실한 이 부분에, 비난받을 것을 감수하고 이야기 되어야 할까요? 선입관을 배제한다면,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 이 구절을 통해, 이들이, 요셉과 마리아의 자녀들이며, 우리 주님의 육적인 형제 자매들이라는 사실을 가정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복음서의 구절들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왜 이들이 예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들먹거리며 예수님을 비난하다가, 갑자기 먼 친척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사도 바울 또한 예수님이 적어도 한명의 형제가 있었음을 주장합니다. 그의 개종 이후 예루살렘으로 떠난 첫번째 여행에 관하여, 바울은 기록합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라디아서 1:19).

사도행전의 첫 장은 가롯 유다의 대체자를 선택하기 위하여 어떻게 제자들이 만났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누가는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을 특정하여 배제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12-14)”

마리아가 예수님의 출산 이후에도 처녀로 머물렀다는 주장은, 마태 사도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는,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1:24-25).  – did not know her till she had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알았다(knew)” 는 고대에 성적인 관계를 갖다는 것의 완곡한 표현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Adam knew Eve, and she conceived Cain)(창세기 4:2),그리고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and he knew her again, and she bore Seth)(창세기 4:25). 가인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Cain knew his wife, and she bore Enoch)(창세기 4:17). 만일 요셉이 마리아와 전혀 동침하지 않았다면, “아들을 낳기까지 (till she had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이라는 구절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명백하게 요셉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기 전까지 마리아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고 이는, 이 두가지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사야서 7:14에서 이야기하듯, 처녀가 잉태함과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에 대한). 그러나 이것은 요셉이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이후에도 그녀를 알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더이상 처녀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결혼 내에서 성관계는 죄가 아니며, 죄와 저주 이전에도 존재했던, 결혼 내에서 창조 법칙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5-6에서, 창세기 2:24를 인용하시며, “둘이 한육체가 되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창세기 1:28에서, 그리고 창세기 9장에서 두번 (1절과 7절) 명령하십니다. 말라기서 2:14-15는 결혼을 하는 이유중 하나는, 거룩한 자녀들을 낳기 위함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 불순종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정말로 거룩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명령을 존중했고, 따랐을 것입니다. 적어도 2 명의 딸과 5명의 아들을 낳는 것은 정말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복음서 구절은 예수님께 형제, 자매가 있었다는 또다른 증거를 제시합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46-50).

이 사건은 또한 마가복음 3:32-35과 누가복음 8:19-21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의 육신적 형제들과 어머니와, 그의 영적 형제들과 어머니 간의 구분이 있음을 가리키십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에게 형제가 있었다는 생각을 더욱 확증합니다.

마리아가 영원히 처녀였다는 생각이 언제 시작되었나?

마리아가 계속 처녀였다는 생각은, 신약 훨씬 이후의 의심쩍은 출처의 한 책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 책은 야고보 유아복음 (the Infancy Gospel of James)라 불립니다. 그것은 2세기 중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권위를 가진 책들은, 사도들에 의해 쓰였거나, 사도들의 인증을 받은 것입니다. 정경이 나온 이후, 많은 거짓 가르침과 책들이 나왔습니다.  어떤 책들은 선의를 가진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어떤 것들은 영지주의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책들은 당대의 이교도인들에 의해서 쓰여졌습니다. 이들 책들 중 몇권은 신약의 가르침에 도전했지만, 다른 책들은 성경을 보충하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신뢰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하여, 사도들중 하나의 이름과 그들의 글을 결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보통 사도들의 쓴 글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거나, 어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하는 것을 완전히 방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조차 사람들은, 그들이 성경에 관하여 읽는 것들로 인하여 자주 길을 잃기도 합니다.

야고보 유아복음은, 다른 위조품들과 같이, 예수님의 형제였고, 부활하신 구주를 만난 후 사도로 격상된(갈라디아서 1:19, 고린도전서 15:7), 야고보의 이름을 도용하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책의 신뢰도를 많이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책이 야고보 사도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올바르게 인식하였습니다. 초기 교부였던, 오리젠은 그가 쓴 마태복음의 주석에서, 야고보 유아복음을 거부했고, 마리아가 다른 아이들을 낳았다고 단언했습니다.

마리아가 계속 처녀로 남았다는 개념은 야고보 유아복음에서, 야고보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배다른 큰 형이라고 간편하게 설명됩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많은 실수들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사도들은 범하지 않을, 성경과 모순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음의 도표는, 야고보 유아복음과 성경간의 모순점들입니다.

 

Page 224 -225. 도표

 

결론

야고보 유아복음은 마리아가 계속 처녀로 남았다는 것을 처음 언급했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후대의 사람들이 같은 개념을 기록하도록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예수님의 형제인 사도 야고보가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가 이 책을 격하시킨 점, 특별히 이 책이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 정경의 다른 책들과 함께 포함되지 않은 점은, 그것이 진본이 아니라는 추가적 확증입니다.

성경의 다른 어떤 구절도 마리아가 계속해서 처녀로 남았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를 이야기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종신토록 처녀로 남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원하는 사람은, 성경 밖에서 나온 개념을 사용하여, 그것으로 성경을 무리하게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실수하고 쉽고, 죄악된 생각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까? 결국, 마리아가 그녀의 남편 요셉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죄는 아니며, 오히려, 그들의 결혼 생활 동안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죄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3-5).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 마리아가 처녀로 남을 필요가 있었다는 그 어떤 성경적이거나 논리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가 성경 밖으로부터 나왔고, 성경과 모순되는, 완벽하지 않은 원천이나 전통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