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그리고 3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음 주일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십자가에 달렸다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대부분은 일주일의 첫째날인 주일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8:1의 말씀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시간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언어로 인해,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누가복음 24:5-7).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누가복음 18:33, 사도행전 10:40, 고린도전서 15:4, 누가복음 24:46).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태복음 12:40).

부활이 한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일어났고, 이날은 “셋째날”이므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물고기 뱃속에 밤낮 사흘 있었다는 예언적 말씀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금요일이 아닌 목요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또다른 문제를 불러 일으킵니다. 예수님이 목요일에 돌아가신 것이라면, 목요일 –첫째날, 금요일 – 둘째날, 토요일 – 셋째날, 일요일 –넷째날, 주님이 부활하신(누가복음 24:21) 주일이 셋째날입니까?

우리는 날들(days)을 보다 면밀히 살피고, 어떻게 계산되었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몇몇 구절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유추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예수님이 금요일에 못 박히셨지만, 유대인이 날자를 세는 방법이 우리가 날자를 세는 방법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보다 확실한 결론으로 보입니다.

성경에서 날짜를 세는

첫번째 단서는 유대인들이 하루를 어떻게 세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저녁으로 시작해서 다음날 저녁에 끝납니다. 자정에 시작하는, 우리의 현대적 날과 같지 않게,그들의 날은 해가 저물면서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목요일 저녁이라고 여기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금요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밤은 사실 유대인들에게 토요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창조기사를 포함한, 고대 문화에서 날짜를 이러한 방법으로 세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을 때, 그것은 날(day)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루의 주기는 어둠이 먼저고 그다음 빛이 다음에 왔습니다. 그것은 저녁 그리고 아침인 것입니다.

에스더 4:16에서, 우리는 에스더가, 유대인들이 금식하도록 설득하라고, 모르드게에게 열심히 권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이것은 분명, 왕을 알현하려는 위험한 시도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절 뒤인, 에스더 5:1 에서, 우리는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라는 구절을 발견합니다. 만일 삼일 낮과 삼일 밤이 우리가 날을 세는 방식으로 계산되었다면, 어째서 에스더가 금식이 끝난 4째날이 아닌, 그 이전에 왕을 알현했을까요?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부활과 유사합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태복음 12:40).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마태복음 27:63).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마가복음 8:31)

만약 3일 낮과 3일 밤이 우리가 날짜를 세는 방식으로 계산되었다면, 예수님은 넷째날(삼일이 다 지난) 부활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을 비교해볼 때, 우리는 성경의 사람들의 마음속에, “삼일째 날”은 “삼일 후에”라는 뜻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들이 계산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 하루의 일부분도 하루라고 계산되었습니다. 기독교 변증과 연구 미션 (CARM)에서 만든, 다음의 표는 그들이 어떻게 계산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Page 175. 표

 

이 표를 분석하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이, 첫번째 날인, 성 금요일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 합쳐서, 첫째날은, 비록 예수님이 낮에 돌아가셨더라도, 그날 낮과 전날 밤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단지 금요일의 일부분만 남았더라도, 그것은 첫째 날과 밤에 포함됩니다. 토요일은 두번째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날은 셋째 날입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날짜 계산에서, 예수님이 셋째날에 부활하셨지만, 우리는 3일 밤과 3일 낮을 포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날짜를 세는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놀랄만한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날짜계산법을 차용하기만 하면, 소위 성경상 날짜 계산적 문제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이 문제를 살펴봅시다.

구체적인 부분을 자세히 살펴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날을 결정하는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우리는 단지 교회의 전통을 따르기 위해서 그날을 금요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성경적 이유로 그것을 주장하기 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것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인 교리라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경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어려운 점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금요일이 아닌, 수요일이나 목요일로 제안해 왔습니다. 성경은 명쾌하게 한주 중 어느 날에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수요일에 돌아가시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안식일이 목요일에 필요하나, 이러한 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목요일에 돌아가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금요일이 추가적 안식일임이 필요합니다. 역시 이러한 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수요일과 목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주동안 안식일이 한 번 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장을 쓴 저자중 한명인, 폴 테일러 역시, 다음의 성경 구절로 인해 안식일이 주중에 한번 더 있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은 그 안식일이 큰 날(high day)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한복음 19:31).

큰 날 (high day)이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조금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유월절 주간 동안의 진짜 안식일이거나, 다른 유대 축제일 중 하나일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레위기 23에 묘사된 특수한 유대 축제일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 일주일 중 어느 날이 그 축제일이 되었든지 간에. 이러한 축제일들은 때때로 안식일(Sabbath)과 동일시 되었습니다 (레위기 23:24).

예수님은, 안식일(Sabbath) 전날인, 준비일에 돌아가셨습니다(마가복음 15:42). 그러나 이것은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일 수도 있고, “유월절 당일을 준비하는 날”(요한복음 19:14)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준비일에 무덤에 놓이셨습니다(요한복음 19:42). 그러나 이것이 매주 돌아오는 준비일일까요 아니면 특별한 준비일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날은 매주 돌아오는 준비일이었다라는 것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전통적인 유대인의 이해에 따르면,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인 전날 밤, 유월절에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15).

그러나 문제는 이보다 더 복잡합니다. 요한복음 18:28 은,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은 마치 요한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유월절 전날인 준비일과 같은 날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헷갈리는 어려움을 풀 해답이 있을까요? 사실, 그것은 풀기 쉬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먼저, 이 딜레마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존 맥아더 박사의 요한복음의 도입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과 다른 공관복음 사이의, 시간 순서적인 이해는, 특별히 최후의 만찬 때와 관해(13:2), 어려운 문제를 제공합니다. 공관복음서들은 주님과 제자들이 목요일 저녁에 유월절 식사를 함께했고, 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묘사하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유대인들이 “더럽힘을 받지 않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다(요한복음 18:28)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목요일 저녁 유월절 식사를 했지만, 유대인들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요한복음 19:4는 , 금요일의 예수님의 재판과 십자가에 달리심이, 유월절 어린양이 도살되는 것과 같은 시간에 일어났기 위하여(19:14), 예수님의 재판과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유월절의 준비일이라고 이야기 하지, 유월절 식사를 한 다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질문은, “왜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목요일에 먹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유대인들 가운데, 하루의 시작과 마침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요세푸스, 미쉬나 및 다른 고대의 원천으로부터, 우리는 북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하루를 해뜰 때부터 해질때까지라고 계산했습니다. 그 지역은 예수님과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자라났던 갈릴리 지역을 포함합니다. 분명히 거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그러한 인식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위치한 남부지역의 유대인들은 남부의 제도를 따랐습니다.

그러한 차이점이 의심의 여지 없이, 때때로 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떠한 실질적인 잇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유월절 기간 동안, 예를 들면, 이틀 연속으로 축제를 기념하는 것이 타당하게 허용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전의 제사 시간이 총 2시간이 아닌 4시간에 걸쳐 드려지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한 날짜의 구분은 또한 남부와 북부지역 사람들 간에, 지역적인, 종교적인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기초로, 복음서에 나타나는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이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으로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이, 목요일 해가 뜬 때 시작해서, 금요일 해가 뜰 때 끝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고 재판했던 유대인 지도자들은, 대부분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로서, 유월절을 목요일 저녁 해질 때에 시작해서, 금요일 해질 때 끝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준비하심으로 인한 이러한 차이 때문에, 예수님은 타당하게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기념하실 수 있었고, 또한 유월절 당일에 희생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맥아더 박사는 금요일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음을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위와 같은 날들을 인식하는 이중적인 접근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을 결정하는 문제를 실재로 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그들이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서, 연속적인 두 날 동안 기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월절의 준비일에 관한 가장 좋은 설명은 아닐 것입니다.

존 길 박사는, 요한복음의 준비일은, 유월절 주간에 있었던 안식일 하루 전의 준비일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이날은 유월절 전날 하루동안의 준비일과 혼동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는 나아가 유월절을 위한 준비는 하루가 아닌 며칠간 지속되었다고 지적합니다 (e.g. 14일에 희생하기 위한 유월절 어린양을, 그달 10일에 미리 구분하는 일 등…). 이러한 일들은, 하루 전이 아닌 오랜 시간 전부터,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어났습니다. 길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14절.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유월절 전날 고초를 당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생에 관한 불경스러운 글을 기록한 사람들은, 그것이 유월절과 안식일 모두의 하루 전날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복음주의적 역사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월절의 준비는 유월절 어린양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준비 되었었고, 유월절 전날 밤 먹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이러한 개념에서의 “유월절 준비일”이라고 불린 특정한 날이 있었다는 것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날이 유월절 식사 전날이었음은 더더욱 찾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12:3-6의 법에 따르면, 유월절 어린양은 그 달의 10일에 나머지 양떼들과 구분되어야 했고, 14일까지 간직되었지만, 이러한 것이 유월절의 준비라고 불리지는 않으며, 과거에도 그렇게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여기에서 의미한 바일수는 없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유월절의 준비와 마련은, 음식을 먹는 날과 동일한 날 이루어 졌으며, 만찬이 벌어지는 장소를 꾸미는 일, 그리고 그목적에 편리한 것들, 그리고 어린양을 도살하는 것, 그리고 요리를 준비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17,19, 마가복음 14:12,15,16, 누가복음 22:8,9,12,13 에는 유대인들이 xoph owrp 라고 불린, 유월절 이전 15일간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축제이전 30일의 중간에서 시작했으며, 그들은 서로 질문했고, 유월절에 관한 전통에 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유월절의 “준비”라고 불린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14일째날 밤에 그들은, 집 안의 구석구석에 있는 발효된 빵을 찾아서 치웠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준비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로, 만일 유월절을 준비해야 했다면, 그것은, 보통 15일 째 행해졌고, 때때로 유월절이라고도 불렸던 “Chagigah”라는 커다란 축제를 준비하려고 꾸미는 것이거나, 혹은 남은 모든 기간 동안의 모든 축제를 준비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길 박사의 “요한복음 18:28”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단지 안식일의 준비일이라고 보는 것이 그중 가장 좋을 듯 합니다. 그 주가 유월절 주간이었기 때문에, 그 안식일의 준비일을 유월절 준비일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날이 가끔은, 마태복음 27:62, 누가복음 23:54, 요한복음 19:31 에서처럼,  단지 “준비일” 혹은 “준비” 라고 불리는 것이 관찰됩니다., 그리고 가끔 요한복음 19:42에서처럼, “유대인의 준비일”이라고 불리고, 그것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설명됩니다. 마가복음 15:42에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그날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위하여 준비했으며, 그날 먹을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유월절 주간이었으므로, 그 준비는 더욱 성대했습니다. 따라서 이 안식일을 위한 준비일과 다른 것들을 구분하기 위하여, 그 날이 특별히 유월절 준비일이라 불린 것입니다. 저는, 안식일 하루 전이 아닌 , 그 어떤 다른 날이 준비일이라고 불린 것을 관찰한 적이 없습니다.

다양한 관점들

따라서, 다양한 견해의 강점과 약점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수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견해는 몇몇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만, 또다른 문제를 불러 일으킵니다. 에를 들면, 예수님은 무덤에서 만 3일간 머무르셨을 수 있지만, 이 기간중에는 4일 밤을 포함하게 됩니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 마태복음 12:40절의 “3일 낮과 3일밤”의 문자적 해석의 성취를 구하려고 한다면, 수요일에 못박히셨다는 견해는 이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많은 다른 성경구절에서 밝히는 3일 째 되던 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누가복음 18:33, 사도행전 10:40, 고린도전서 15:4, 누가복음 24:46) 과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보이겠지만, “3일 낮과 3일 밤”이 꼭 72시간이라는 기간을 채워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요일 관점은 또한 목요일에 추가적인 안식일의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은 준비일이었고, 다음 날이었던, 안식일 전에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로부터 급하게 치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큰 날(high day)”이 바로 유월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는 이론이 많습니다.

목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견해 역시 몇몇 어려운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낮이나 저녁의 일부분이, 낮이나 저녁 전체로 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못박히셨다는 견해는 정확하게 3일 낮과 3일 밤을 제공합니다. 에수님은 현대 시각으로 오후 3시인, 제 구시에 돌아가셨습니다 (마태복음 27:46). 따라서 목요일에 3 시간의 낮과 밤 전체, 그리고 금요일 하루 전체, 토요일 밤과 낮 전체, 그리고 일요일 밤 전체가 포함되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다음 주일에 부활하셨을 것이기 때문에, 목요일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견해는 “3일 낮과 3일 밤” 개념과 아주 잘 맞습니다.

목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생각은 금요일에 추가적인 안식일이 존재 했고, “큰 날(high day)” 을 유월절로 해석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는 유월절 주간이었고, 일반적 안식일도 큰 날(high day) 이었을 것이므로, 두 큰(high) 안식일이 있어야 하고, 이 두가지 모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더우기, 성경은 니산월(유월절이 있는 달)에 이러한 안식일-휴일이 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본문에는 우리로 하여금 안식일이, 일반적인 제 7일의 안식일 이외의 다른 것이라고 의심하게 할만한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목요일 못 박히셨다는 시나리오는, 예수님이 3일 낮과 3일 밤동안 땅의 중심에 계셨다는 말씀을 해결하려고 시도하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셋째날 부활하셨다는 명백한 기록을 무시합니다(누가복음 18:33, 사도행전 10:40, 고린도전서 15:4, 누가복음 24:46). 만약, 예수님이 세번의 낮과 세번의 밤을 모두 무덤에서 보내셨다면, 예수님은 넷째날 부활하셨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중대한 교리적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안식일” 분석은 분명히, 소위 이러한 모순을 푸는 합당한 방법일 수 있으며, 이 주장은 성경의 권위에 분명히 헌신된 사람들에 의해서 견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 우리를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금요일-일요일 시간대가 영적으로 견고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본문에 추가적인 가정을 더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더 합당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 유대인의 개념상 다음 날, 유월절을 기념하려고 했다고 이야기하는, 요한복음 18:28을 들며, 추가적인 안식일 개념을 고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 다음날 유월절 음식을 먹고자 했다는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때, 목요일 못박히셨다는 시나리오는 매우 큰 문제점과 직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겟세마네의 배반으로 시작된 고난을 받으시기 전날에 유월절 음식을 드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유월절 음식을 올바른 날 드시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5:15).

그들이 나중에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고 계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다음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8:28은 그들이,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을 하신 그날의 나중에 먹기 원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날의 시작(유대인의 달력에서 저녁)에 드셨고, 반면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 저녁 (해지기 전), 유월절이 끝나기 전에 먹기를 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8:28에 관하여, 민수기 9:3-5은 이스라엘은 유월절 음식을, 유월절이 시작되는 시기인 해 지고나서 바로 먹으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이 정확하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하신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훨씬 이후인, 다음날 아침 예수님이 관정으로 끌려가신 이후까지 기다렸다 먹었고,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로버트 앤더슨 경은,  그의 책 오실 왕자님에서, 유대력에서 유월절이 언제였는지를 계산했습니다. 예를 들면, 주후 30년에는 목요일, 주후 31년에는 화요일, 주후 32년에는 월요일, 주후 33년에는 금요일, 주후 34년에는 화요일, 주후 35년에는 월요일, 그리고 주후 36년에는 금요일입니다. 따라서 수요일이 유월절이기 위해서는, 주후 27년이 가장 가까운 해가 됩니다.

전통적인 견해

자주 간과되는 점은, 요한복음 2:20에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A.D. 30) 첫번쨰 유월절을, 헤롯이 성전을 건축한 지 46년 후인 B.C. 17년(어셔가 제공하는 날짜가 정확하다고 가정한다면) 이라고 이미 확실히 이야기 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두번의 유월절을 더 기념하셨고 (요한복음 6:4), 마지막 유월절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때, 아마도 금요일이었던 A.D. 33년 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금요일의 시작(우리에게는 목요일 저녁)이 예수님이 유월절 식사를 하신 때가 됩니다. – 그리고 그는 배신 당하셨고, 매맞으셨으며, 재판에 넘겨 지셨으며, 결국 같은 날인 다음날 낮시간 중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해에는 유월절과 겹쳤던, 안식일의 준비일에 일어났고, 그 안식일은 유월절 주간이었으므로, 큰 안식일 (큰 날)이라 칭해진 것입니다.

더우기, 수요일과 목요일 견해는 “준비일”이 평상시의 안식일 전의 준비일이 아닌, 유월절 전날 준비일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다른 문헌에, “준비일”이라는 용어를, 안식일을 위한 준비일이 아닌 그 어떤 다른 것으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유월절의 중요성

하나님은 유월절에 관하여 항상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이집트의 첫번째 소생이 심판 받았을 때, 하나님은 출애굽기 1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문자적으로 순종해야 할, 특정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유월절은 가장 거룩하고 명예로운 희생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조차 기록된 그의 사역 동안, 성실하게 유월절을 지키셨음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2:13, 요한복음 6:4, 요한복음 13:1). 예수님의 부모님도 매년 유월절을 기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1).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에 희생제를 거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엄격하셨던 것을 고려하면,  궁극적이고 최종적 희생양이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당일에 희생당하신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26:2)

이러한 구절들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를 하신 당일 나중에 희생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훌륭한 학자였던 대주교 제임스 어셔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당일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단언합니다.

구체적으로: “삼일 그리고 삼일 밤”인가, 아니면 “셋째 날”인가?

다시 “삼일 낮 그리고 삼일 밤” 그리고 “셋째날” 이라는 구절로 돌아가 봅시다. 만약 두 구절들이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드러나면, 금요일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견해를 버릴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상대적인 문맥과 문화의 범주 안에서, 말씀을 사용해서 말씀을 해석해야 합니다. 구약의 유대인 문화는 “삼일 낮과 삼일밤”을 “셋째날”과 동일시 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적 배경은 이미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다른 구절을 보며 이 견해를 확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서구적 날짜계산법과 성경적 계산법이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에스더서로부터 분명한 성경적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들과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레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16).

자, 만약 여기서 우리가 낮과 밤을 서구적 방식으로 세었다면, 에스더가 왕을 보러간 시각이 넷째날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이렇게 읽지 않습니다.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에스더 5;1).

따라서, 제 삼일은 삼일 낮, 그리고 삼일 밤과 결국 같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갈 때 모든 사람이 금식하기를 바랬으므로, 금식 기간 중 나아갔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시 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약 문화의 또다른 예를 고려합시다.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마태복음 27:63-64).

위의 예는 특별히 연관이 있습니다. 만약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서구적 방식으로 세었다면, 특별히 그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밤에 도둑맞을 위험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무덤을 넷째날의 시작까지 지켜야 했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많은 구절을, 그리고, 성전을 삼일 안에 다시 세운다는 것과도 관련한 구절(마가복음 15:29, 누가복음 2:46) 을 찾아본다면, 당신은 “삼일 낮과 삼일 밤” (마태복음 12:40) 그리고 “셋째날” (누가복음 24:46) 의 경우 모두를 찾게 될 것입니다.

교부들은 3일과 “낮과 밤”동일시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이그나시우스 (A.D. 100)는 3일을, 세낮과 세밤과 동일시 했습니다.

“그는 또한 삼일 안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40일을 보내신 후, 그는 아버지께 받아 올려지셨고, 그의 우편에 앉으셔서, 그의 대적들이 그의 발 아래 놓여질 것을 기대하십니다. 준비일의 제 삼시, 그는 빌라도에게 구형을 받으셨고, 아버지가 이것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제 육시에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제구시에 그는 그의 영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 그가 묻히셨습니다. 안식일 동안 그는 아리마데 요셉이 그를 뉘이신 무덤, 땅 밑에서 보내셨습니다. 주일 새벽,  “요나가 삼일 낮과 삼일 밤을 큰 고기의 배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땅 밑에서 삼일 낮과 삼일 밤을 보내야 하리라.”라고 그가 말하신대로, 그는 죽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준비일은, 그렇다면, 열정으로 구성되고, 안식일은 매장을, 그리고 주일은 부활을 포함합니다.”

초기 교부였던 이레나우스 (A.D. 202) 역시 다음에서 알 수 있듯, 삼일을 삼일낮, 삼일밤과 동일시합니다.

“주님 자신이,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서 3일 낮과 3일 밤을 머문 것처럼, 인자도 그리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그가 승천하셨을 때, 그가 또한 땅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다한 것이 무엇이냐?”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역시, 다윗 왕이 그에 대하여 예언하며, “당신이 나의 영혼을 음부로부터 구원하였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날 그의 부활에 관하여, 그는 그의 부활을 처음 보고 경배했던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므로, 나를 만지지 말아라. 그러나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나의 아버자, 그리고 너의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이야기 하여라.””

이러한 초대교회의 기록들은 성경도 아니고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3일낮, 3일밤을 셋째날과 동일시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했고, 사용해왔던 방법이, 더 좋은 설명입니다.

결론

이것은 복잡한 주제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날은,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주제 때문에 “새로운 교회나 교파”를 설립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시나리오는 가장 강력한 말씀의 기반이 있고, 모든 그에 대한 반대를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역사를 걸쳐 전통적인 견해로 여겨져 왔고, 보수적 복음주의적 성경 해석을 대표합니다.

다른 견해들도 장점이 있습니다만, 더 큰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할 것을 권면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날짜를 세는 방법과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마태복음 27:63-64, 그리고 다른 설명된 이유들로 인해, 우리는 금요일 – 주일 견해에 찬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