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도덕의 적법성에 대한 도전

도덕은 진화론적 세계관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덜 도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중 대부분으 어떤 행동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성경적 창조론자와 같이, 그들은 옳고 그르다는 개념을 믿습니다. 문제는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세계관 내에서, 옳고 그른 것을 믿을 그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르다는 것은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독교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함으로써, 진화론자들은 비이성적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세계관에 반하는, 성경적인 개념을 빌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의 기원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라고 가르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시편 24:1) 그리고, 하나님은 법을 만들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도덕 규범은 성경적 창조 세계관에서 이해됩니다. 그러나, 만약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면, 만약 인간이 단지 생각없는 화학작용의 오랜 시간에 걸친 결과물이라면, 왜 우리는 보편적인 행동 양식을 따라야 합니까? 만약 진화가 사실이라면, 옳고 그른 것과 같은 개념이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진화적 도덕성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지 모릅니다. “음.. 저는 옳고 그르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또한 진화도 믿습니다. 따라서 명백하게 그 두가지는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비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믿는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무엇이 사실인지를 믿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말 무엇이 사실인가인 것입니다. 성경적 하나님을 떠나서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정말로 의미있을 수 있을까요? 다른 말로 하면,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도덕성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으로, 진화론자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물론이죠.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그들 나름의 도덕 규범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생각은 임의적이며, 이상한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만약 모두가 그들 나름의 도덕성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실재로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개인적 도덕 규범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은 살인이 완벽하게 받아들여지는 도덕규범이라고 결정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를 속상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만약 도덕성이 개인적인 기준 그 이상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이 살인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도덕성이 주관적, 개인적 선택이라면, 히틀러는 그의 행동으로 인해 맹렬히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선택한 기준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명백하게,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자세입니다.

어떤 진화론자들은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 “옳은 것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임의적입니다. 다른 견해들에 반해. 이러한 기준이 선택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 세계관으로부터 빌려온 것임을 보실 수 있기 바랍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우리는 진정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은, 중요하긴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에서 가장 주요한 관심은 아닙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주요한 촛점입니다 (마가복음 12:30, 전도서 12:13). 이것의 한 측면이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과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2, 마가복음 12:31).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들이 단지 화학적인 부산물이라면, 왜 우리가 그들의 행복을 걱정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들에대한 걱정은 진화론적 우주에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마도 진화론자들은, 도덕성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도 다른것들과 같은 결점을 가지고 잇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정당하지 않은 견해를, 한 무리의 사람들로 옮길 뿐입니다. 그것은 임의적이며, 이상한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다시금, 우리는 우리가 분명 잘못이라고 알고 있는 특정한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결국, 히틀러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그가 옳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을 옳다고 만들 수 없습니다.

성경적 하나님 없이, 옳고 그름은 단지 개인적 취향으로 전락합니다. 진화론적 우주에서, “살인은 잘못이다”라는 언급은, 마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다”와 같은 개인적 견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 논쟁할 그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이, 마치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따라야할 진정한 기준인 것처럼 도덕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진화론적 불일치성

하나의 예로써, 아이들이 창조에 대해 배우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진화론자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제, 명백하게 이것은 미증명사항을 사실로 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가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가 진실이며, 진화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진짜로 이상한 것은, 그들의 주장들이 진화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화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우리가 거짓말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 특별히 그 거짓말이 우리의 생존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말이죠.

분명히 기독교인들은 거짓말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기독교인들은 이 믿음에 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서, 거짓말은 그의 성품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23:19), 그리고 우리는 거짓말하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출애굽기 20:16).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을 떠나면, 왜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합니까? 그 문제에 관해, 왜 우리가 그 어떤 것을 해야합니까? Should 와 ought 와 같은 단어들은, 모든 사람들 위에 권위를 가진 분에 의해 제시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해야만, 이치에 맞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단지 화학적 부산물이라면, 왜 우리가 인간이 무엇을 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까? 우리는 베이킹 소다가 식초와 격렬히 반응하는 것에 대하여 화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화학적 작용입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그 어떤 것에 화를 냅니까? 만약 우리가 단지 진화된 동물이라면, “개가 개를 먹는” 그러한 세상에서, 왜 우리는 어떤 행동양식을 따라야 합니까? 결국, 한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상관이 없습니다. 진화론자들이 도덕적이되려고 할 때, 그들은 기독교 세계관으로부터 그 개념을 빌리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성경적 세계관으로부터 도덕성이라는 개념을 빌려야 한다

한 웃긴 예가 창조박물관의 개장에서 발생했습니다. 창조박물관에 반대하는 한 그룹 (The Campaign to Defend the Constitution, or “Defcon”) 이 비행기 한대를 고용해서 싸인을 매달고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그 싸인은 “Defcon은 가라사대, 너는 거짓말하지 말지어다.”라고 써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에 있습니다. 사실, 창조박물관의 목적은 기원에 대한 진시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그 주장에 반박하기 위하여 성경적 세계관을 빌려야 했던 것입니다. 진화론적 우주에서, Defcon의 도덕적 반대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진화론적 자세를 이해함

기독교 세계관은 단지 도덕성을 설명하는 것뿐이 아닌, 왜 진화론자들이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것도 설명합니다. 그들 자신이 고백하는 세계관 내에서 그들은 도덕에 대한 그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그들은 도덕적 행동양식을 지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 중심에는, 그들도 창조주 하나님을 정말로 알기 때문입니다 – 그들이 그것을 극구 부인함에도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이 성경의 하나님을 알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억압한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18-21). 왜 그들이 이러한 일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거역했던(창세기 3),  아담의 때로부터 죄악된 본성(하나님을 대적하려는 경향)을 물려 받았습니다 (로마서 5:12).  요한복음 3:19는 사람들은 그들의 악행이 드러나는 것보다, 영적인 어둠움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아담이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피하려고 한 것처럼 (창세기 3:8), 그의 후손들도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죄악을 해결하는 길은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아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요한 1서 1:9, 누가복음 5:32). 신실하신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로마서 10:13).

결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특정한 행동양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성경적 창조가 사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여겨질 수 있는지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그분께 책임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따라서, 진화론자들이 옳고 그름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들이 비이성적이라고 결론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은 진화론적 우주에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