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우리가 영어 성경을 갖게 되었나? 

당신은 책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나요? 인터넷과 다른 전자매체에 의한 의사소통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지식의 기본 원천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현재 일상에관한 정보를 위하여 책에 의존한다면, 인생의 궁극적인 주제에 관련한 지식을 얻는 방법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하겠습니까?

놀라운 소식은, 하나님이 이러한 지식을 우리가 성경으로 알고 있는 책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성경의 존재 없이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우리가 성경과 놀라운 복음의 메세지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성경을 완벽한 문서로써 가지고 있습니다만, 성경은 완벽한 상태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는가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더 감사하게끔 만들 것입니다.

성경의 기원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그 자신, 그리고 그의 자비와 은혜에 관한 지식을 인간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의사소통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계시는 단순하게 하나님이 그 자신을 인류에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적인 실재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진리의 이해는,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죄악으로부터 용서함을 경험하고, 영생의 소망을 갖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생의 궁극적인 주제들이며, 인간은 이에대한 해답을 알 방법을 가져야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이 창조되는 것을 포함한, 이 세상의 창조에 관한, 영감받은 기록으로 시작됩니다. 영감은 신학적 단어입니다. 그러나 그 기초적의미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말슴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영감의 과정은 성령님에 의해 조정되므로, 최종 결과는 실수가 없습니다.

성경적 증거에 의하면, 모세는 모세5경으로 알려진 구약의 첫 다섯권의 책을 기록했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그가 약 기원전 1450년경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기록한 많은 일들이 몇세기 이상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모세가 이 세상과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알 수 있었겠습니까? 단순한 대답은, 하나님이 그것을 모세엑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세는, 편집할 수 있는, 이미 존재했던 문서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g. 창세기 5:1). 과학이 아닌, 성경은 이 세상의 창조에 관한 절대적 진리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모세의 때까지, 인간의 기록은 매우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고고학은 돌에와, 점토판, 동물의 가죽, 나무 그리고 다른 물질들 위에 쓰이 기록들을 발견해 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했음에 틀림 없고, 두루마기 형식으로 동물의 가죽에 기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극히 거룩함 가운데 그의 기록을 언약궤에 넣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명기 10:2). 모세의 죽음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이 책들에 관한 특별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수칙들을 따르고 묵상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성공할 것 뿐 아니라, 그가 이 책에 따라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추가적인 책들이 모세의 책들 위에 덧붙여졌습니다. 히브리 정전은 기원전 420년 말라기서가 쓰여질 때 완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책들은 법, 예언서, 그리고 문학작품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의 순서와 구성은 영어 성경과 다르지만, 그 내용은 정확하게 같습니다.

히브리 원전의 전달

세월이 흐르며, 서기관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제사장 그룹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의 의무는 예전 복사본이 닳아 없어짐에 따라, 새로운 성경의 복사본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서는, 나중에는 파피루스를 비롯한 다른 물질 위에 기록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무두질한 동물의 가죽에 기록되었습니다. 기록된 문서는 두루마기 형태였습니다.

특별한 법칙이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이, 영어로 “여호와”라고 번역된 하나님의 언약의 이름을 기록하기 전에, 그들은 그들의 손을 씻고, 그 이름을 기록하도록 된 특별한 붓이나 펜을 이용했고, 그 단어를 기록하기를 마친 후에는 다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단어들을 정확하게 다시 기록하는 것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유대인 서기관들은 성경의 필사본에 관한 재미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필사함에 있어서 이러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필사본은 예전 필사본보다 더욱 정확하다고 믿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에, 더 오래된 복사본이 더욱 정확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필사본이 더욱 정확하다는 견해는 더욱 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본문의 필사를 마쳤을 때, exemplar 라고 불린, 이전 필사본을 어떻게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것을 파기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해답은, 서기관들에게 그 필사본 두루마기를 진흙 도자기에 넣어서 땅에 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이 자연계에 만드신 과정으로 그 필사본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으로 인해, 우리는 정말로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 필사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947년 사해 문서가 발굴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필사본은 약 천년 전의 것이었습니다. 이와 비교해, 우리는 기원후 200년까지 (혹은 그 이전까지) 거슬러가는 신약의 그리스어 필사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역의 시작

기원전 200년 가량, 한 놀라운 사건이, 하나님이 오실 메시아를 위하여 세계를 어떻게 준비하셨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이 사건은 히브리 성경이 그리스어 성경으로 번역되는 일이었습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것들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집트의 왕은,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 포함하기 위하여, 알려진 모든 문학 작품의 필사본을 갖기 원했습니다. 히브리 성경의 필사본을 얻기 위해, 그는 이스라엘로부터 72명의 서기관들을 번역 작업을 위해 초대 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각각의 서기관들은  독립적인 장소에서 그 작업을 마쳤습니다. 전설은 또한 각각의 서기관들은 70일 이내에 그들의 작업을 마쳤고, 모든 복사본들은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러한 전설은 과정된 것임에 틀림 없지만,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이 번역은, 그리스어로 70을 뜻하는, Septuagint(70인역)이라 불립니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성경이 되었고, 많은 신약의 저자들은 히브리 원전 대신 70인역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해가 됩니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는 구약을 인용할 때, 70인역을 사용합니다.

이 그리스어 필사본은 곧 로마 제국의 전 영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데, 이는 거의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그리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언어로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은 곧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는 데 길을 닦은 것입니다.

신약의 기록

구약을 기록하는데 걸린 시간과, 신약을 기록하는데 걸린 시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이 완성되는데 거의 1,000년의 시간이 필요한 반면, 신약을 기록하는데는 약 50년 걸렸습니다. 학자들은 신약의 마지막 책이 사도 요한에 의해 기원후 100년 이전 (어떤 학자들은 기원후 70년 이전)에 완성되었다고 믿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기록 사이에는 또다른 대조점이 존재합니다. 구약을 기록하는 사명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졌고, 대부분의 책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예외는, 다니엘서, 에스겔서 그리고 에스터서와 같이 바벨론 포로시절 기록된 책들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이전 모세의 책들, 그리고 동쪽에서 쓰여진 욥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제외한, 신약의 책들 대부분이 유대인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그들은 로마제국의 다른 장소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그의 서시서들을 고린도와 로마를 포함한 여러 도시들에서 기록했습니다.

신약의 책들은 단행본으로 기록되었고 읽혔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책들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 각각의 책들은 바울서신서, 복음서 등으로 묶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한권의 책으로 묶였습니다. 그들은 원래 두루마기 형식으로 기록되었으나, 번역되고 묶이면서 책의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기원후 약 100년경에 교회에서, 유대회당으로부터 그들의 기록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러한 책의 형태가 사용되었음을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신약의 책들이 기원후 100년 이전에 기록되었지만, 그들이 정경으로불리는 성경으로서 인정되는 과정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그 책들을 그것이 기록되는 순간 성경이었으나, 교인들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교회가 정경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달은 것이라는 것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다음의 표는 정경에 관한 틀린 견해와 올바른 견해를 대조합니다.

 

Pg 153의 표.

피의서라고 불리는 몇권의 책들은 즉각적으로 정경으로 받아들어져지 않았습니다. 그 단어의 뜻은 “반대하여 말해졌다”는 뜻이고, 몇몇 사람들은 이 책들이 성경이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서가 포함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야고보는 명백하게, 바울과는 대조적으로, 행위에 의한 칭의교리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거부된 책은 히브리서인데, 인간 저자의 이름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야고보와 바울이 칭의에 대한 같은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히브리서에 저자의 이름이 포함이 되지 않은 이유는, 그 거룩한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제외된 책들은 pseudepigraphia입니다. 이 책들은 사도중 한분이나, 잘 알려진 크리스쳔에 의해 씌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증거들에 의하면, 진짜 저자는 그들의 책이 받아들여지길 원해서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한 것을 밝힙니다. Pseudepigraphia 의 한 예는 베드로복음이 있습니다.

토착어 번역

성경의 완성을 토대로, 교회는 복음을 모든 나라로 전파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한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어를 이해했기 때문에 복음으 전파하는 것이 쉬웠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범주가 넓어지면서, 그리스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무엇이 행해졌을까요?

교회가 행한 전례가 있습니다. 기원전 200년 경,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된 히브리어 성경은 이방인들에게 큰 축복임이 드러 났습니다. 이제 성경은, 신약을 시작으로, 그 시대의 토속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시리아어, 라틴어, 콥틱어 등을 말하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했습니다.

토석어 번역의 흥분되는 이야기는, 원래 데살로니카인이였던, 씨릴과 메쏘디우스 형제의 역사입니다. 로마의 주교는 그들을 9세기경 슬라브 민족의 선교를 위해 파송했습니다. 그러나, 슬라브 민족은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서 씨릴은, 성경을 슬라브 언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씨릴릭(Cyrillic)이라고 불리는 알파벳을 고안했습니다. 이 알파벳은 오늘날까지 러시아어의 알파벳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 형제는 슬라브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요긴한 것을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의 문화가운데 지속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라틴어 성경의 지배

서부 유럽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번역은 라틴어였습니다. 지금은 라틴어가 사어로서 아무도 쓰지 않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라틴어 번역은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 행해 졌고, 시기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번역은 이탈라, 혹은 구라틴번역으로 불립니다. 필사본을 기록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곧 이 문서는 오류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주교인 다마서서는, 주후 약 380년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였던 제롬에게 신약을 개정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제롬은 신약을 개정했을 뿐 아니라, 베들레헴으로 가서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구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했습니다. 이탈라의 구약은 칠십인역으로부터 번역되었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20년에 걸쳐서 주후 402년 경 작업을 마쳤습니다. 이 번역본은 벌게이트(Vulgate)라고 불리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의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벌게이트는 서구와 로마교회의 성경이 되었습니다. 주후 1546년 트렌트 공회까지, 그것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성경의 표준판이 되었습니다. 비록 제롬은 외전을 제외하기 원했지만, 다마서스 교황은 그것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불평을 표현하기 위하여, 제롬은 외전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이 정경으로 고려하지 않던 책들이 성경에 포함되었습니다.

제롬은 또한 핵심적인 신약의 단어들, 특별히 의롭게 하다(justify)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신약에서 그 단어는 항상, “의롭다고 선언하다(to declare righteous)” – 법적인 지위의 변화-  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나 제롬은 이 단어를 “의롭다고 만들다 “to make righteous)” – 도덕적 상태의 변화 – 라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칭의 의 교리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공식적 가르침은, 하나님이 누군가를 의롭게 만듦으로써 그를 의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챤이 됨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갖습니다.

영어로 번역된 성경

서구에서, 국가의 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지부였습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유일한 성경은 라틴 벌게이트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틴을 읽거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말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지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감추어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일으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1330년부터 1384까지 살았던, 존 위클리프였습니다. 그의 번역 작업에서, 위클리프는 유일하게 구할 수 있었던, 벌게이트를 사용했습니다. 두 종류의 영문 번역 작업이 행해 졌습니다. 하나는 벌게이트의 어순을 철저하게 따랐고, 읽기 쉽지 않습니다. 존 퍼비가 번역한 다른 하나는 좀더 읽기 쉽습니다.

위클리프가 1384년 죽은 뒤, 영국의 성직자는 옥스포드의 집회에서 영문 번역이 불법임을 천명했습니다. 허락을 받은 주교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 후 130년 동안 영어 성경은 공식적으로 불법이었습니다.

그리스어 신약의 출판

영국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하나님은 16세기의 개혁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1453년, 그리스 교회의 본부가 위치해 있던 콘스탄티노플이 무슬림의 손에 넘어 갔습니다. 그리스의 기독교인들은 더이상 자유롭게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서부 유럽으로 이주 했고, 신약의 그리스어 필사본을 가지고 왔습니다. 동시에, 유럽에서는 르네상스라고 알려진 커다란 문화적 쇄신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주제는 ad fonts (원천으로) 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부 유럽에서 그리스어에 대한 대대적 부흥이 일어 났습니다. 이 시기 동안, 움직이는 활자에 의한 인쇄 기술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16세기 초반의 이러한 사건들은 연합하여, 그리스어 신약의 인쇄본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1516년, Novum Instrumentum 이라고 불린 첫번째 그리스어 신약이 바젤의 요하네스 프로벤 출판사로부터 발행되었습니다. 이 그리스어 신약은 위대한 인문주의자이자, 많은 개혁주의자들의 주장과 동조했지만, 그래도 로마 카톨릭 교회에 머물렀던,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에 의해 편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인쇄되었던 책들 중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여기는데, 그것은 이 책이 16세기의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기 때문입니다.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 신약을 편집하기 위해서, 그리스 원문 필사본을 갖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는 바젤 주위의 수도원에서 5-6개의 필사본을 찾았고, 그것들을 인쇄본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이들 대부분, 혹은 모두는 원래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온 필사본들은 문자체, 혹은 비슷하게 읽히는 문서를 가진 형성했고,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온 형태는 비잔틴으로써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비잔틴 문자체는 중세의 독보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비잔틴 문자체의 지배는 거의 35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등 거의 모든 16 세기의 개혁 성경들은 이 문서로부터 번역되었습니다. 이 문서 형태는, 로버트 스테파누스와 씨오도어 베자와 같은 에라스무스의 계승자들에 의해 계속 인쇄되었습니다. 1633년 네델란드의 엘즈버스에  의해 출판된 그리스어 신약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책의 도입부에서, 우리는 라틴어로된 다음의 단어들을 발견합니다: “독자는 이제, 우리가 하나도 바꾸지 않고, 변질시키지 않은, 문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인본문(Textus Receptus) 혹은 출판자의 안내문으로 인해서 전수받은 문서로 알려 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버전은 21세기에 조차, 특별히 킹 제임스 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표준 그리스어 문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인본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비평가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에서, 그들은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 신약을 출판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필사본을 사용했다는 점을 들고, 이들 필사본은 기껏해야, 10세기 혹은 11세기 것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후에 추가적인 필사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에라스무스가 사용한 것과 는 다른 문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문서들은 이집트로부터 유래했고, 블록체 대문자를 사용한 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언설자체 사본이라 부르고, 많은 내용이 비진틴 문자체와 동등하지만, 몇몇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새로운 문자체는 알렉산드리아 문자체로 알려졌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문자체의 필사본 중 가장 중요한 발견은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Codex Sinaiticus)와 코덱스 바티카누스 (Codex Vaticanus) 였습니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는 그리스 신약 중 가장 오래된 완벽한 필사본으로 여겨지며, 기원후 약 350년 것으로 추정됩니다. 코덱스 바티카누스는 완성본은 아니지만,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와 일치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두 필사본이 콘스탄틴에 의해 위임받은 50개의 성경들 중 두개의 필사본이라고 믿습니다.

점점 더 오래된 그리스어 필사본이 발견됨에 따라, 점점 더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최근 발견된 필사본에서 발견되는 문자적 차이점을 포함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리스 신약 인쇄판에 대한 수요가 있었습니다.

비평적 그리스어 신약

1881년, 부룩 포스 웨스트콧 주교와 렌톤 존 앤쏘니 호트가 편집한, 새로운 그리스어 신약판이 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었습니다. 이 비평적 그리스어 신약의 출판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몇몇은 그 출판이 문자적인 연구를 19세기에 불러 일으킨다고 반긴 반면, 다른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 문체로부터 온 다른 이해는, 신약에 이단성이 스며들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평적 그리스어 신약의 출판과 그것이 낳은 논란은 논쟁 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출판은 그것을 문자적 기초로 여긴 영문 번역본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현대적 영어판

비평적 그리스어 신약의 출판과 동시에, 개역판(Revised Version)이라고 불린 새로운 영어 번역이 영국과 미국의 학자들의 협력 위원회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개역판은 1881-1885에 출판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쪽 위원회는 영국쪽 위원회의 몇몇 번역과 동의하지 않고, 1901년 미국표준판(American Standard Version)을 출판했습니다. 이 두 번역본의 출판이후, 수많은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미국 표준성경(New American Standard Bible), 새로운 개역표준판(New Revised Standard Version), 새로운 국제판(New International Version), 그리고 영어 표준판(English Standard Version), 그리고 많은 다른 번역본들에 익숙합니다. 이러한 번역들은 모두 비평적 그리스어 신약을 원문으로 사용했습니다.

비평적 그리스어 신약 자체는 어떻습니까? 1881, 웨스트콧과 호트의, 획기적인 출판 이래로, 본문은 계속 새로워졌습니다. 주요 발견은 파피루스에 기록된 그리스어 필사본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이러한 필사본들은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매우 건저한 기후가 그들이 보존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필사본들은 2세기 및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알렉산드리안 문자체와 일치합니다.

새로운 그리스어 필사본의 발견이 어떻게 현대 영어판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몇몇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의 섭리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된 그의 말씀을 기록한 문서를 보존하셨습니다. 학자들은 약 3,400 개의 그리스어 신약 필사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이 필사본들은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물론 단 하나의 필사본도 다른 필사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그 차이점은 천 글자중의 하나정도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 문서 중에서, 1000글자 중 999글자는 일치합니다. 이러한 문자적 차이점을 출판한다면, 표준 그리스어 신약의 약 2 페이지 정도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들중 커다란 성경의 교리를 의심하게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믿을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영문판 성경도 믿을만 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들의 백성을 그의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시길 택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의 말씀을 보존하셨다고 믿습니다.

한 이야기는 위의 언급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1947년 사해 문서가 발견되었을 때, 거의 2000년 동안 그 누구도 그것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서들이 현존하는 구약의 필사본과 비교되었을 때, 그 차이는 매우 사소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기록이며,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보전하셨다는 점에서, 그의 능력의 기록입니다. 그의 기록된 말씀을 읽고, 그를 신뢰함으로써, 성경의 하나님을 높여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