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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교수(2006, 창조와 격변)가 주장하는 다중격변론은 ‘하나님께서 수십억 년 동안 진화의 순서로 창조와 멸종을 반복하시다가 인간을 창조하였는데 멸종시킬 때마다 노아홍수와 같은 격변을 일으키셨으며, 그 격변은 지구 밖에서 날라온 운석에 의해 발생했다’는 식의 진화론과 창세기를 타협시킨 이론이다. 지난 호에서 이 이론의 과학적 문제점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번에는 성경적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다중격변론은 기본적으로 점진적 창조론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앞서 다루었던 점진적 창조론과 같은 성경적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다. 실제로 그의 책 안에서 점진 적 창조론을 창시한 휴 로스의 생각을 지지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1. 성경 자체에 언급이 있는가?
다른 류의 유신론적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다중격변론의 첫 번째 문제점은 인간 창조 이전에 수많은 격변이 있었다는 기록을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창세기 1장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지구, 우주, 식물, 동물, 사람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진화의 순서로 창조하셨거나 이 생물들을 다시 멸종시켰던 흔적이 없다. 더군다나 멸종시킬 때마다 격변이 일어났다는 기록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중격변이란 발상은 시작부터 성경과 무관하게 시작된 것이다. 지구가 겪은 적이 없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라는 상상의 진화 역사를 주장하고자 만든 작품이다. 만약 저자가 주장하는 생물들을 멸종시킬 엄청난 격변이 수십억 년 동안 수없이 발생했다면 성경 어딘가에 이런 분위기가 감지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성품과 어울리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전능하시며 선하신 분”임을 일관되게 선포한다. 그러나 다중격변론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했던 생물들을 대거 멸종시키는 잔인하고도 무의미한 일들을 수십억 년 동안 수없이 반복하신 후에 인간을 창조했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결코 조화로 울 수 없다.

양 교수는 이 멸종의 문제점에 부담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책에서 “대규모의 멸종들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빴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p. 536)”고 하며 대규모 멸종을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멸종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탓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규모 멸종이 이렇게 문장 하나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인가? 과연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멸종시키는 것이 보시기에 좋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하실 때 사람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자신이 창조한 것들을 쓸어 버리시며 한탄하셨다(grieved)고 말한다(창 6:7). 만약 그런 수많은 격변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기 전까지 수십억 년 동안 얼마나 많이 한탄을 하셨어야 할까? 그리고 그런 한탄을 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다중격변론은 그 분을 방향성 없이 자신이 창조하셨던 생물들을 반복적으로 멸종시키는 시행착오의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렸다. 다중격 변론은 성경과 무관하게 시작한 이론이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성품과 어울릴수 없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어울리는가?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마다 그 피조물들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반복하셨다. 그분은 흠이 없이 거룩하신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께서 그 좋았던 땅을 저주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바로 자신의 형상인 인간의 범죄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망이 들어왔고, 땅에서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으며, 인간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 홍수를 통해 인류를 쓸어버리고 이 세상은 더 악화된 상태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그 회복된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다중격변론은 성경에서 말하는 이 복음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인류의 죄악이 일어나기도 전에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보시기에 좋았던 피조물을 변형시킬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의 죄 때문이다. 성경은 이 죄에 대한 부분에 아주 단호하다. 다른 유신론적 진화론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 부분인데, 다중격변론도 예외 없이 복음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다중격변론은 여기에 한 가지 더해서 홍수 심판과 같은 격변이 인류의 탄생이나 죄악이 있기까지 수없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손상시키며 죄의 심각성 뿐만 아니라, 죄악이 가득 찼을 때 인류와 동물들을 쓸어버렸던 단 한번의 홍수 심판 사건의 중요성도 약화시킨다.

저자인 양 교수도 자신의 범죄 이전에 격변이 일어난 것에 대한 자신의 이론에 부담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책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빌딩이지 지진이 아니다(p. 535)”라는 표현을 인용하기도 했다. 즉 지진과 같은 재해의 근본원인이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엉뚱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인명피해는 일차적으로 지진자체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빌딩이 무너지지도 않고 사람이 죽지도 않는다. 그리고 빌딩 없는 곳에서도 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났음을 알아야 한다. 다중격변론은 결국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도 상실시킬 뿐 아니라 완전하게 회복된 천국의 모습도 희미하게 만든다. 다중격변론은 성경과 무관하게 시작한 이론이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복음과 조화를 이룰 리 없다. 오히려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진화론이 등장한 이래로 타협이론은 늘 존재해왔다. 다중격변론도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타협이론이 등장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1980년 진화론자들이 화석에서 진화에 필요한 중간 단계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런데 진화 순서로 창조되었다는 점진적 창조론을 만들었다. 지질학자들이 지층이나 화석이 오랜 세월이 아니라 엄청난 격변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중격변론을 만든 것이다.

교회가 유신론적 진화론을 수용했을 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 세대는 교회를 떠나버린 것이다. 교회에서 성경이 사실이 아니어도 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도 지금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받아들여야 다음 세대가 교회에 남는다고 거꾸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유럽과 미국의 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교회가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였을 때, 다음 세대는 교회를 떠나 버렸다. 다중격변론을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잃어버릴 것이다. 아래는 다중격변론의 요약이다.

1. 과학적으로 옳은가? No
2. 성경 기록과 일치하는가? No
3.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어울리는가? No
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조화를 이루는가? No
5. 다음 세대에게 성경의 믿음을 전수했는가?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