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은 신뢰할만한가?

17세기 런던의 블랙프라이어에서 목회했던 윌리암 구그는, 32년간 신약의 히브리서에 관한 1,000여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너무 많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신약이 믿을만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시대와 연관성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많은 교회에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설교를 듣습니다. 우리는 신약이 실재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실재로 1세기에 기록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자들은 어떻게 믿었는가?

신약의 중요한 두 구절은 디모데 후서 3:16절과 베드로후서 1:21 입니다. 디모데 후서는 성경 말씀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말해 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베드로후서는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지 말해 줍니다. 바로 하나님에의해 감동받은 사람을 통해서 입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 물론 이 구절들은 구약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감은 그들역시 그들 자신과 서로에 대하여 동일하게 주장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고린도전서 2:13) 라고 적었으며, 베드로 사도 또한, 젊은 교회들을 격려하며,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3:2) 라고 기록했습니다.  번역가들은 이 말씀 중의 특이한 형태의 그리스어를 잘 다루었습니다. 강조점은 사도들이 단지 예수님이 이땅에서 사역하실 때 주신명령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 자신이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대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첫번째 편지에서, 베드로는 더욱더 직접적으로 이사실을 다룹니다.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초림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사도들에게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2) 성령님과 선지자들의 관계는, 성령님과 사도들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사도들의 권위는 선지자들의 권위와 동일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아인들에게,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4:2) 라고 도전했습니다. 같은 편지의 좀더 앞부분에서,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2:13) 라며, 그들에게 바울의 메세지를 듣고 어떻게 처음에 반응했는지를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권능을 지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설교가 진리의 기준이었으며, 자신의 설교로 비추어 보아서, 다른 설교자들을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갈라디아서 1:6-12)  바울의 복음은”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갈라디아서 1:11-12, 에베소서 3:3) 이러한 이유로,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복종여부가, 영적 생활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고린도전서 14:37)

 

무엇이 문제인가?

바울이 제시한 몇몇 구절이 어떤 사람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10 에서,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그 특별한 주제가 아닌 다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미 지침을 남기셨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9:1-9 를 보십시오.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7:12에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말할 때에,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7:40 에 나오는,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I think I also have the Spirit of God.”)  이라는 구절은 의심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영적인 은사와 지혜가 충만하다고 여기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비웃는 듯한 험담을 하고 있거나, (고린도전서 14:37) 마치 우리가 “I think I know what I am talking about.” 같은 표현처럼,  긍정적인 주장으로 발언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편지들이 받아졌는가?

바울은 그의 편지들이 한번 읽히고 버려지기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골로새 교회에게 보내진 편지는 읽힌 후 라오디게아 교회로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비슷하게,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쓰여진 편지 역시 골로새 교인들에게 읽혀졌어야 했습니다 (골로새서 4:16). 바울 사도는 그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가 모두에게 읽혀지도록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편지를 읽어주라.” (데살로니가 전서 5:27) 고 명했습니다. 사도들의 죽음 이후에 초대교회의 리더들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사도들의 편지를 구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바울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에 구약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한 것처럼, 바울의 편지에 구약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16)  예를 들면, 디모데 전서 5:18에, 바울은 신명기 25:4 과 누가복음 10:7 을 도입하며, “말씀에 이르기를..” 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디모데 후서 3:16절의 “모든 성경”을 구약과 신약을 모두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바로 사도들의 예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위

마태복음 16:18-19 에 나오는 말은 자주 논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은 직설적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는 약속은 유대적인 문맥에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서기관들이 관공서에 등록될 때, 그들은 상징적인 지식의 열쇠를 부여받았습니다. 서기관들의 의무는 특수한 경우에 하나님의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이 어떤 사람을 속박할 때, 그들은 그를 법의 의무하에 두었으며, 그들이 그를 놓아주었을 때, 그는 법의 구속에서 풀어주었습니다.

비슷하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그의 가르침을 맡은 청지기로 훈련시키셨습니다. 마태복음 16:19의 약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미래의 글과 가르침을 마치, 신약의 서기관처럼 지칭하신 것이며, 이런 일들을 감당함에 있어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도움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6에서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두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영적인 도움으로 깨닫게 되는 것과, 영적인 도움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6:13 은 영적인 도움으로 얻은 지식에 덧붙입니다. “그가 장차 올것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고 행하신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교회에게 진리의 길을 가르치며, 다가올 미래의 일을 기록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도움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동일한 권위로 기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록 22:6 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예수님 자신의 권위

그 어디에도 마태복음 5:18 처럼 그의 말씀의 권위에 관한 믿음을 간단하게 표현한 곳은 없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의 후반부 사역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의 말씀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4:35)

쓰여 졌는가, 구두로 전달되었는가?

많은 경우, 처음 40여년 동안은 복음서의 기록들이 오직 구두로만 전달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한 비평가의 주장이 전형적입니다. “초기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관한 구두로 된 기록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것처럼 복음서가 올바른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다음을 고려해 보십시오.

적으세요 (Get That Down)

유대의 랍비와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이 구두로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우리는 학생들은 그들이 받은 가르침을 적은 노트를 간직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3 의 “서판”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공무원등의 사람들도 그들의 일을 위하여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양피지와 원시적인 나선형의 바인드로 엮인 초기의 책과 같은 형태였습니다, 그리스어는 그것을 지칭하는 라틴어, membranae 를 빌려 왔습니다. 이것은 디모데후서 4:13에 나오는 “책들” 이라는 단어의 번역과 일치합니다. 바울은 공책을 사용한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사용하신 21개의 아람어를 기록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통 아람어로 가르치셨을 것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앨런 밀라드 교수가 말하기를, “그리스어로 기록된 문서에 이러한 외국어 용어가 있다는 사실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본문이 정확하게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가 거의 쓰이지 않던 갈릴리 지방에서, 예수님은 그리스어로 가르치셨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당시의 랍비들에 관한 유대인의 권위 있는 학자는,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처음부터 원고에 기록되었을 것을 자연스럽게 기대할 수 있다.” 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수행할 그 당시에, “살아 있는 상태로” 기록되었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몇몇 청중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화들을 적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문학과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의 노트필기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과 일맥상통합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이러한 노트기록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 적으세요! (And Get It Down Now!)

복음서와 서신서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2,3 세기 후에야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학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원후 115년경 순교한 이그나시우스는 사도들의 편지와 복음서들을 “신약”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관하여 오직 4복음서만 인정했습니다. 기원후 150년까지, 모든 교회에 의해 인정받은  무라토리의 캐논은 4복음서와 바울의 13 편의 편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1972년, 자유주의 학자인 존 A.T. 로빈슨은 신약의 책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에서, 모든 책들이 기원후 70년 이전에 완성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더우기 그는, 신약의 기록 연대를 더욱 최근으로 가정하는 사람들을 “학문적으로 정말 게으르다”고 비판하며 말하기를, “근대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신약의 기록 연대가 결정됨에 있어서 얼마나 적은 근거가 존재하는지를 발견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이 전통적으로 인정되는 1세기를 살았던 저자들에 의해서 직접 기록되었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진실된 기록들

복음서의 기록들은 정확한 목격에 의한 기록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세 개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한복음 1:45) 라고 말합니다. 2세기와 3세기의 그 누구도 그 말을 지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사렛은 구약에 언급되기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나사렛을 올 메시야와 결코 연관짓지도 않았습니다. 베들레햄이 메시야와의 연관성이 가장 강했기 때문에(미가서 5:2), 가장 자연스러운 소개는 “베들레햄의 예수님” 이었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단지 이단자들만이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의심할 때, 왜 “조셉의 아들” 이라고 적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러한 “2세기의 결례” 에 관한 유일한 설명은, 바로 신약이 빌립에 정말로 말한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은 나사로와 마리아,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요한은,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한복음 12:3)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저자는 향유 냄새에 관한 기록을 남겼을까요? 분명히 이 언급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신학적 진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언급은 본문의 진정성을 잘 보여줍니다. C.S. 루이스가 말하기를, “어떤 상상의 장면을 보다 믿을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작은 상관없는 구체적인 묘사를 하는 기술은 근대의 기술이다.” 그는 덧붙여서, “문학사가로서, 나는 복음서가, 다른 것들은 아닐지라도, 분명히 신화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는 많은 신화들을 읽어 왔지만, 복음서들은 신화들과 같은 종류의 것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라고 했습니다.

만일 후대의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생명의 주인으로 믿게 하기를 원했다면, 예수님이 골고다로 가시는 장면은 그야말로 재앙입니다. 예수님은 비틀거리고 넘어지셨으며, 십자가를 지기에는 너무 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왜 십자가 위에서 절망스럽고 자포자기한 외침을 만들어 내야만 하나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태복음 27:46) 예수님의 마지막 주에 관한 많은 자세한 묘사들 – 예루살렘 입성, 매맞고, 십자가에 달리심, 그리고 부활하셨다는 주장 – 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놀림받기 딱 알맞도록 만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열받았고, 그리스인들은 놀려댔으며, 로마인들은 당나귀 머리를 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린 낙서를 그렸습니다. 그러니 왜 그러한 것들을 지어내야 하나요?

증인은 틀렸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사실을 말한다고 믿어질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의 삶의 질이 그의 가르침의 숭고한 도덕성과 일치한다면, 우리는 그 증인의 기록의 진정성을 부정하기에 앞서, 그럴만한 강력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돌들은 외친다. (The Stones Cry Out)

구약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은 계속해서 신약의 역사적 기록의 정확성을 확인합니다.

어거스투스 칙령을 발표했다.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된 로마의 호구조사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로마 황제가,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등록하라”고 명령한 적은 없다고 가정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원후 104년 트라잔의 때에 이집트에서 로마의 인구조사 명령에 관한 파피루스 칙령이 이집트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은 누가복음 2장 어거스투스의 명령과 거의 동일합니다.  The Perfect Gaius Vibius Maximus 는 그의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구 조사를 위해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빌라도 누구?

믿거나 말거나, 한때는 빌라도가 역사속의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제안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에 대한 기록이 오직 신약에서만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티베리우스를 기리기 위해서 빌라도에 의해 극장이 만들어졌고 헌정되었다는 돌판의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비록 그 돌판의 반 정도는 부서져 있었지만, 나머지는 확실히 남아 있습니다. “The Tiberius which Pontius Pilate, the Perfect of Judea dedicated.”  그 돌판은 3세기에 극장 리모델링을 할 때, 계단을 만들기 위해 재활용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을 때 주조된 청동 동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동전에는 티베리우스 17년이라고 적혀 있고, 주후 30년 혹은 31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바로 그해에도 통용되었을지 모릅니다.

의사 누가와 polytarchs

바울의 전도여행때, 각 도시에는 도시의 의회를 가지고 있었고, 그 이름은 도시마다 달랐습니다. 사려 깊은 작가는 그 도시의회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록할 것입니다. 누가(사도행전의 저자)가 역사가로서 정확했다는 예는 1877년 데살로니카의 무너진 건축물 조각들 중 발견된 화강암 조각이 2세기경 도시의 의회 지도자들에 대한 기록인 것이 밝혀진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지도자들은 polytarchs 라고 불렸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17:6 절에 “도시의 통치자”들로 번역된 바로 그 단어와 동일합니다.

윌리암 경의 결론

고고학에 관하여 더 많이 논할 수 있지만, 한 학자의 말을 인용함으로 결론을 맺겠습니다. 윌리엄 램지 경은 바울의 여행지였던, 근대 터키 지역을 발굴하는 데 일생을 보낸 고고학자였습니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세개의 명예 연구원과 영국, 유럽, 그리고 미국의 대학들에서 9개의 박사 학위를 받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때 옥스포드와 애버딘 대학의 교수였으며, 1906년 왕립 지질학회에서 빅토리안 메달을 수여 받았으며, 영국 아카데미의 설립자였습니다. 그는 그의 고고학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역사가와 고고학자로서 일생동안 공들인 연구를 마친 후, 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누가의 말을 다른 어떤 역사가의 말보다도 심하게 도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그 어떤 정밀한 검토 및 혹독한 대접도 견뎌냈습니다.” 그는 덧붙이기를, “기독교는 거짓말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믿는 동시에, 입증할 수 있으며, 입증해야만합니다.(Christianity did not originate in a lie; and we can and ought to demonstrate this as well as believ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