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은 신뢰할 만한가?

도입

몇년 전 저는 저의 회중들에게 앞으로 몇달간 우리 교회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의야하게 여길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첫번째 저는 3,000년 이상 된 책에 관해 설교할 것을 제안했고, 두번째로, 모든 회중이 매주 그것을 들으러 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모였습니다. 30주 동안 구약의 신명기를 끝냈습니다.

매주 세계에서는 몇백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역사의 시작부터 기록된 성경이라는 책으로부터 나온 몇천 번의 설교를 듣습니다. 그들은 왜 듣습니까? 답은 크리스찬들은 성경을 신뢰할 만 하며,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배울 수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 위해서 어떻게 살지를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믿기 위해서 “맹목적이고, 반 이성적인 믿음”을 가져야만 할까요? 아니면, 성경이(이번 챕터에서는 구약)  모든 부분에서 신뢰할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까요?

 

성경의 기록자들은 어떻게 믿었는가?

구약의 저자들은 그들의 메세지가 하나님이 불어 넣으신, 따라서 완전히 믿을만한 메세지라고 믿었습니다. 출애굽기 4:22 부터 말라기 1:4 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세 단어로 된 히브리어로, “Thus says the Lord.”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적인 권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세지를 강력한 경험을 통하여 얻었습니다. 예를들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사역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예레미야 1:9)

선지자들은 그들 자신을 너무나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여긴 나머지, 자주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이사야서 5:1-2 에, 선지자는 하나님을 제 삼자인 “그” 로 이야기하다가, 3-6 에 갑자기 하나님을 1인칭인 “나” 로써 이야기합니다. 다윗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다(perfect)” 고 이야기한 것이 놀랄일이 아닙니다.

신약의 저자들도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대변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시편 2편의 다윗왕의 말을 이스라엘 왕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사도행전 4:25) 비슷하게, 사도바울도 이사야의 말을 마치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사도행전 28:25)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모든 말들이 모두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은 나머지, 단어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나왔을 때,  “Scripture says”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로마서 9:17)

명백히, 예수님도 구약을 하나님이 영감을 불어 넣으신 것이라고 여기셨습니다. 시편 82:6 을 인용하고 있는 요한복음 10:34을 보면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을 단 한 구절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태복음 22:43-44 에도 예수님은 시편 110:1 을 인용하시면서, 단 하나의 단어, “주(Lord)”를 강조하시며 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써 드러내십니다.

 

모든 신들은 어디에

구약에 다루어진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걸친 적어도 4 개의 주요 제국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들의 영향력은 구약의 기록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 있고, 그 제국들의 종교적 생활은 수많은 신들과 여신들의 거대한 신전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이집트에만 해도 1,500 여 신들이 있었고, 앗시리아와 바벨론 그리고 페르시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은 땅과, 바다, 언덕과 골짜기, 행성과, 계절,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들의 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진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또한 똑같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들은 세기와 제국들이 오고 가며,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같은 신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신론과 극단적으로 다르게,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 가장 초기부터,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을 믿도록 가르쳐 졌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진리를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새겼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명기 6:4) 다른 고대인들 또한 다신론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상한” 유일신 사상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리고 왜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이러한 유일신 사상을 그토록 굳건히 붙잡았을까요?  자주 인용되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종교적인 아이디어를 주변국들로부터 얻었다는 생각은 이스라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요나 선지자의 “하늘과, 바다와 , 땅의 하나님” 은 니느웨의 시민들 뿐만이 아니라, 페니키아 배의 선원들에게도 아주 급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또다른 구약의 독특한 특징은 이스라엘에 관한 기록이 무자비할 정도로 정직하다는 점입니다.  고대세계에서 나쁜 일들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한 왕이 전쟁에서 진다면, 정부의 조작으로 승리로 바꾼다던지, 아니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50년간 이집트와 히타이트 간의 전쟁에서 양쪽 모두 싸움에 이기기도 했지만, 아부 심벨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신전에는 파라오의 엄청난 승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슷하게 람세스 왕은 이집트의 고대 역사를 기록할 때, 고의적으로 아멘호텝 4세의 왕조를 생략했습니다. 이 왕은 신전에 있는 모든 신들 중 Aten이라는 신을 격상시킴으로써, 이단시되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역시 기록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이런 전통을 따랐고, 그것을 지칭하는 용어, damnatio memoria (the damnatino of memory) 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록으로 남겨지면 영속되지만, 무시하면, 그것은 마치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나 마찬가지로 되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되는 구약이 원본성을 살펴봅시다. 이스라엘이 만약 전쟁에 졌다면, 그것은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었던 다윗왕이 끔찍한 간음과 살인의 이중 범죄를 저질렀을때, 역시 기록되었습니다. 심지어 영적인 부흥이 있었던 시기 다스렸던 거룩한 왕 히스기야 역시, 말년에 멍청한 자존심으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국가에 앞으로 재앙을 가져다 준 실패자로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20:12-18)

왜 이스라엘은 대다수 나라들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그들의 역사를 조작하기를 거부했을까요?

그대로 이루어질 것처럼 말한다

성경의 비평가들에게 성경의 예언의 성취는 언제나 큰 부끄러움이었고, 그들이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성경의 예언이 그 사건이 예언된 훨씬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믿는 것 뿐입니다. 이러한 가정의 큰 문제중 하나는 어떻게 그들이 많은 세기 동안, 완벽하고, 끊임 없이 그들의 거짓말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관해 어떤 저자는, “성경의 예언의 수는 너무도 많고, 광범위하게 신구약에 걸쳐 있으며, 모든 종류의 문학장르에 갈쳐 있어서,  해석하는 사람은 성경의 큰 부분을 다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양이 너무도 방대하여, 우리는 여기서 물에 발끝만 담글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거짓선지자들에게 예언을 하도록 도전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이사야 41:21-22)

거짓으로 예언한 선지자들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었습니다. 역으로, 에스겔 선지자는,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다가올 멸망을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에스겔 33:33) 이스라엘 사람에게, 선지자가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에 예언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선지자는 그런 거짓을 인하여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나훔의 예언

짧은 예언서인 나훔은 강한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의 멸망을 또렷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만약 나훔 선지자가 그의 예언을 그 사건 이후에 기록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선지자가 후대에 기록된 예언을 그대로 받아들일정도로 순진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장은 나훔이라는 필명으로, 니느웨의 몰락을 두눈으로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모두 죽은 수년이 지난 후에 기록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은 나훔이 이 난공 불락의 도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몰락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나훔이 기록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게 되었으며, 불탄 궁궐의 부분을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니느웨는B.C. 612 에 완벽하게 파괴되었으며, 파괴된지 불과2 세기가 지난 후, 그리스의 역사가 제노폰은 그 파괴된 폐허 위에 앉아서, 그 도시가 어떠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다시 발견되기까지 2,24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나훔이 니느웨의 멸망을 정확한 예언한 것을 거부하기란 진짜로 나훔 선지자가 예언을 했다는 것을 믿기보다 어렵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예언

구약의 신뢰성에 관한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증거는, 구약에서 계속되는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약속입니다. 가장 자유로운 비평가들조차 미가서 5장, 스가랴서 9장, 시편 22장 , 그리고 이사야 53 장 등 많은 예언들이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몇세기 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개선장군과 같은 예루살렘 입성,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묻히심등의 묘사가  그 연관성을 의심하게에는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예언들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고의로 사건들을 만드셨다거나, 예수님에 관한 기록들이 그 사건이 있은지 2,3 세기 후에 기록되었다는 제안들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판명난지 오래입니다.

 

조용한 돌판의 음성

고고학은 형편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끔 귀한 발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고고학은 어제의 휴지통을 뒤져서, 그들이 무엇을 믿었고, 어떻게 살고, 일하고, 싸우고 죽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고고학은 성경을 부정한다” 라고 하는 주문은, 만약 누군가가 증거 자체를 살펴보기만 한다면, 쉽게 논박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은 큰 주제이므로, 우리는 몇몇 경우에만 촛점을 맞출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제임스 호프마이어가 이야기 했듯이, 고고학은 성경을 증명(prove)하기 위함이 아닌, 성경의 메세지를 명확하게 (improve)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고고학은 성경말씀을 조명할 수 있는 증거를 통해서 더욱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때 오류라고 여겨지고 거부되었던 많은 성경에서 나온 자세한 기록들이, 지금은 성경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David Who?  

한때 비평가들은 다윗왕이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했었는데, 그 이유는 성경 외에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페르시아가 다스리던 기원전 6세기에, 귀환하던 이스라엘 포로들은 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다윗왕과 솔로몬 왕을 고안해 냈다고 여겼습니다.

1993년 7월 북부 이스라엘의 텔 댄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기원전8세기 것이라고 추정된 부서진 현무암에 새겨진 글씨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현무암판에는, 다마스커스의 왕(Ben-Hadad of Syria) 이 이스라엘의 왕(여호아하스) 과 “다윗의 집안”의 왕(Joash of Judah)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은 역대하 13:1-25 에서도 발견됩니다. 이것은 다윗왕조가  기원전 6세기에 “고안되기” 250 년 전에도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윗왕이 역사의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오랜 시간동안, Sargon 이라는 이름을 가진 앗시리아의 왕에 관한 기록은 이사야서 20:1 에 밖에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왕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사야 선지자가 그 이름을 고안해 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1843년, 북부 이라크의 모술 지역의 프랑스 부영사이자 고고학자였던,  폴-에밀 보타는 고대의 Khorsabad라는 큰 도시를 발굴해 냈고, Sharru-kin(Sargon)왕은 이제 고대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앗시리아의 왕입니다.

성급한 사람들이여,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19세기 초반의 성경 비평가들은 벨사살왕이 존재하지 않았었거나, 라비니투스 혹은 나보니두스 왕과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이유는, 벨사살왕에 관한 기록이 오직 성경의 다니엘서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854년, 바스라의 영국 영사였던 J.E. Talor 가 바벨론의 나보니두스왕때 지어진 건물에서 4개의 똑같은 타임캡슐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나보니두스 왕 자신과 “벨사살, 나의 첫째아들, 내 마음의 자손” 을위한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날 벨사살왕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어떤 고고학적 발견들은 외견상 성경의 기록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론이 내려진 고고학적 발견들은 항상 성경을 확증합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 때의 가나안 정복에 관한 증거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고센땅에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를 증명할 증거의 부재에 관한 것도, 케네스 키친 이라는 이집트 학자에 의해서 답변되어져 왔습니다. 그는, 3,500년 전, 자주 침수되된 지역에서 진흙 벽돌집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어떤 기록을 찾을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실재로, 거의 대부분의 삼각주 지역에 관한 이집트 행정문헌들은 소실되었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발굴된 비문의 왕들의 이름과 성경에 기록된 외국 왕들의 이름을 비교해 보면, 흠 잡을 데 없이 정확합니다. 말하자면, 매년  성경 기록의 정확성을 인증하게 되는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있기 때문에, “고고학은 성경을 부인한다.”는 주장은 쉽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고고학의 그 어떤 발견도 성경과 배치되지 않습니다.

 

그림

옥스포드 대학의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성경을 “혼돈스럽게  대충 꿰맞춰진 일관성 없는 문집” 이라며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한 그 누구라도 성경은 대충 꿰맞춰진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믿을만한 기록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특징중의 하나가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 (하나님의 구원사) 를 점진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두번째 부분 (신약)의 촛점이 예수님께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첫번째 부분(구약) 역시 예수님에 관한 것임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구약이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큰 주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도 그에 대해서 말씀하신 많은 구약의 구절들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4:27, 44)

예수님에 대한 첫번째 언급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졌습니다. 타락 이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사탄을 짓밟을  때가 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3:15) 구약 전체는 역사를 그 약속의 성취하는 방향으로 밀어 갑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것을 살펴볼 공간은 없지만, 노아와 홍수에 관한 기록, 아브라함과 족장들의 인생, 요셉과 이스라엘의 이집트에서의 기록, 사울에서 시드기야 까지의 왕정,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예언자들은 그 큰 그림을 절정으로 몰아갑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라디아서 4:4) 아주 짧은 책들인 룻기와 에스더서 또한 이 큰 그림에서 역할이 있습니다.

이러한 구약 39권의 완벽한 조화는 그것의 놀라움 만큼이나 독특하며, 각각의 책에 관하여 뿐 아니라, 그 기록의 연관성에 있어서,  성경이 하나님이 직접 기록하셨음을 증거합니다.

 

현명한 사람들이 말하는

과거와 현재의 많은 능력있는 고고학자들과 구약학자들은 구약의 역사적 사실성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로버트 딕 윌슨은 1920년대 프린스턴 신학교의 히브리 언어학 교수였습니다. 그의 언어에 대한 지식(고대와 현대 언어를 합해 26개의 언어를 배움) 은 그의 성경 자체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뛰어났습니다.  그는  “그 누구도 구약의 진정성을 공격할 만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나는 나의 학생들에게, 그들이 사는 동안 절대로 의심하지 않도록 구약에 관한 이러한 “지적인 믿음” (intelligent faith) 을 주려고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케네스 키친은 영국의 리버풀 대학의 고고학, 동양학과의 명예교수이자, 명예 연구가였던 케네스 키친은, 고대 세계에 관하여, “진정성 있는 연구를 통하여 보면, 고대 근동에서는 사람들이, 오늘날 하는 것처럼, 역사 소설(historical novel)을 쓰지 않았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트리니티 신학교의 구약학, 고대 근동학, 그리고 고고학 교수였던 제임스 호프마이어는, 그의 멘토였던 알프레드 호어쓰를 인용하여, “고고학은 성경을 증명(prove)한다기 보다, 발전시킨다(improve)고 할 수 있으며,(archaeology “improves” rather than “proves” the Bible) 구약의 역사적 정확성을 엄밀하게 변호한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2009년 돌아가실 때까지, 런던 대학의 앗시리아 학과 명예교수였던 도날드 제이 와이즈먼은 “올바로 이해되었을 때, 고고학은 언제나 성경의 정확성을 확증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리버풀 대학의 히브리어학과 명예교수셨던 앨런 밀라드는 우리에게, 고고학은 성경의 중요한 메세지를 증명하거나, 부정할수는 없지만, 성경 기록을 긍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따라서 성경의 탁월한 종교적 메세지가 보다 담대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해 준다라고 상기시켜 줍니다.

고고학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성경이 옳다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역사적 자료의 정확성은, 그 메세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