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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과학 교과서는 지구가 약 45억 년 되었다고 말한다. 과연 45억 년이란 어마어마한 숫자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일까? 이 숫자는 지난 과거 동안 변하지 않았었을까? 또한 세월이 지나 이론이 바뀌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숫자인가? 모든 과학자가 이 숫자에 동의할까? 지구의 나이에 대한 부분은 지질학의 한 분야이다. 어떤 면에서는 지질학의 역사가 곧 지구의 나이에 대한 이론의 역사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질학의 역사적 변천의 이해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대 지질학의 출발
근대 지질학의 시작은 해부학자였던 스테노(Nocholaus Steno, 덴마크, 1638-1686)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 부모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지층을 통해 과거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사람인데, 지층들이 창세기 1-11장의 실제 역사를 확인시켜줄 것으로 믿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지층의 기본적인 원리를 정리했다(1667년).
1. 대부분의 지층은 한 번의 (거대한) 물에 의해 운반된 퇴적물이다.
2. 해양 퇴적과 담수(민물) 퇴적은 구분된다.
3. 지층이 쌓인 순서가 그 지층의 상대적 순서를 말한다(즉 아래 지층이 오래되었고, 위의 지층은 최근의 것이다)
4. 퇴적지층은 퇴적될 당시에는 수평이었다.
5. 수평이 아닌 지층은 퇴적된 이후에 변형된 것이다.

위의 원리는 근대 지질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아직도 지질학 교실에서 비슷한 원리로 가르쳐지고 있다. 스테노는 지구가 6,000년 되었다고 믿고 있었으며 화석과 퇴적지층은 성경의 홍수 심판 때 형성되었다고 언급했다(1669년).

스테노에 이어 신학자였던 버넷(Thomas Burnet, 영국, 1635-1715)은 영향력 있는 책인 “지구의 두려운 이론(Scared Theory of the Earth, 1681)”을 출판했다. 여기서 그는 지질학보다는 성경, 특히 전지구적인 홍수심판에 대하여 논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구가 수 천년 되었다고 믿었지만 창세기 1장을 한 해 또는 더 긴 기간으로 여겼다. 이어서 내과의사인 우드워드(John Woodward, 영국, 1665-1722)도 자신의 책(1695)에서 지층과 화석 형성을 설명하는데 홍수 심판 사건을 내세웠다. 그는 지층과 화석의 순서를 퇴적물과 화석의 비중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아이작 뉴턴의 계승자며 수학자인 휘스턴(William Whiston, 영국, 1667-1752)도 동의 했으나, 그는 창세기 1장이 한 해 동안 발생했다고 여겼다. 캣컷(Alexander Catcott, 영국, 1725-1779)도 전지구적인 창세기 홍수를 옹호하기 위해 지질학적 주장을 폈다.
이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람이 광산 광물학 교수였던 리만(Johann Lehmann, 독일, 1719-1767)이다. 그는 독일의 산들을 주의 깊게 연구한 결과 암석이 세 그룹으로 분류됨을 발견했다.

1. 가장 아래에서 화석을 함유하지 않고 심하게 경사진 지층
2. 그 위에 수평으로 놓여진 화석을 갖고 있는 지층
3. 그리고 이들 위에 놓인 덜 단단해진 암석

리만의 분류는 오늘날 창조과학자의 지층분류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 창세기 1장의 창조 때의 땅(화석이 존재하지 않음)
2. 홍수 심판 때에 형성된 지층(화석이 존재한다)
3. 홍수 이후에 형성된 지층(홍수 이후 빙하시대와 지역적 홍수에 의한 지층)

이 분류는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전개해나갈 오랜 지구 이론이 펼쳐질 지질계통표(geologic column, 또는 지질시대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질계통표란 소위 오래된 하부 시대부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식으로 부르며 간단한 해양 무척추동물부터 고등동물과 사람까지 진화의 순서로 모아놓은 표다. 리만이 지층을 분류할 때는 진화론적인 사고를 갖지 않았었고 오랜 지구역사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실제로 당시 리만의 분류 자체는 제대로 관찰된 올바른 해석이었다. 그러나 이후 250년 간 많은 지질학자들이 이 기본 틀 속에 여러 긴 시대를 첨가하고, 조정하고, 수정함으로써 지구를 막연히 오래된 존재로 바꾸어버린다.

이와 같이 1750년대까지는 지질학에 흥미를 가졌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층과 화석이 격변에 의해 형성됨을 주장했으며, 특히 이 격변을 성경에 기록된 홍수 심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질학이 학문적으로 자리잡았다고 하기엔 어수룩한 단계였다. 앞에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믿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1700년경부터 불기 시작한 “보이는 것으로만”
또는 “자신이 보았던 것만” 가지고 설명하려는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았기에, 부분적으로 자신의 해석을 성경 위에 두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