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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창 1:4, 5)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고 이때 가시광선에 의해 형성되는 두 상대적인 현상을 언급하고 계신다. 바로 낮과 밤이다. 빛의 영역 가운데 가시광선이 존재하는 한, 빛이 비추는 면과 그림자가 지는 어두운 면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이 상대적인 현상이 동시에 언급된다는 점은 당연한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현상의 결과를 각각 낮과 밤이라고 칭하셨다.

빛이 없어도 보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빛의 창조 후 낮과 밤을 나누는 장면은, 이 가시광선 영역 하에서만 볼 수 있는, 나중에 창조될 사람을 염두에 두셨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인간이 살게 될 환경을 염두에 두시는 모습은 단지 여기뿐 아니라 창세기 1장 전체 창조과정 가운데 흐른다. 역으로 말하자면 인간 창조 이전의 모든 창조과정은 여섯 째 날 창조될 자신의 형상 인간이 살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정하시는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시간-공간-물질의 창조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는 창조주시며 그 안에 있는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후의 등장하는 각각의 창조과정은 하나님께서는 이 시공간 속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인간이 살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제한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창세기 1장에 언급된 지구의 물과 빛, 대기, 바다, 식물, 해, 달, 별, 물고기, 새, 육지동물 등은 하나 하나가 서로간의 조화를 이루며 우리에게 살 수 있는 멋진 환경을 제공하지만, 반면에 이런 완벽한 조건을 벗어나선 인간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다.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 심어놓으신 완벽한 조건을 보면서 살고 있지만, 이 조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 피조물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완벽한 피조물을 초월하신 창조주 때문에 산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갖도록 창조하시고, 가시광선의 파장 영역을 만드시고, 그 후에 인간이 그 파장의 범위 안에서만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 때문에 산다.

만약에 창조자를 빼고 이 완전한 피조물만을 바라본다면 그 피조물 자체가 신의 자리에 앉게 되며, 참으로 믿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가 자연적으로 되었다고 말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시간의 초월자인 창조자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은 필수적이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이 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명백한 “설계자”와 “시간”의 대립이 있다. 시간을 초월한 창조자가 있느냐 아니면 시간에 따라 흘러온 자연이 있느냐이다. 성경은 그 시간도 피조물이며, 이 모든 것이 시간을 초월하신 전능한 분의 창조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분은 창조과정 가운데 자신이 시간을 초월한 분이며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이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말하는 진화론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과정이다. 빛, 태양, 공기, 중력, 식물, 동물… 이들 하나하나가 완벽할 뿐 아니라 서로간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수많은 피조물이 어떤 기능이 있는지, 서로 간에 어떤 조화를 이룰 것인지, 얼마나 보기에 좋은지를 종합적으로 염두에 두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실행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춘 분이다. 이런 일들을 행하신 그분의 창조 과정을 드러낸 책이 바로 창세기 1장이다.

가끔씩 첫째 날 언급되는 빛을 예수님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창조(?)하시는 모습이라고…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을 피조물 이라고 언급된 곳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 창조자시라고 말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그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이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자신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실 때도 아주 분명하다.
“아버지여 창세 전(before the world began)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나를 사랑하시므로”(요17:24)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1장 1절 이전에 계셨던 분이다.

이런 생각은 요한복음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며, 타락 이후에 어둠을 악용하는 사탄의 상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존재로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볼지라도 우리가 첫째 날 창조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인생 가운데 낮과 밤을 벗어날 수 없다. 낮 아니면 밤이다. 이 낮과 밤 모두는 우리를 염두에 두시고 먼저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아마도 이 둘 사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출애굽 하는 과정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출 13:21). 이 장면을 보며 낮과 밤을 초월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그려지지 않는가?
그 낮과 밤을 그 창조자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 감격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삶 속에서 아래와 같은 시편 기자들의 고백을 드릴
수 있다.“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시7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