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3“오래된 지구의 기념비”의 첫장은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멋지게 표 현하지만, 그것의 형성과 관련된 지질학적 사건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점이 생기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느리고 점진적이며 반복적인 지질학적 과정을 믿기에 그랜드 캐니언의 형성 과정 중 특별한 사건이 일어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랜드 캐니언의 모든 형성 과정이 평 범하고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랜드 캐니언에는 그저 평범하거나 지루한 것이 아닌 다른 역사가 담겨 있다.

먼저 다음을 생각해보자. 해수면 위로 약 2,000 미터 이상 되는 높은 곳에 화석이 된 해양 생물이 발견되는 것이 “평범한” 것인가? 오늘날에 대륙을 덮고 있는 바다가 존재하는가? 화석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생물의 형태가 그렇게 세부적으로 보존되기 위해선 극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생물이 이러한 조건에서 매몰되었다는 것이 과연 평범한 일인가? 1  그랜드 캐니언에서 보이는 지층이 그 넓은 지역에 수평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정말 놀라운 일이다!  2  그렇다면 그랜드 캐니언은 사실 전 지구적 규모의 어떤 사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엄청나게 많은 양의 화석을 포함하는 그랜드 캐니언의 퇴적 지층 아래에는 확실히 침식된 흔적을 보여 주는 표면이 존재한다. 현대에는 이러한 지질 구 조를 형성할 수 있는 어떠한 과정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들은 홍수 지질학을 뒷받침하는 놀라운 사실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 책의 목적은 사실 두 번째 장에 나와있다. 홍수 지질학을 무너뜨리기 위한 두 가지 주장인 데, “그랜드 캐니언과 그 암석이 노아 홍수와 관련되었으며, 오래되지 않은 사건이라 생각하는 것은 바로 성경의 문자적 해석 때문”이라는것과, “이러한 믿음이 노아 홍수를 전 지구적인 홍수 사건인 것처럼 이해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홍수 지질학에 대한 견해는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다. 대부분의 창조 과학자들은 그랜드 캐니언이 홍수 이 후에 형성된 호수에 갇혀있던 물이 터지 며 형성된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진화론적 지질학 또한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믿음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캐롤 힐 (Carol Hill)과 스테판 모셔 (Stephen Moshier)는 실제 홍수 지질학이 아닌 “그들이 상상해서 만든” 것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시 그랜드 캐니언의 역사에 관해 잘못 지적된 내용이 등장한다. 홍수 지질학을 20세기에 나타난 시대적 현상 따위로 치부하기 위해 지질학의 과학적 탄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니콜라스 스테노 (Nicolas Steno, 1638-1686)의 증언을 축소시켰다. 스테노는 젊은 지구를 명확하게 주장한 홍수 지질학자로서, 그는 홍수와 관련하여 성공적으로 지질 구조를 해석했다. 그는 계속적으로 “전 지구적인 홍수”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모셔 (Moshier)나 힐 (Hill)이 사용 했던 “성경에 나오는 격변들”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의 저자들이 주장한 것과는 다르게, 스테노의 지질학적 업적은 덴마크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반(反)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자이자, 개혁적인 과학자였던 다빈치 (Da Vinci)처럼 르네상스 철학자도 아니었다. 3  스테노의 중요한 논문인 프로드라무스 (Prodramus (1669))의 내용은 사실 현대 창조과 학자인 스티븐 오스틴의 “격변의 기념비 (1994)”와 매우 유사하다. 두 책에서는 모두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이 지질학적 기록과 잘 일치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스테노의 업적을 보면 과학 역사에 있어 홍수 지질학의 공헌을 가볍게 취급하기 어렵다.

창세기 홍수가 단지 “지역적”인 부분에만 영향을 미쳤다는 그들의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다. 일년간 일어난 지역적 홍수는 근대 세계에서는 들어보 지도 못한 이야기이며 사실상 불가능한 주장이다. 4 이러한 놀라운 사건이 일어 났다면 반드시 지질학적인 증거를 남겨놓아야 하는데도 저자들은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방주가 여러 달 동안 지역적 홍수에도 정박하지 않고 떠 다녔 어야 할 텐데 이러한 일은 성경에 기록된 방주의 크기를 고려하면 상상하기 어 려운 것이다. 지역적인 홍수가 사실이라면, 왜 방주가 물이 많은 하류 지역이 아닌 물이 흘러내리는 산 꼭대기에 정박하게 된 걸까? 배가 하류 방향인 바다 쪽으로 쓸려 내려 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단지 지역적 홍수를 피하기 위해 그런 거대한 규모의 방주를 만든다는 것은 아마도 “어리석음의 기념비”될 것이다. 왜냐 하면, 지역적 홍수를 피하기 위해 동물, 그리고 특히 새는 방주 없이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수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성경은 전 지구적 규모로 묘사하고, 홍수가 갑작스럽고 전지구적인 심판이라는 사실도 반복적으로 서 술한다. 5 지역적 홍수 이론은 단지 오랜 지구의 가정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오랜 지구론은 단지 홍수 지질학 뿐 아니라 2000년 교회 역사의 기독교 학자들의 공통된 생각도 부정한다. 6 오랜 지구론은 찰스 라이엘 (Charles Lyell)이 정 착시킨 점진론과, 완전히 해석적이고 검증이 불가능한 동위원소 측정 이론의 권 위를 바탕으로 한다. 이 이론들의 과학적 정확성은 매우 의심스럽고, 이러한 부 정확한 권위 위에서 마치 권위에 복종하는 종처럼 지역적 홍수 가설을 탄생시켰 다. 다음 성경 구절을 생각해보자.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 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창 6:17, 7:19)

작은 언덕 뿐 아니라 높은 산까지 물에 잠겼다. 높은 산 뿐 아니라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물에 잠겼다고 성경은 묘사한다. 몇몇의 동물만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가 멸절된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지역적 홍수를 묘사한 것이라면, “모두”나 “하늘아래 모든 것”이 “물에 잠겼다”는 말에 분명 지역적 홍수를 설명하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오랜 지구론만 이러한 구절에 대해 무리한 해석을 해야만한다. 지역적 홍수설이 나온 이래 180년이란 시간 동안 몇몇 사람들은 지역적 홍수가 가장 분명하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의도를 잘 반영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도 베드로가 정확히 예언한 마지막 날에 생길 믿는 자들을 향한 조소와 같은 것에 불과하다.

두 번째 장의 저자인 힐과 모셔는 원래 에덴 동산의 위치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모이는 곳 부근이었을 것이라 주장하며 이를 근거로 전 지구적인 홍수 해석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이 강들의 현대와 고대의 배수량이 유사해야 하는데, 이는 아무리 “지역적 홍수”라 해도 일 년 동안 일어 난 규모의 홍수로는 설명하기 매우 힘든 주장이다. 게다가 성경은 에덴 동산에 서 네 줄기의 강이 갈라지는 것을 묘사하지만, 이들은 두 강이 모이는 곳이라 주 장하며 치명적인 오류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창세기에 의도하신 것은 “과학적인 내용을 전 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시간과 공간적 역사를 전달하려는 하나님의 권위를 해치고 그들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추측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 (히브리 서 4:12)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의도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놀랍지 않은가!

참조
1. 한 예로, 레드월 석회암 (Redwal Limestone)의 해백합 화석 (crinoid fossils)은 (E.D. McKee & R.G. Gutschick, History of the Redwall Limestone in Northern Arizona, Geological Society of America Memoir 114, 1969, p. 49) 매우 급격한 매몰되었던 형태를 보여준다. (“Echinoderm taphonomy, taphofacies, and lagerstatten,” C.E. Brett, et al., 1997, Paleontological Society Papers, 3:147-190) 2. Derek V. Ager, The Nature of the Stratigraphical Record, John Wiley, New York, 1973. 3. 스테노가 카톨릭교도가 된 시점은 그의 과학적 연구 경력의 끝과 거의 일치한다 (Martin J. S. Rudwick, The Meaning of Fossils: Episodes in the History of Palaeontolog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6, 49-100). 4. Danny Faulkner, “Physical difficulties with Hugh Ross’ local flood model,” Answers Research Journal 8:195,2015 5. Richard M. Davidson, “Biblical evidence for the universality of the Genesis Flood,” Origins 22(2):58-73 (1995). 6. 테르툴리아누스 (Tertullian, ~ 160-220)는 “전 지구적인 홍수가 … 지역적 홍수였다고 주장했던 당대의 이 교적 사상을 반박”하기 위해 높은 산에 있는 해양 화석을 사용했다. (Rudwick, op. cit., 36-37) 7. John Pye Smith in 1839 was first to propose a “local flood,” only nine years after Lyell’s Principles of G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