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그랜드 캐니언 :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 (Grand Canyon: Monument to an Ancient Earth)>1 는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홍수지질학적 해석에 반하여 비평하는 책이다.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 그리고 형식까지 22년 전에 출판되었던 <그랜드 캐니언: 대격변의 기념비(Grand Canyon: Monument to Catastrophe)> 와 매우 유사하게 만들어 격변론에 대해 반박하는 책임을 예상케 한다. 격변적 해석에 대해 몇 가지 설득력 있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얕은 수준의 경멸적 비판과 사실과 다른 잘못된 주장, 그리고 논리적 오류를 포함하는 비판들이다. 지질학과 “신앙과 과학”에 대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책의 저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우들을 제시하지 않는다. “느리고 점진적인” 지질학적 과정이 격변론보다 훨씬 더 그랜드 캐니언의 지질학을 잘 설명한다는 이유를 증명하기보다는 그들이 주장할 것을 이미 전제한다. 격변론을 뒷받침하는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한 홍수지질학은 문제없이 본래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책은 Solid Rock Lectures에서 여러과학자와 기관의 도움을 받아 출판한 것으로, 그들 중 대부분이 유신론적 진화론과 관련된다. 독자들은 이 사실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오랜 지구 신조와 다윈주의 (Darwinism)는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하다. 저자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선 전혀 내비치지는 않지만, 그들의 상호 연관성은 오랜 지구 주장에 진화론이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공동 편집자인 웨인 래니 (Wayne Ranney)는 간단한 역사와 철학적 도입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랜드 캐니언의 지질학이 발달하던 1857년에서 1900년 사이, 지질학자들은 대부분 오랜 지구의 관점에서 그들의 연구를 보고했지만, 이것은 그랜드 캐니언이 실제 그렇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오랜 지구를 믿고 있었다. 찰스 라이엘 (Charles Lyell)의 점진론은 (<지질학의 원리>, 1830)  지질학자들이 그랜드 캐니언에 발을 딛기도 전에 이미 대부분의 학계에 정착된 상태였다. 점진론이 과거 지질학적 변화에 대해 “받아들여진 사실”로 가정되었을 때, 오랜 지구론은 점진론이란 말이 끄는 수레처럼 뒤를 따랐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이 발전하기 전인 1830년부터 1900년까지 사실 오랜 지구에 대한 증거라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라이엘의 기교 있는 수사학과 기원에 대한 계몽주의적 사상이 맞물려 경험주의적 과학이 결코 할 수 없는 “가정”을 함으로 점진론이 정착되었다. 성경적 지질학자나 격변론자 같은 학문계 내의 반대자들은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 지구 역사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해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결코 오랜 지구를 말하지 않는다. 오랜 지구에 대한 믿음이 오랜 지구를 낳았을 뿐이다.

래니 (Ranney)는 콜로라도강이 점진적으로 그랜드 캐니언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첫 번째 지질학적 보고 (1861)인 존 뉴베리 (John S. Newberry)의 논문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가 인용한 뉴베리의 논문은 그랜드 캐니언이나 콜로라도강을 특별히 지칭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지역의 넓은 탁상지형 (table-land)의 모양을 형성한 원인이 물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실제 논문의 맥락과 어긋나는 인용을 한 뒤 다음과 같은 권위에 호소하는 여러 주장을 이어간다. “지질학자의 대다수가 이런 식 (오랜 지구 연대)으로 믿기 때문에 당신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 고 말하며 여기에 덧붙여 갈릴레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갈릴레오를 고발했던 종교인들 대부분은 사실 당시 대세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에 대해 이미 치우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천동설뿐 아니라 점진론과 오랜 지구의 개념 또한 포함하고 있다. 래니가 갈릴레오의 이야기로 과학을 종교에서 떼어내려고 시도했지만, 오히려 갈릴레오를 고발했던 그 종교인들의 편을 래니 자신 스스로가 들고 만 것이다!

과학과 종교라는 테마는 오랜 지구론을 다룰 때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오용되고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창조과학자들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텔레비전이나 전자 오븐, 또는 휴대폰 같은 현대의 기술이 화학, 양자 물리학, 또는 전자기학과 같은 경험적 과학 발전의 열매라는 것을 당연히 동의한다. 이런 종류의 과학은 (1) 관찰이 가능하고, (2) 조건을 수정할 수 있으며, (3) 실험 결과가 반복적인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에 대한 과학은 이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지구 역사에 대한 과학은 일종의 법의학과 같은 것이지, 경험적인 과학이 아니다. 마치 범죄 현장의 형사처럼, 지질학자들의 임무는 단지 현재 존재하는 증거들을 가지고 과거를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지질학자에게 타임머신이 있거나 목격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실험 결과의 반복 같은 경험적 과학의 요건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는 절대 “측정”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두 가지 다른 과학을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는 오랜 지구론에 대한 신뢰성을 경험적 과학에 대한 신뢰성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기만에 불과하다. 경험적 과학과 달리, 오랜 지구에 대한 믿음은 사회에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자동차에 힘을 공급하는 석유”는 래니가 그의 글에서 암시하는 것과는 다르게 오랜 지구론의 가정 때문에 발견된 것이 아니다. 석유 탐사는 매우 실제적인것으로 원유 기원암을 찾고 석유가 모여 있는 위치를 찾는 일이다. 때문에 단지 오랜 지구를 믿는 지구 물리학자가 석유를 성공적으로 발견 했다고 해서 이것이 오랜 지구가 증명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래니는 홍수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석유를 만들 만큼 많은 양의 유기물을 매몰시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계산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 래니는 (창조과학자들도 모르는) 홍수 이전의 생물의 양이 얼마였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알고 있든 오랜 지구론 그 자체는 오늘날의 석유 분포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 다른 래니의 놀라운 주장을 살펴보자. “…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를 발견하는 일은 종교적인 믿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어떤 종교가 세상의 기원에 대해 사실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6일 창조를 믿고 예배 속에 고백했던 18~19세기 프로테스탄트들은 그 오랜 지구에 대한 믿음을 위협으로 인지했다. 오랜 지구론을 믿지 않고 성경을 믿었던 지질학자들도 학계에서 추방을 당하는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라이엘과 그의 제자인 다윈도 그들의 이론이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을 위협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았다. 심지어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들의 진의를 감추며 오랜 지구와 진화론으로 기독교를 위협했다.8 오랜 지구론은 언제나 기독교를 위협했다.

또 잘못된 주장이 뒤를 잇는다. 래니는 오랜 지구론 교육을 반대했던 “종교적 반대자”들이 1925년 스코프스 재판 (Scopes Trial)과 함께 생겨났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이는 과거 1820-1860년에 오랜 지구론을 강력히 비판했던 성경적 지질학자들을 완전히 간과한 것이다.9 스코프스 재판은 사실 오랜 지구론에 대한 반대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끝에 더 가깝다. 오랜 지구와 진화론의 신조가 약 20년동안 미국의 사회를 압박했다. 이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이고 성경을 조작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세속화되었다. 무엇보다 진화론과 오랜 지구 연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무식하거나 종교적인10 자들에 불과하다고 주류 과학에서 분리됐고, 새로운 신조인 진화론과 오랜 지구론은 명확한 증거들에 대한 필요성도 없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만약 그랜드 캐니언의 지질학에 대해 동일과정설적 해석이 격변적 해석보다 훨씬 더 잘 설명한다면, 아마 이 책의 저자들은 그것을 증명하는 것에 있어서 최고의 팀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 방향이 홍수 지질학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의 도입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연재부터는 이 책의 매 단원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단 한 가지 질문을 가지고 다룰 계획이다. 과연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