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무생물에서 단순한 생물로, 또한 그 단순한 생물이 자연선택와 돌연변이 과정을 거쳐 복잡해져서 결국 가장 고등한 지금의 사람에까지 변화되었다는 기원에 관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진화론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적 관찰과 시도들을 통해 보면 모든 면에서 상반된 증거만 보여준다.

무생물에서 생물로?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무생물을 생물로 변화시키려 해 온 과학적 시도는 늘 실패해왔다. 무생물에게 어떤 변화를 주어도 단 하나의 생명(life)를 얻어내지 못했다. 생물 교과서에 들어있는 가장 유명한 밀러의 실험도 그 실상을 보면 생명을 얻어낸 것이 아닌 무기물을 유기물로 전환시킨 결과일 뿐이다. 실제로 모든 에너지와 물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무질서해지는 열역학 2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무생물이 더욱 질서를 갖추어야 하는 생물로의 전환은 이 과학의 기본 법칙에 위배 되는 사고의 발상이다.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
생물학적 실험을 볼 때, 한 종류(kind)에서 다른 종류의 생물로 진화, 즉 소위 말하는 대진화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모든 생물학적 시도들은 한 종류 안에서 변화하는 ‘변이’일 뿐이다. 유전자의 복제 가운데 발생하는 돌연변이나, 한 종류에서 지역적, 환경적, 인위적 격리에 의해 발생하는 종분화를 포함해서 모든 생물학적 과정과 시도들은 종류를 뛰어넘지 못한다. 실제로 생물학의 기본 법칙인 유전법칙은 이를 대변해준다. 이 법칙은 생물의 다양함이 한 종류 안에서의 유전적 재조합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대진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진화론적 사고는 생물학의 기본 법칙을 무시해야 하는 사고의 발상이다.

전이 화석의 존재?
살아있는 생물뿐 아니라 과거에 살았었던 화석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가운데 각 종류로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어야 할 전이형태로 확정된 것은 없다. 전이 화석으로 몇 개가 발표된 적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많은 반박에 부딪혔으며 전이 생물로써 만족스럽지 않은 화석으로 결론 났다. 더군다나 그전이형태의 조건은 완벽한 모습이 아닌 완벽으로 변하고 있는 불완전한 모습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파충류에서 새로 진화되었다
면 파충류의 앞발이 날개로, 피부가 깃털로 변화되는 어중간한 단계의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애매한 모습은 기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하여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다. 자연은 이런 애매한 모습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기대하는 자연선택은 완벽한 기능을 하는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하지, 기능을 못하는 불완전한 모습의 생물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진화론은 살아있는 것이나 화석에서 전이 형태의 생물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는데 믿도록 강요하는 독특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 정보의 획득?
유전적 메커니즘은 어떠할까? 사람을 포함해서 생물들의 다양한 모습은 모두 부모에게서 얻은 유전적 재조합의 결과들이다. 유전적 재조합은 유전법칙 안에서 종류를 뛰어넘는 어떤 도약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과거나 지금 진화가 일어났었다면 진화 과정 가운데 새로운 유전정보가 새롭게 획득된(gain) 경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선 예와 같이 파충류에서 새로 진화했다면 파충류에서 새의 깃털을 발생하게 하는 새로운 유전정보가 추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연 과정이나 돌연변이 연구는 어떤 새로운 유전정보가 획득된 예를 보여주지 않는다. 많은 자연과정이나 돌연변이는 오히려 유전정보의 새로운 획득이 아닌 감소(loss)를 보여준다.

위의 기본적인 예들은 진화론이 기원에 관하여 얼마나 허술한 이론인지를 보여준다. 반면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기능을 하도록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아울러 성경은 이 ‘종류’라는 용어를 ‘씨를 보전하는’(창 7:3)이라는 유전적 한계로써 사용하였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물학적 지질학적 관찰과 실험의 결과들은 이 성경 기록과 잘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