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은 성경적인가 (21) Is The Big Bang Biblical?
모든동물이초식을 하도록 창조되었다면,
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동물이있나요?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나 2:12)

성경은 태초의 “매우 좋은” 지구에서(창 1:31), 모든 동물들이 초식을 했다고 특별히 언급합니다 (창 1:30). 아담이 범죄하고 죽음의 저주가 모든 창조물에게 선언되었을 때 (창3:14-19), 창조물들은 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동물들은 온전히 육식을 하도록 디자인된 것처럼 보일까요? 어떤 것들은 치명적인 독을 만들고, 또 어떤 것들은 정교한 방어 메커니즘으로서 갑옷과 같은 것들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동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도록 창조되었다면, 그러한 것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말씀으로 시작하여 논리적인 유추를 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은 성경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이들 중 일부 또는 다른 가능성과의 조합이 진리를 가장 잘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첫번째는 전지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이 곧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타락 이후의 필요에 맞는 특징들을 가진 동물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혹은 이러한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특징들이 태초에는 다른 온순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두번째는 태초의 유전자에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다양성들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동물들은 초식을 하도록 디자인되었지만, 저주 이후에 혹독한 세상에서 새로운 습성에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세대의 변이, 적응, 선택을 통하여 동물 집단의 종분화가 대단히 많이 일어났고, 극단적 변이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혹은 좀 더 사악한 무언가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체적인 상황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천사장이었던 루시퍼는 하나님께 반역했지만 패배하여 천국에서 쫓겨났습니다. 그의 교만한 자존심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화가난 그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를 파괴하려고 작정했고, 저주 이후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여 온전한 “여자의 씨”가 오지 못하게 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런 매우 지적인 존재가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분의 권위를 빼앗으려는 시도로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교배 실험이나 유전자 조작을시도했을 가능성도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창 6:2-4)

아마도 여러 동물들의 혼합된 모습을 한 괴수나 반인/반수에 관한 고대의 신화들이 어느정도 사실에 기반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추측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3장의 저주에 관한 기사는 많은 변화를 말씀하시고, 각각의 변화는 유전적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식물은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입니다(창 3:18). 다른 동물들과 함께 저주를 받은 뱀은 “배로” 기어다니게 될 것입니다(창 3:14). 하와의 체형은 변하게 되어 산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창 3:16). 이 각각의 변화들은 DNA의 변화를 필요로 하며, 이제 모든 창조물은 죄의 존재와 그에 따른 죽음이라는 형벌로 인하여 “매우 좋은” 상태가 아닌,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22)

저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속에서 그분의 창조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창조물은 죽게 되고, 일부 동물들은 매우 사나워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죄의 끔찍한 결과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동물이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것을 볼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해 어떤 일을 초래했는지를 보며 엄청난 후회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도 같은 것을 경험하며 죄에 대한 창조주의 은혜로운 예비하심을 떠올리게 하고, “더이상 죽음이 없는” 때를 고대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