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경 구절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마태복음 7장 1절 “판단하지 말라”일 것입니다. 전체 문맥과 관련 없이 발췌되어서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남용되는 구절일 것입니다.

위의 성경구절은 오늘날 만연한 문화적 범죄에 대한 크리스천의 성경적 지적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낙태, 혼외정사, 동성애, 성전환 등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보세요. 그러면 “판단하지 말라”라는 호된 공격과 함께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판단하는 것을 중단하고 세속적 판단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세속적 논쟁의 문제점들은 아주 많습니다. 만약 세속주의적 세계관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크리스천들을 판단하는 것도 중단하십시오! 그리고 어째서 판단하는 것이 틀립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과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어떤 이성적 판단과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선호도일 뿐일 텐데, 당신은 다른 사람의 선호도를 왜 판단합니까? 세속주의자들은 그들이 정죄할 그 어떤 논리도 없이 어떤 행동을 위선적으로 판단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거부하는 성경의 권위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항상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피할수 없는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중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판단에 관한 진짜 문제는 ‘어떤 권위와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느냐’입니다. 선택은 둘 중에 하나뿐입니다- 그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세속주의자들은 그 어떤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싫어한다고 하는 그 판단을 위선적이고 임의적이고 모욕적으로 자신들만의 그 편리로 크리스천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판단을 하되 올바르게 하라는 계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당신이 마태복음 7장 전체를 읽을 때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비평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1절을 인용하는 반면, 그 장의 나머지 부분들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와 혼인할지(6절), 좁은 문과 넓은 문 (13-14절), 진짜 선지자와 가짜 선지자 (15- 20절), 진짜 제자와 가짜 제자 (21-23절), 그리고 “현명한 목수와 어리석은 목수” (24-29절)에 대한 판단을 내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5절에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는 우리에게 표면적이고, 위선적이며, 비판적이고 독선적인 “바리새인적” 판단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요 7:24). 당신은 동일한 기준에 의하여 남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기준입니까? 그것은 마태복음 7장 24~27절에 묘사된 움직이지 않는 반석과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나를 판단하실 수 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이며, 그래서 그분의 판단 앞에서 그래서 두려워 떨게 됩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시고,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고, 영원하시므로 모두에게 최고의 재판장이십니다.

–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 7:11)

–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시 9:8)

–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사 33:22)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22)

–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행 17:31)

우주의 심판자는 구원에 관한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랑으로 죄악을 밝혀내는 이유인 것입니다. 또한 최후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그리스도께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올바르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딤후 2: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