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여지없이 오늘날 성행위에 대한 문화적 “기준”은 과거의 보편적 시각에서 아주 많이 벗어났습니다. 사람의 죄악으로 인해 역사가 지남에 따라 성 혁명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의 차이점은 성경에 나오는 일반적인 성에 대한 관점에 대항하는 문화적 씨앗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점차 꽃을 피우고 빠르게 퍼져나가 오늘날 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는 점입이다.

도대체 어떤 둑이 무너졌길래 성의 기준에 이런 새롭고 격한 물결이 흐르게 된 걸까요? 바로, 성경의 권위입니다. 현재의 성 혁명은 성경을 철저하게 버린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점차적인 공격, 특별히 성경(진짜) 역사에 관한 공격은 수세대에 걸쳐 성경의 권위를 깎아 내려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크리스천들이 역사에 관한 성경의 권위를 저버리자 성경과 실제 세상이 분리된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성경이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옳지만 실제 세상과도 정말 관련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는 ‘그렇지 않다’고 여깁니다. 처음에 이러한 분리는 단지 기원에 관한 문제에만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다음 세대들은 성경과 도덕도 분리시켰습니다. 만약 성경이 기원과 같은 근본적인 것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현대의 도덕과 성과 같은 “복잡한 적용”에 대해서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안팎의 수 세대에 걸쳐 역사, 도덕, 성에 관한 성경의 권위적 가르침을 진심으로 믿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일상의 생활에 큰 의미를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하셨다면, 오늘날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원과 결혼, 낙태와 성과 같은 주제들에 대하여 더 이상 성경적 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는지를 쉽게 알게 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당신이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포기한다면, 당신에게 남은 것은 결국 사람의 이론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결정한다면, 어떤 사람이 정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엔 바로 모든 사람입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면, 각자의 사람들은 성을 포함한 모든 이슈에 대하여 자신이 진리를 결정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글쎄요.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가 없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 기호에 의해 인도받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은 대화나 책, 미디어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보고 들은 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듣고 결정을 내릴 각자 자신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제 자기 자신의 신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계몽된 주문은 “당신의 마음을 따르고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을 하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떻게 “자유로운 성행위”가 “보편적”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입니다. 각각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따르고 그들이 괜찮다고 보는 모든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도록 격려 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의 재앙적 오류는 성경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어떤 길은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잠 14:12).

이러한 파괴는 세속적인 성에 대한 세계관을 받아들인 후의 혼전성관계, 포르노, 낙태, 이혼, 성착취, 그리고 성매매의 급격한 증가에서 가장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저버릴 때, 성에 관하여 사람 자신이 주권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바로 오늘날 보고 있는 대적의 거짓말에 넘어간 후 생겨난 성에 관한 혼란과 파괴된 많은 삶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