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사회정의(social justice)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세속적 개념으로 볼 때, 오늘날 사회정의는 사회 속의 각 개인에게 부, 기회, 특권을 어떻게 하면 평등하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고민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의 운동입니다. 사회의 평등을 추구하려는 시도로써 억압받는 사람들을 찾아내고자 하며, 더 나아가 권한을 이양하고 재분배함으로써 사회적 부당함을 바로잡아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입니다.

최근 혁신적으로 등장한 사상이 있는데 바로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입니다. 이는 억압받는 사람들을(또는억압하는 자들) 찾아낼 뿐 아니라 억압의 정도에 따라 배상과 특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도록 도와주자는 의도입니다. 그것은 인종, 성별, 성적 정체성, 민족, 계층, 종교 등 다양한 요소가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런 복잡한 상호 관계 속에는 반드시 계층이 존재하며 여기에 억압받는 계층(또는 억압하는 계층)이 있다는사고에서 시작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억압을 더 많이 받는 계층에속한다면 그들은 더 심한 억압을 받게 되는데, 이들의 목소리에 더 높은 비중을 둠으로써 그들이 사회로부터 더 많은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호교차성 안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의 목소리보다 더 중요합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미국에 사는 흑인이라면 그녀는 더 많이 배상받아야 합니다. 만약 그 흑인 여성이 동성애자이기까지 하다면, 그녀는 더 큰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상호교차성이 무엇인지 이해했으며, 또한 지금까지 세상에 많은 불의가 발생해왔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겠습니다. 이런 불의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궤멸시킬 일들이며,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비극적 결과들입니다. 오늘날의이 세상은 불의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죄인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정의(justice)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십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나 부한 자들에게 편견을 갖지 말고 공정하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레19:15)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9)

성경은 또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자들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계명들로 가득차 있습니다(요일3:17-18;신 15-10;약1:27).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불의, 차별, 압제 등과 싸우는데 있어서 최전선에 있어야 하며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의(justice)가 무엇인지를 누가 결정하십니까? 그 답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 만이 지금뿐 아니라 영원한 정의를 결정하십니다. 성경에서 정의는 형용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즉 정의에는 다양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정의와 불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정의의 존재 이유는 도덕의 근원 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불의를 인식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불의가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양하고 지독한 어려움을 견뎌왔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분의 완벽한 의로움 앞에 서야만 합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의로우십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신 32:4)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 19:11)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분의 의로우신 심판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의 구원과 의로움에 대한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그분의 특권을 버리신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롬3:23-25;빌2:7-8;고후5:21).

 그분은 공의로우시며 의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사회정의와 상호교차성은 복음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특권 계층, 압제받는 자, 책임을 가진 자, 빚을 받을 자가 누구인지 구분하려고 시도하는, 애매모호한 사람 중심의 사상입니다. 그들의 기본적 메시지는 이러합니다. “나는 받을 빚이 있고 보상이 필요하다.” 반면에 성경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죽어 마땅하지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은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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