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b)

사탄이 뱀을 통하여 인류에게 던진 첫 질문이요, 첫 거짓말이다. 사탄이 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거짓이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진리가 없을 때 자동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는 사탄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거짓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사탄)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그러므로 진리 되신 하나님을 반역한 사탄의 첫 거짓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이 유혹을 성공함으로써 이때 이래로 모든 인류에게 이 거짓말로 속여왔기 때문이다.

동산 모든 나무?

하나님께서는 앞선 창세기 2장에서 이와 같이 명령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자유롭게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 2:16-17)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열매는 선악과뿐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금지한 열매를 ‘모든 나무’로 바꾸었다. 아울러 “하나님이…그렇게 말씀하셨냐?” 의 의문의 꼬리 달린 질문을 던진 것이다. 피조물이 감히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에게 그 말씀에 대한 의심을 유도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교회를 공격한다. 진화론이 들어온 이래로 창세기를 보는시각의 다양성을 요구한다.

“꼭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하루를 오늘날의 하루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유신론적 진화론, 점진적 창조론, 다중격변론, 날 – 시대이론, 간격 이론, 문학적 접근 등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모든 이론을 받아들이는 관대함을 가지라?”

“구원은 단지 예수뿐이겠는가? 모든 종교에도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사탄이 하와에게 “모든나무”로 접근했을 때와 같이, 오늘날에는 유일한 성경 역사가 아닌 “사람이 만든 모든 진화론적 역사”로 접근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관대함(?)을 요구함으로 하와를 흔들었듯 지금 많은 크리스천에게 다양한 이론을 요구한다. 그리고 모든 나무를 통한 유혹에 넘어갔을 때 하와가 하나님을 떠났듯이, 이 유혹에 넘어간 교회와 신학교에서 다양한 이론들을 배웠던 시대와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떠났다.

참으로(Indeed)?

사탄은 하와를 유혹할 때 “참으로(indeed, really, 정말로)”라는 부사를 사용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고?” 라고 하는 이 부사는 사실로 여기고 있는 자에게 강한 의구심을 던지게 하는 단어이다. 이 부사는 성경에 몇 번 더 등장하는데, 개역개정은 “하물며(how much more)”로 번역하였다. 아래 두 가지 예는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을 치라”라고 명령하셨을 때, 다윗의 신하들이 이 말을 듣고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는 표현으로 다윗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how much more)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삼상 23:3)

다음 예로써,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을 죽인 자들에게 사울을 죽였던 자도 가만두지 않은 것 같이 그의 아들을 죽인 자들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에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

“하물며 (How much more) 악인이 의인(이스보셋을 의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 하지 아니하겠느냐?” (삼하 4:11)

그러니까 사탄은 ‘모든 나무’라는 없는 말을 추가했을 뿐 아니라 의구심을 부추기는 부사까지 첨가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이 부사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했냐?”

“정말로 노아홍수가 전지구적인 사건이겠냐?”

“정말로 예수에게만 구원이 있겠냐?”

알고 있는 지식을 역이용함

사탄의 또다른 전략은 기존에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죄가 들어오기 이전이기에 하와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창조하셨을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것뿐 아니라, 그 좋은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런 상황과 하나님에 대한 하와의지식을 그대로 역이용했다. 그의 질문 속에는 ‘봐라! 모든 것이 보기 좋으며, 이를 만드신 하나님도 선하신 분인데 먹지 말라는 열매가 어디 있겠냐?’와 같은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피조물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며 말씀에서 벗어나게 하는 주도 면밀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수십억 년에 걸쳐 창조하실 수는 없겠나?”

“대규모의 멸종들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빴겠는가?” (양승훈, 창조와 격변, 2007, p. 536): (하나님께서 창조와 멸종을 수십억 년 동안 진행하다가 사람을 창조했다는 자신의 이론인 다중격변론을 수용하자는 의미에서)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지옥을 만들었겠나?”

엘로힘?

사탄이 거짓말을 할 때 그가 사용한 하나님의 호칭은 히브리어로는 엘로힘이다. 이는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호칭이며 힘과 능력을 의미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호칭을 정확히 사용했다. 그러나 호칭은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그분의 말씀은 바꾸었다. 그러므로 이름만 그대로 사용했지 실제로 하나님을 부정하도록 하는 작전을 편 것이다. 그의 입으로 이 거룩하신 이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희롱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하와에게 엘로힘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전하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세번째 계명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들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이름을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고 헛되게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사탄은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게 사용한 있는 것이다.

다시 진리로 돌아가보자. 빌라도가 “네가 왕이 아니냐”라고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의 답변이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칼럼 서두에 인용한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탄에게는 진리가 없다(요 8:44). 그러므로 그에게 나온 모든 것은 거짓이다.

거짓의 아비 사탄은 하와가 모든 것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던 상황에서 유혹을 시작했다. 창세기 3장에서 보듯이 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도 아니며 아울러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이 죄는 근본적으로 진리를 떠난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구절을 보며, 완전히 만족하고 있는 하와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사탄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으로 접근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치밀하고 계획된 유혹에 첫 부부가 굴복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후손인 인류는 사탄의 권세 아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영원하신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가능하다.

다시 한번 사탄의 유혹을 읽어보라.

“엘로힘(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탄의 거짓말이 보이는가?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그의 유혹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