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뉴스레터]

2013년 3월 6일, 하나님 곁으로 간 뒤엔 기쉬 박사(Dr. Duane Gish)로 인해 창조과학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에 슬픔과 함께 그의 사역에 대한 감사가 가득하다. 기쉬 박사는 수 십 년 동안 ICR의 리더였다. 우리 모두는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캔자스(Kansas)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대학, 로스 엔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에서 공부했고,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UC Berkele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미시간의 업존(Upjohn)이라는 제약회사에서 생화학 분야에서 일하던 중 1970년 ICR의 교수진에 합류했다. 1961년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 출판이 있자마자 그는 또 다른 창조과학자들과 함께 1961년에 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설립했고 1997년까지 그 학회를 섬겼다. 창조과학 사역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헨리 모리스 박사(Dr. Henry Morris)와 새롭게 모습을 바꾼 ICR에서 창조과학 사역을 함께했다. 그의 인생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겨낸 믿음의 걸음이었다. 당시에는 창조에 대한 증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역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걸어갈 뚜렷한 길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믿음과 노력을 축복하셨다. 그는 특별히 자신의 사역 중심을 진화론으로 가득차 있는 대학 캠퍼스에 두었다. 그의 학문적 탁월성과 훌륭한 연구 실적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강연을 할 때에 도움이 되곤 했다. 그의 사역 초창기에는 성경적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그의 완성도 높은 지식에 진화론자들이 많이 놀라기도 했다.

그의 사역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번의 창조 대 진화 논쟁의 기회들이 있었고 그는 그 논쟁에서 늘 승리하였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그는 300회가 넘는 공식적인 논쟁에 참여하게 됐고 모든 논쟁에서 승리했다. 항상 진화론자들이 패했기 때문에 진화론자들 안에서는 기쉬 박사와 논쟁하지 말도록 공식적으로 권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기쉬 박사는 결코 대립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창조의 증거들을 보여 주는 것을 즐겼다.

기쉬 박사의 캠퍼스 강의들은 언제나 진화에 대한 증거들을 과학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진행되었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성경 추종자라고 비웃으며 과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을 실추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신실하게 창조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들을 고수했다. 청중들은그가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 조쉬 맥도웰(Josh McDowell)은 ICR의 사역이 “복음 전도의 최첨단”이라고 이야기했다. 기독교대학 그룹도 기쉬 박사의 토론에 대해 영혼의 큰 수확이라고 보고했다. 그의 강의들은 대부분 과학의 본질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했고, 기원에 관한 내용이 얼마나 관찰되지 않은 추측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화석 기록과 같은 과거 생명의 기록에 관한 연구를 보여주었다. 때때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실험이나 공룡에 관한 내용도 다루곤 했다. 아마도 그의 강연에서 질의응답 시간이 최고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박학다식한 지식과 매력적인 답변 방식은 청중을 압도했고 열렬한 진화론자들을 잠재우곤 했기 때문이다.  

기쉬 박사는 「Evolution? The Fossils Still Say NO!」, 「A Creation Scientist Answers His Critics, Evidence Against Evolution, Dinosaurs: Those Terrible Lizards, and Dinosaurs by Design」을 비롯한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진화론자들이 그를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비난하더라도 기쉬 박사는 언제나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그들을 대했다. 강의에서는 유머감각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 잡는 능력도 발휘했다. 그의 설명은 진화론자들의 것보다 훨씬 논리적이었고 근거 자료들도 더욱 적절했다. 한마디로 청중은 그를 좋아했다. 그런 모든 노력을 통해 오늘날 창조론은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운동으로 성장했다. 기쉬 박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고 ICR 구성원을 비롯한 모든 창조과학 사역에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그 스스로 큰 자가 아니었다. 영적 권위 아래 거장과 같이 서 있었던 자이다. 뒤엔 기쉬 박사여, 정말 수고했습니다.

출처 : ICR / 번역 : 조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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