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뉴스레터]

나는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해서 4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3월 12일 군입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 이전에는 과학, 특히 천문학과 지질학 등 지구과학 분야에 관심이 매우 지대했던 한 열심 있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 열정과 열심으로 여러 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이 모르는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학문인 신학을 통해 세상과는 구별된 특별한 배움의 자리에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기독교미래연구소에서 진행된 이번 창조과학 세미나에 대해서는 기대하는 바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세상에서 말하는 창조과학은 허구이며 증명할 수 없는 근거로 점철된 유사 과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고, 신학교와 교회에서조차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창조과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자녀에게 주는 큰 선물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의가 이틀 동안 진행되는 동안 하나씩 하나씩 내 안의 무언가가 철저히 깨짐을 느꼈다. 의심은 사라지고 확신이 내 안에 들어서는 것을 느꼈다.

첫째 날, 내 안에 자리한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 부서진 잔해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거대했다. 내 기저에 자리한 진화론이 나의 사고를 지배하고 나의 영혼까지 지배해 어느새 하나님의 창조에 의심의 그림자가 나도 모르는 새에 짙게 드리워져 있던 것이다. 아무리 신학생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었다. 또한 신학교 라고 예외는 없었다. 진화론은 이 사회에 그야말로 뼛속 깊이 스며들어 어느새 창조를 부정하고 성경을 부정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배워야하는 신학교마저 ‘창세기 1 장은 너무나도 먼 역사라서 기록된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고 말하고 가르치고 있었다.

작금의 현실 속, 세상에서 배웠던 고등학문에 심취했던 나에게 선교사님의 말 하나 하나가 충격이었고 전율이었다. 성경 속 말씀은 그저 상징이나 설화나 전설 따위 가 아닌 사실과 역사 그 자체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우리만치 정확했으며 그 어느 학문보다 과학적이며 그 어느 역사서보다 정확한 사실이었다. 이제 더 이상 노아홍수는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살아있는 역사였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었다. 내 안에 자리한 진화론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둘째 날, 내 안에 자리한 내 자아가 산산이 부서졌다.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펼치신 창조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내 죄악의 부 끄러움으로 인해 나는 철저히 깨지고 말았다. 성경이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성경 속 예수님을 느끼지 못했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깨지기 쉬운 의심 많은 얄팍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 님, 전지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이라 고백하면서 그 이면에는 의심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내 중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철저히 이중적인 나의 모습에,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보다 못한 것과 같은 자아를 보는 순간 나는 너무 괴로웠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피조물인 내가 하나님 알아가기를 거부하고 싫어하고 떠나려 했던 모습을 마주하자 나의 마음은 산산이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절규가 터져 나왔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조각조각 깨지고 밟히며 눈물로 회개했다. 조금 과장해서 이전에 고백했던 회개는 회개도 아님을 느꼈다. 이제껏 내가 다른 영을 보고, 다른 복음을 알고, 다른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내게 다가와 너무도 비참해서 하나님을 향해 든 손조차도 부끄러워졌다. 그만큼 내 안에 일어났던 부서짐과 깨짐은 격렬했다. 내 안에 자리한 자아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나의 더러운 죄를 쏟아내고, 내 안의 가증한 의심을 떨쳐내니 죄악으로 인한 나의 부끄러움이 변하기 시작했다. 눈물로 쏟아내던 회개가 바뀌어서 간절히 원하는 간구로 바뀌었다. 내가 잃어버리고 알지 못했던, 전지전능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간구하는 기도로 바뀌었다. 창조 속에 계신 예수님을 간구하는 기도가 나왔다. 그분을 만나고 싶었다.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그분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다. 창조속에 예수님이 계셨다. 모세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었다. 온통 성경에서 예수님이 넘쳐났다. 너무나도 예수님이 선명했다. 태초로부터 시작된 예수님이 흘러나왔다. 예수님이 가득해서 성경 구석구석 어디 하나 계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제 나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예수님을 느낄 수 있다. 성경 속 찾을 수 없었던 예수님을 찾을 수 있다. 창세기는 설화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우주에 행하신 놀라운 역사이자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거짓에 휘둘리지 않고 예수 안에 거하며 진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설교 할 때마다 외쳤던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고 목회자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 어떤 의미로 부모님이 말씀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신학교로 부르셨는지 막을 수 없는 은혜의 강물이 범람하게 되었다. 앞으로 행하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대한다. 내년 12월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미국에서 창조과학여행을 통해 생생한 현장을 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마음이 분주해진다. 이 자리를 통해 창조주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은혜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기독교미래연구소와 소중한 강의를 열강해주신 이재만 선교사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 윤찬영 (윤억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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