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의미
[2007년 9월 뉴스레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공룡-새의 중간화석들이 보고되었으나 모두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온혈동물인 새와 다르게 공룡은 냉혈동물임이 거듭 입증되었다. 공룡과 새의 발가락 형성에 대한 연구 결과는 새가 공룡에서 진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깃털달린 공룡”들로 세상 미디어들에 소개된 깃털은 바다 뱀의 콜라겐과 같은 것들이었지 새와 같은 깃털로 확인된 적이 없었고, 더구나 허파 구조를 보면 공룡은 전형적인 파충류였다. 더욱이 털이 있다고 다 새도 아니다. 젖을 먹이는 포유류 오리너구리(platypus 혹은 duckbill)는 몸에 털이 있고 부리가 있고 발에 물갈퀴가 있고 알을 낳지만 아무도 이 동물을 오리에서 진화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참새나 벌새도 공룡이라고 하는 진화론자들도 있다. 그러나 공룡이 새로 진화되었다는 믿을만한 증거는 없다. 공룡은 언제나 공룡이었고 새는 언제나 새였다. 이 동물들은 모든것들을 종류대로 만드신 창조자의 작품들 중에 특별한 하나일 뿐이다.
“도대체 공룡이 성경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런 법석을 떨고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진화론적인 사상은 사회에 여러가지 비성경적인 현상들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면, 낙태, 가정파괴, 학원폭력, 안락사, 인종차별, 부정직, 혼음, 동성행위 등을 정당화하는 데 진화론이 그 근거를 제공했다. 더 나아가 이런 사상은 복음을 듣지 못하게 귀를 막는 중요한 역할도 하므로 진화가 사실이란 주장을 하는 소재로 공룡이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도록 사실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만약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새가 공룡에서 진화되었다는 가정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인 창세기 1장은 잘못된 것이 되어 버린다. 또한 성경이 말하지만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들은 무시해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든것이 하나님 없이 저절로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자도 아니고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말씀하실 자격도 없게 된다. 절대적인 도덕 기준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없다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의견일 뿐이다. 도덕 기준도 없으므로 죄도 없고 하나님이 죄를 판단하고 심판하실거라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도 필요 없다고 할 것이다.
사람이 출현하기 수백만년 전에 공룡이 살았다면 또 다른 면에서 복음을 공격하는 것이다. 공룡 화석 기록은 공룡이 피를 흘리고, 질병이나 잔혹한 고통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아담의 죄와 상관 없이 죽음과 고통이 었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의 죄 이전에 죽음이 없었다고 말한다. 선악과를 먹게 되면 정녕 죽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렇게 되었으며 다른 모든 피조물들도 아담의 타락 이후에 고통 당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롬 8장), 그런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의 값을 위해서 죽으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죽음도 저주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 이전에 수백만년 동안의 죽음, 질병과 고통이 있었다는 진화론적인 주장은 십자가의 복음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진실하고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공룡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관찰되는 증거들도 잘 설명될 수 있다. 또 사람들이 창세기는 절대적이며 논리적으로도 설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주와 인간의 기원도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의 다른 부분들도 다 믿게 될 것이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견해가 달라져 구원의 필요성을 포함해서 도대체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최우성 (생리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