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뉴스레터]

산타와 선물과 화려하게 장식된 전나무로 대변되는 세계적인 크리스마스가 있어 한 해는 더욱 요란하게 마무리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의미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즐거우면 그 만이다.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보내서는 안된다고 외쳐대지만 세상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밖에 없을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요(요 1:3, 10), 생명이요(요 14:6), 첫 사람 아담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요 1:12; 5:24) 바로 그 분이다. 그 분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던 역사 가운데 오심을 기념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분이 왜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셔야 했는지 사람들은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어버린 큰 이유는 역사적이고 사실이며 진리인 성경을사이비 과학인 진화론을 통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현대인의 시조가 100만년 전 유인원에서 진화된 동물의 한 종류라고 세상을 세뇌시켰다. 사람의 기원과 범죄와 저주와 회복에 대한 약속을 담은 창세기의 역사는 신자들에게조차 신화나 비유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형편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는지 깨닫지도 못한재 몸과 마음이 철저히 병들어 있다. 복음이 주는 ‘소망’이란 그저 그림의 떡일 뿐 그것을 느낄만한 감각도 없다.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복음은 성경에만 있다. 성경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아담은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처럼 되려고 반역했고(창3:5) 하나님은 사람은 물론 땅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고통의 벌을 내리셨다.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났고 하나님의 경고대로 죽음이 왔다. 죄로 죽은 아담(사람)은 생명 있는 자녀는 낳지 못한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고전 15:22).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난 후 범한 죄 때문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에(born dead) 죄를 지으며 산다. 다시 살기 위해서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우리를 죽게한 죄 해결과 중생(born again)함을 선물로 받아야 되는 것이다. 이후에 지은 죄도 물론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속죄할 수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아담의 범죄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죄 가운데 빠져들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그 결과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던 노아홍수가 왔다.이 홍수는 깊음의 샘이 터지며 하늘의 창이 열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전세계적인 지진으로 인해 흙이 들떠있을때(토양액화) 쓰나미 같은 엄청난 속도와 많은 물이 흘러 지표는 완전히 부서졌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그 땅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그런 환경은 없다. 궁창 위의 물은 모두 쏟아져 내렸고 지구의 기후는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그 결과 자외선 같은 해로운 광선이 거침없이 지구표면에 도달했고 추위와 더위 등 각종 스트레스는 900세의 수명을 80세로 격감시켰다. 지금도 곳곳에 엄청난 규모로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물론 햇빛 과다노출로 인한 작은 화상도 그 원인이 바로 그 죄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이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께 두 번씩이나 저주 받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만 한다. 고통이 없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아무 생각없이 이런 험한 세상에서 발버둥치며 사는 것은 본능으로만 사는 것이다.

언제나 연말이 되면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자연재해도 많아 카트리나를 비롯해서 역사상 가장 많은 허리케인이 발생해 엄청난 아픔과 재산 피해를 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이런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더욱 거세게 원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역사에 근거하여 보면 이런 일은 꼭 일어나게 되어있는데 그 근원이 바로 하나
님을 거역한 죄에 있고 우리는 그 심판의 영향 아래서 살기 때문이다.

완전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런 비참한 형편에 있는 자기 자녀들을 살려주시려, 처참하게 대신 죽어 자녀들의 죄를 해결하시려 아기 예수로 탄생 하신날, 그 날이 바로 첫번째 크리스마스였다! 이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영원한 생명과 완 전한 세상에 다시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신 것이다. 감격함으로 기쁜 크리스마스의 사건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사랑을 드립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2-39)

  • 최우성 (ACT Speaker, 생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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