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년의 역사라면 구원자가 필요없다!
[2006년 5월 뉴스레터]

“하나님, 도대제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을 하는 근본 원인은 마음 속에 잘못된 진화론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역사관이 마음에 들어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더 확실해질 뿐만 아니라 대신 감사와 기쁨과 인내심이 생겨난다.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과 수백만 년의 역사를 믿으면서 생명이 이 지구에 출현한 이후로 죽는것은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매일 어린이들이 태어나고 또 연로하신 분들이나 동기나 젊은사람들이 질병이나 사고로 매일 죽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수십억 개의 죽은 생명체인 화석들이 들어있는지층이 수백만년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사망, 질병, 고통으로 가득한 그 화석들은 아주 살벌한 역사 기록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죽음이 끊이지 않는 이 세대도 마찬가지다.
진회론 과학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은 죽음에 대한 다윈의 견해를 아주 잘 표현했다: “시간과 죽음”이 진화의 비밀이다. 이것이 죽음의 역사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며 요약된 생각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첫째, 수백만 년 동안 다른 동물들의 사망, 고통, 질병을 거친 후에야 사람이 진화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둘째, 사망, 고통, 질병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셋째, 사망, 고통 질병은 미래의 세계까지 계속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망은 영원한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부분이며 우리들의 생명을 창조한 우리들의 동지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죽음에 대한 이런 역사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고통의 의미는 무엇일까? 수백만 년의 역사를 믿으면 이 세상은 언제나 죽는 장소일 뿐이다. “누가 암, 질병, 화석에 나타난 폭력이 생기게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해 보는 물음이다. 수백만 년의 역사를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타락하기 전 아담과 하와를 포함하여 그 분이 만든 모든 것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다시 설명할 수 있다. 한 크리스천이 사망, 질병, 고통이 아담의 범죄 이전에부터 있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는 복음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된다. 수백만 년의 역사를 믿으면 사망, 질병, 고통이 아담의 범죄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틀림 없는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가 세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성경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고 이 사실은 복음의 기초다! 예수님은 죄의 삯인 죽음으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인데 만약 죄와 죽음이 상관 없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대신 죽으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과 고통이 없는 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미래에 피조물들이 사망, 고통, 눈물이 없는 그런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회복(계 21:4)이 가능 할 수 있을까? 이런 수백만 년의 역사관을 가지면 복음의 메세지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리고 세계와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사망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이런 생각은 과학적으로, 성경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틀린 것이다.
성경은 올바른 역사관과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보여 준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사망의 역사를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이 역사적인 문서는 우리들을 진짜 생명의 핵심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 최우성 (ACT Speaker, 생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