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지난 수 세기 동안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 행했던 “인종”에 기반한 가혹한 노예제도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노예는 훨씬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만약 성경을 가지고 있다면, 이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이 노예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지 더 정확히 이해할 것입니다. 과연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요?

노예에 관한 간략한 역사

지난 몇 세기 동안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이 아프리카인을 사유 재산처럼 행했던 노예 교역과 신약 시대나 모세 언약에서의 노예제도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약 시대나 모세 언약에서 언급된 노예제도의 형태는 이들과 매우 달랐습니다. 만약 이런 형태적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노예제도를바르게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혹독한 노예제도는 단지 최근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역사상 혹독한 노예제도의 오점을 가진나라 가미국과 영국만은 아닙니다.

  1.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2242년부터 노예제도에 관하여 논의합니다(이 연대는 성경에 근거하여 어셔 대주교에 의해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정해진 연대입니다).
  2. 함의 아들 미즈라임은 이집트를 건립했습니다. 이집트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살았던 곳으로써, 성경에서 가혹한 노예제도가 처음 등장하는 나라입니다. 이후에 이집트인들은 노예인 이스라엘인들의 주인이었으나,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들을 해방시켰습니다.
  3. 약 1,000년 후, 이스라엘인들은 다시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4. 아프리카 북부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정복했을 때, 유럽인들을 8세기 부터 400년 넘게 노예로 삼았습니다. 무어인들은 북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인들까지 노예로 삼았습니다. 무어인들과 중동의 노예시장은 광범위했습니다.
  5. 스칸디나비아의 노르웨이의 침입자들은 8세기부터 시작해서 다른 유럽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삼고개인 소유화했습니다.
  6. 최근에도 수단이나 다르푸르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여전히 노예제도가존재하며, 세계 곳곳에서 인신매매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문화권에서도 가혹한 노예제도의 많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몇몇 예들은 가혹한 노예제도가 실재했음을 보여주며, 성경적 기준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제도입니다.

성경에 묘사된 노예제도는 어떻습니까?

성경의 노예제도가 가혹한 노예제도와 같았을까요? 예를 들면, 노예와 주인에 대한 바울서신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5절의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라”에서 “종”의 더욱 정확한 번역은 “하인(bondservant)”입니다.

성경은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돈도 받지 못하는 1세기 노예제도를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 종의 제도가 있기는 했지만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골 4:1)과 같이 하인들은 급료를 조금 받았으며(골 4:1), 따라서 성경에서의 종(하인)은“인종적인” 노예가 아닌 평생고용과 같은 형태였습니다. 더욱이 바울은 크리스천 “주인”은 하인에게 존경심을 갖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백히 가르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는 자신의 신분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가혹한 노예제도는 고대 이집트,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일반적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것을 단순히 외면하셨다면, 노예나 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 어떤 규칙도 없었을 것이며, 그들을 어떤 권리도 없이 가혹하게만 다루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종의 보호를 위해 주신 권리와 규칙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이 마치 가혹한 노예제도를 승인하는 것처럼 오해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를 사고파는 “인신매매를 하는 자”(딤전 1:10)를 가장 나쁜 죄인 중 하나로 열거하십니다(유괴범/납치범/노예교역상). 이것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모세오경도 강제 노예제도를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6).

하나님께서 노예나 종을 이와 같은 계명으로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노예나 종에 대한 바른 규범이 없는 가혹한 노예제도를 가진 주변 나라의 사람들이 이주해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 주인들로 행세하는 이들 주변 국가들이 정착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이 있었기에 이러한 가혹한 노예제도가 이스라엘에서 억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죄를 드러내고 제한하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노예제도에 관한 법과 규범자체가 노예제도의 그릇됨을 말합니다(롬 5:13). 어떤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노예제도를 규제하기 위한 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법을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제한하거나 규제하는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너무 건강한 것은 잘못입니다’ 혹은, ‘깨끗한 물은 오염에 방해가 됨으로 사용하지 마시오’라는 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규범에 노예제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피해가 커질 것을 막기 위해 규제의 필요성이 있음을 가정하는 겁니다.

성경에 가혹한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구절이 있지 않나요?

성경이 가혹한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사용되는 몇몇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맥을 통해 읽으면, 그 구절들이 가혹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여러분이 아래 구절을 직접 읽는다면, 이 논제에 관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구절이 다소 길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출애굽기 21:2~6] 이것은 최초로 발견된 “파산법”의 한 형태입니다. 여기에는 정부의 어떤 개입이 없습니다. 그러나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마지막 남은 것을 팔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노동력입니다. 이 노동력은 단지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년 후에 빌린 노동력은 다 갚게 되고, 그는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 일을 했던 종(하인)은 급여를 받았고, 빚을 갚게 되었으며, 지낼 곳이 있었고, 직업훈련을 받았으며, 6년만 일하면 모든 임무를 마친 것입니다. 이것은 빚을 갚을 수 없어도, 돈을 받는 대신 돈을 내야 하는 대학교보다 더 나은 것처럼 들립니다!

또한 이것은 강제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종(하인)은 자발적으로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같은 측면으로, 외국인들도 자신을 종으로 팔 수도 있었습니다. 규칙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출애굽기 21장 16절을 통해 조명해 보면, 종이 될 것을 외국인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정복당한 종들 또한 약간 다른 규칙이 적용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1:18~21] 모세의 출애굽기 21장 16절에 노예상인에 대한 법령에 이어서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규칙은 그들이 이미 종이었건,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종으로 팔았건 간에 동일하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용됩니다.

[레위기 25:38~46]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에 앞서 특별히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원하셨던 일을 상기 시키십니다(창세기15:13~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이집트에 형벌 내리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누군가 가난하게 된다면, 그는 ‘자신을’ 종으로 팔 수 있었고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6년 만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슬프게도, 이후 솔로몬(왕상 9:15)과 르호보암과 아도람(왕상 12:18)과 같은 몇몇 이스라엘의 왕들은 강제 노예제도를 시행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갔고 죄악을 따르게 되었습니다(왕상 11:6; 역하 12:14).

[누가복음 12:43~48] 노예를 때리는 것을 옹호했다는 이 구절은 예수님의 비유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비유는 영적인 진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재판관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눅 18:1~5). 그 재판관은 정의롭지 못했음에도, 결국 계속 조른 과부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행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불의한 재판장과 같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하게 공의로우십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누가복음 12장 47~48절도 노예를 때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비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다시오실 때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삶을 얻거나 영원한 형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 25:46).

[에베소서 6:5~9] 에베소서에서 노예, 종, 노예주인의 언급은 이에 대한 승인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 모두에게 같은 계명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들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게 보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성경은 골로새서 4장 1절에서 종들은 적절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결론

노예제도에 관한 모든 구절을 짧은 장을 통해 깊이 다룰 수 없었지만, 기본 원칙은 같습니다. 배운 것들을 요약하며 몇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1. 모세의 율법에서 노예제도는 다른 사회에서 가혹하게 다뤄진 노예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노예보다 하인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 아직도 사람들이 집사나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2. 성경은 노예상인들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딤전 1:10). 노예나 종은 자신들의 빚을 갚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그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3. 성경은 노예제도가 죄로 인해 저주받은 세상에서 실재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며, 대신 종의 주인과 종 모두 서로를 선하게 대할 규범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그리스도 아래 평등 하다고 밝히십니다.
  4. 이스라엘인들은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하여 자신을 종으로 팔 수 있었으며, 월급을 받았고, 거주를 보장 받았으며, 6년후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외국인들도 자신을 종으로 팔 수 있었습니다.
  5. 많은 사람은 근대에 가혹한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싸움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윌리엄 윌버포스 같은 성경적 그리스도인들 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성경의 노예제도를 이해했으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빚이 너무 많아서 절대로 갚지 못할 때…. 그때 여러분은 자신을 종으로 팔게 됩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커서, 결코 갚을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혈육으로 오신 구세주가 죄와 죽음에 대한 우리의 빚을 갚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에게 그 빚으로부터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예수님의 종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더 쉽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에게 영원한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죄와 죽음은 나쁜 주인입니다. 한편, 받을 자격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죄의 대가를 치르신 창조주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라고 말씀하신 대속주 이신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이글은 미국 창조과학 단체인 Answers In Genesis(AIG)의 “Answers Book 4 Teens”(Vol 2, 2011)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번역:이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