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창조과학자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해석한다고 하나요?

창조과학자에게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표현보다는 성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성경을 “문법적-역사적” 접근에 따라서 읽고, 이해한다는 편이 더 맞습니다.

“문법적-역사적” 접근이란 표현이 조금 어렵나요? 너무 걱정마세요! 쉽게 말하자면, 성경을 문맥, 저자, 독자, 문학적인 형태 등을 고려하여 성경의 문장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성경을 분명하고, 꾸미지 않고, 그대로 읽고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일반적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고후 4:2).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 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바니라” (잠 8:8-9).

위의 두 구절은 성경은 진실 되다는 것뿐 아니라, 성경을 자신의 의도로 억지 해석하지 말고 주의깊게 연구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꾸미지 않고 (plainly)” 읽는다는 의미는 성경의 어떤 부분은 역사적 서술로, 어떤 구절은 시로서, 어떤 구절은 우화로서, 어떤 구절은 예언으로 쓰였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각각의 문학적 스타일로 쓰였으며, 그것을 고려해서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그것은 역사적 서술 형태로 기록 되었으며, 이를 풍자나 시와 같은 다른 문학적 스타일로 읽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문맥, 문맥!

예를 들어, 한 비기독교인이“ 시편 14편 1절에서 성경은 명백히 ‘하나님이 없다’고말씀합니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1).

여기서 문맥은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어리석은 자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의 날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하루가 천년과 같다고 하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지구가 몇백만년, 몇억년이나 되었음을 지지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구절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문맥에서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이 구절은 직유법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는 점을 말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분의 인내에 관하여 말하기 위하여 하루를 천년에 비유한 것입니다. 직유법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만 가지고 해석을 한다면, 하나님의 날은 천년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적으로 부정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문학적 스타일과 문맥을 고려할 때, 이 구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자신이 창조하신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Boy raised the Bible.

또한 이 구절이 창세기의 날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이 구절을 창세기 1장의 날들의 길이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읽자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심에 있어서 인내하신다는 것이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 질문한 분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온지구가 오래되었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분은 지구의 나이에 관한 인간의 생각을 먼저 믿었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을 의심한 것입니다. 이 의심 때문에 이분은 역사적-문법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창세기 1장의 날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이미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에 끼워 맞추려고 했습니다.

결론

창조과학자들은 역사적-문법적 방법에 따라서 성경을 간단하고, 솔직하게, 문맥에 따라 읽습니다. 또한 문맥, 저자, 독자, 각 구절의 문학적 스타일을 고려함으로써 자신의 선입관에 따라 성경구절을 맞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방법을 따름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 그분의 뜻을 배웁니다. 우리는 은유적이거나 풍자적인 구절을 문자적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문자적으로 읽어야 하는 구절을 은유적이거나 풍자적으로 해석하려고도하지 않습니다. 역사적-문법적 접근을 사용하여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의심하는 대신 그것을 믿는다는 뜻이며, 이 믿음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