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과 진화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찰스 다윈 이래 진화론자들은 자연 선택이 진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이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이유는 진화라는 단어가 과학적으로 몇 가지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용어를 확실히 정의한다면, 진실은 보다 명확해질 것입니다.

정말일까요? 한번 보겠습니다!

자연선택이 무엇인가요?

자연선택은 다른 말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한 집단의 생명체가 가뭄이나 추위, 먹잇감의 변화와 같은 환경적 도전에 직면했을 때, 그 바뀐 환경에서 살아남기에 가장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 개체가 번식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쉬운 예로, 긴 털을 가진 동물은 추운 환경에서 더 잘 살아남을 것이며, 위장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그렇지 않은 동물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살아남은 개체가 번식할 때, 그들의 후손은 부모로부터 그 부모를 생존하도록 해준 형질을 포함한 다양한 형질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단 중에서 환경에 덜 적응한 개체는 그것들이 죽기 전에 자신들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전체 집단은 가장 잘 적응한 부모와 매우 비슷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이 집단 중에서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들을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선택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자연은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제 왜 그 용어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지 아시겠죠?

자연선택이 끝난 뒤, 새로운 집단은 처음의 집단이 가졌던 것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줄었지만, 새로운 환경에는 더 적합합니다. 물론 환경이 또다시 급격하게 변한다면, 새로운 집단은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해주는 유전적 형질이 더이상 없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집단의 유전자는 줄어든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로운 집단은 전혀 새로운 생명체가 아닌, 최초의 집단 안에 존재했던 하나의 다양한 형태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자연선택을 발견한 사람이 찰스 다윈 아닌가요?

많은 사람들은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윈이 쓴 진화에 관한 책인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22년 전, 창조론자인 에드워드 블라이스(Edward Blyth)가 먼저 자연선택의 원리를 알아냈습니다. 블라이스는 그의 생각을 1835년과 1837년 사이에 자연사 매거진(Magazine of Natural History)에 발표했고, 심지어 찰스 다윈은 이 매거진을 갖고 있었습니다.

블라이스는 하나님이 동식물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완벽했던 창조세계에 죽음의 저주를 불러들였습니다. 블라이스는 저주받은 세상에서 생명체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해 갈 수 있는 방식이 자연선택이란 것을 이해했습니다.

또한 자연선택은 많은 경우 약한 동식물들이 멸종하고 강한 개체만을 살아남게 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대홍수 이후에 최초에 창조된 종류들 안의 많은 다양한 개체들이 각기 변화된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기록된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모든 동식물들을 각기 종류대로 번식하도록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박테리아는 박테리아를 낳고, 개는 개를 낳고, 공룡은 공룡을 낳지, 공룡이 새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윈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다윈은 생명체가 지구를 구성했던 화학물질로부터 자발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생명체의 형태가 만들어졌고 서서히 점점 더 복잡해져서, 모든 동식물들과 미생물들 그리고 인간들의 공통 조상이 된 원시 단세포동물이 형성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물질로부터 인간까지 (molecules-to-man)”의 진화, 혹은 “끈적끈적한 국물로부터 여러분까지 (goo-to-you)”의 진화라고 부릅니다. 생명체가 무생물들로부터 무작위적으로 우연히 생성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관찰된 적도, 발견된 적도 없으며, 생물학에는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단 하나의 예외가 없는 생명기원의 법칙 (the law of biogenesis)이 존재합니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느린 과정에 의해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아 더욱더 복잡한 생물을 낳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선택의 결과는 단지 생물 안에 존재하는 유전 정보의 재조합일 뿐입니다. 자연선택은 새로운 정보를 낳지 않으며, 어떤 생물에게도 더 복잡한 생물로 되도록 하는 설계도를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을 거치며, 집단 내의 유전정보는 소실되며, 새로운 개체는 그 부모들 중에 이미 존재했던 유전 정보의 새로운 조합일 뿐, 전혀 새롭거나 더욱 복잡한 종류가 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연선택의 과정은 물질로부터 인간으로의 진화를 가능케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단순한 조상들이 조금 더 복잡한 종류로 진화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이 진화의 한 형태가 아닌가요?

진화라는 용어가 하나 이상의 정의를 가졌다는 것을 기억하시나요? 진화라는 단어는 단지 “변화”만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생명체가 더 복잡하게 진화할 수 없는 반면, 한 종류의 생명체는 다양한 특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코요테, 늑대, 여우, 진돗개 등 많은 다양한 개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다 개입니다).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이러한 종분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 지구적 대홍수로 파괴되고, 환경이 안정되기 시작한 후, 다양한 서식지가 생겼습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홍수 동안 살아남은 동물들은 번식하고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것들이 각기 다른 서식지로 이동하면서, 각기 다른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들이 살아남아서 번식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양한 서식지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선택을 통해 많은 다양한 생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생명체가 점점 더 복잡한 생명체로 변화한다는 의미의 진화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에서 “자연선택”이라고 불리는 것을 관찰하고, 어떤 경우에는 단지 몇 년 안에 새로운 동식물의 종(種)이 만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진화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몇 백만 년에 걸친 자연선택을 통해 더욱더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가 단순한 형태로부터 진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자연선택은 더 복잡한 정보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자연선택은 단지 각기 다른 종류의 생명체에 이미 존재하는 유전 정보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실제 이 세상에서 자연선택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화가 실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한다”라고 말한다면 진화라는 단어를 부주의하고 모호하게 사용한 것이며, 그릇된 결론을 내리게끔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