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대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인류를 흩으신다. 이때 인류가 흩어지며 같은 언어 집단인 나라(nations)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창 10장; 11:6-9). 그 후 인류는 흩어지며 다시 과거를 잊어버리게 되는데, 과거 사실은 단 한 세대만이라도 끊기면 다음 세대는 결코 그 사실을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는 것,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죄로 인해 죽음이 왔으며, 모든 피조물이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등의 진짜 역사를 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를 잊기 시작한 때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위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각 나라가 갖고 있는 고대 전설과 설화들은 당시 조상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전설과 설화는 사람들이 지어 낸 이야기이며, 이를 전승한 사람들의 사고와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대표적인 건국설화와 전설들을 소개한다.
-고조선: 단군은 하늘 신의 아들인 환웅과 곰에서 여자가 된 웅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라와 가야: 박혁거세와 가야를 건축한 김수로는 알에서 났다.
-중국의 상나라: 시조인 ‘설’은 제비가 떨어트린 알을 먹고 잉태되었다.
-베트남: 바다와 산의 신에서 난 딸이 낳은 100개의 알에서 난 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로마: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후손과 전쟁의 신 마르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다 사람의 손에 자라게 되어 로마를 건국했다.
-이집트: 태양신이 하늘로 올라갔으며 여러 신 중에 하나인 ‘호루스’가 어머니 의 머리(head)를 자른 후 그녀의 머리를 소(cow)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잉카제국: 태양의 신 ‘인띠’가 창조한 자들이 첫 번째 왕국을 건설했다.
-아메리칸 인디언: 많은 설화에서 태양이나 달의 신이 등장하고 조개에서 최 초의 인간이 탄생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위의 건국설화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대부분 동물이 등장한다. 단지 건국설 화가 아니더라도 중국의 ‘서유기’에서 원숭이가 사람으로 되려고 하는 것이나, 쥐, 소, 호랑이 등 12개 동물의 띠 등에서도 동물이 사람으로 변하는 거나, 또는 역으로 사람을 동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근원을 발견하는데 있어서 진짜 역사를 잊었을 때 진화론적 사고로 쉽게 전환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만드는 것 이다. 특별히 이들은 태양이나 달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신으로 불렀다. 즉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며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대상에 신성을 부여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진화론적 사고와 일치한다. 진화론자들은 먼저 만들 어진 태양이 지구에 에너지를 주어 무생물이 자연 발생하여 생물이 만들어지고 결국 가장 고등한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 가운데 위의 설화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 다. 설화는 누가 보더라도 비현실적인 발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무생물에서 생물로, 동물에서 사 람으로 변했다는 진화론을 쉽게 믿는다. 가장 큰 이유는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주장함으로 그 내용이 과학 책 안에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 이 ‘진화론=과학’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설화에서는 동물이 사람으로 한 세대 만에 바뀌었다거나 알에서 사람이 났다는 식으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반면, 진화론은 수억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고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진화론이 과학에서 나온 것인가? 아직까지 과학적 접근을 통해 진화가 일어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진화론자들이 진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하는 돌연변이, 자연선택, 생존경쟁, 적자생존을 통해 종류가 바뀐 경우나 유전 정보가 증가된 예가 없다. 단지 한 종류 안에서 다양해질 뿐이다. 또한 화석에서 전이 단계가 발견되어 확정된 경우도 없다.

진화론자들은 진화 과정이 관찰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 스스로도 관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도 “우리는 시간이 흘러 한 세 대가 지나가지 전까지는 이 느린 변화가 진행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Origin of Species, 1859)고 하였으며, 살아있는 대표적인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도 “불행하게도 우리는 수십 년 밖에 살지 못한다. 이는 짧은 시간이므로 아주 느리게 일어나는 진화 진행을 보지 못한다”(Something From Nothing? A conversation with Richard Dawkins and Lawrence Krauss, 2012)고 하며 관찰된 적이 없는 진화 에 대한 답을 긴 시간으로 미루었다.

그러나 이들이 미루는 긴 시간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시간은 어떤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과 물질을 따라가며 함께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공간과 물질을 이끄는 힘도 없다. 과학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으로 말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이 조직을 이루며 점점 질서를 갖추는 것이 아닌 오히려 무질서로 진행한다. 이런 과학적 사실들은 시간이 진화의 치명적인 걸림돌이며 진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현대 진화론은 시간에 너무 과한 능력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앞에 소개한 설화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화론이 과학이며, 시간이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젖어 있어서 진화론을 비판 없이 믿고 있는 것이다.

과연 수백 년 전 설화를 만들었던 사람들과 지금 진화론자들의 다른 점이 무 엇인가? 다름이 없다. 모두들 우리의 첫 시작과 과거에 대해 하나님을 빼고 혼자서 깨달아 알려고 하려는 것이며,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지금 우리 주위의 사람들도 도저히 불가능한 진화의 비현실에서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더 발달했다는 오늘날은 더욱 큰 모순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 수 없는 자연에게 너무나 큰 능력을 부여하며, 어떤 힘도 갖추지 못하는 시간에게 모든 것을 미루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이 시간을 다른 피조물 중에 하나라고 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창 1:1).

이와 같이 진화론은 과학기술이 미천해서 등장한 것이 아니다. 연구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나온 것도 아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이 설화요 진화론이다. 결국에 사람이 동물 중에 하나이며, 생명이 태양에서 왔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과연 거기에 계셨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경을 계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한 내 손에 성경이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도 역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동일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현실 세계에서 혼자 힘으로 벗어난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신 것이 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 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 1:4, 5)


만약 교회가 진화 역사와 성경을 섞어서 믿으려는 ‘타협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더욱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 겪지도 않았으며,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을 진화 역사를 진리의 성경을 맡은 교회 안에서 이 비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기 때문이다. 이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계 1:8)인 예수님께서 계신 성경(갈 1:12)을 부정하게 함으로써 처음부터 그분이 행하셨던 창조를 변형시키고, 더 나아가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재림도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