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의 오류

 실재로 세번째의 선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직 두개의 가능성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 그는 분기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오류는 양자 택일의 오류, 혹은 거짓 딜레마라고도 알려져 있다.

다음과 같은 우스운 예가 있다:

“신호등은 빨간색 혹은 초록색이다.”

이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신호등은 노란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좀 더 현실적인 예는 이것이다:

“당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던지 이성적이던지 해야 한다.”

이는 분기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왜냐하면 세번째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을 갖고 이성적일 수 있다. 사실, 믿음은 우리가 이성적이기 위하여 필수적이다 (논리의 법칙이 이치에 맞게 하려면).

“우주는 법칙과 같은 방식으로 운행되거나, 하나님이 끊임없는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 또한 오류인데, 세번째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는 법칙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하나님은 때때로 기적을 베푸신다고 하는 것이다.

종종 기원에 관한 논쟁은 “믿음 대 이성”, “과학 혹은 종교”, 혹은 “성경 대 과학”이라고 규정된다. 이들 모두는 거짓 딜레마이다. 믿음과 이성은 반대 개념이 아니다. 믿음과 이성은 잘 공존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성적 사고는 특정한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과학과 종교 (특히 기독교)는 상호 배타적인것이 아니다. 사실 과학과 자연의 균일성을 이해하게끔 해 주는 것은 기독교 시스템이다. 동일하게, 논쟁은 “성경 대 과학”이라고 규정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과학의 과정은 성경과 온전히 양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학은 성경적 세계관에 기반해 있다; 과학은 자연의 예측가능성을 필요로 하며, 이는 하나님이 이 우주를 인간이 이해하기에 알맞은 균일한 방식으로 유지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예측 가능성은 “우연한” 우주 하에서는 설명될 수도, 이해될 수 없다.

분기의 오류는, 누군가 단지 두개의 선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쾌하게 주장하는 대신 암시할 경우 알아내기 더 힘들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믿음에 따라 살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은 전략적으로 단지 두개의 선택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믿음 혹은 이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에 언급했듯, 이 두개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이성적인 사고는 어느 정도의 믿음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언급되지 않은 세번째 선택을 한다: 믿음과 이성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만물을 붙들고 계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는 중력과 전자기력이 우주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의 주장은 분기의 오류의 한 예이다. 왜냐하면 비평가는 함축적으로 (1)하나님이 우주를 붙들고 계시다. 혹은 (2)중력과 전자기력이 그러하는 선택밖에 없음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개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중력”과 “전자기력”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이 우주를 붙들고 계시는 방식에 붙힌 이름이다. 자연 법칙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한 예이다.

“당신은 병을 낫게 해 달라는 당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할 것이라고 실재로 믿지 않음에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의사에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암시적인 거짓 딜레마는 의사가 그 사람을 돕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도울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왜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가?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성취하시는 방식의 일부로 인간의 행위를 사용하실 수 있다.

반면, 어떤 경우 단지 두 개의 선택만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내 차가 차고에 있거나 차고에 있지 않다.” 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가 아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마태복음 12:30)라고 하셨을 때, 그분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번째 선택 (“중립지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해 중립적이려고 하는 시도는 죄이며, 결코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분기의 오류를 알아내는 열쇠는, 단지 두개의 선택만이 제시되었을 때 세번째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주의깊게 고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