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에 대한 불쾌감
최근 한 목사가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블랙 리브스 매터 (Black Lives Matter: 흑인 인권 운동)” 집회에서 잔뜩 화나있는 군중에게 준비없이 복음을 설교했다가 폭력 사태가 터질 뻔한 일이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거친 비난을 퍼부었고, 한 교수는 그 목사에게 그 “악한 복음”을 다른 곳에서나 전하라고 말했지만, 많은 학생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격렬한 논쟁을 유심히 들었다. 그 목사가 전한 메세지에는 문제가 될만한 것이 없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극도 의 분노로 반응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어떻게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런 적대 감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복음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는 아주 많지만, 이런식의 다소 낯선 반응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기원에 대한 것이다.
미국인들 삶의 표본이었고 수백년 동안의 정책이었던 기독교 가치는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하늘로부터의 초월적인 법은 없고, 잘잘못, 참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도 없다. 최근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도덕적 목소리는 교회가 아니라 한 닭고기 식당 업체에서 나왔다. 1 이처럼 개인적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한 조직체로서의 교회는 다소 무심하다. 1920 년대, 교회 지도자들이 진화론이란 과학적 사기를 통한 창조자에 대한 정면 공 격에 대항한 한 목소리와 함께 서기를 실패했을 때, 중대한 전환이 일어난 것이 다. 2 창조자인 하나님은 공적으로 제외됐고 90년 후 우리는 전체 크리스천의 후퇴라는 끔찍한 무게를 느낀다.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기독교의 빈 공간을 채웠다. 진화론이 충분히 우주, 생명, 그리고 사람의 기원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제시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항하는 항의는 만약 그가 대학 교수가 아니라면 순전히 “종교적”인 의도로 무시되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 학 교수가 이런 주장을 하면 바로 쫓겨날 것이다.) 3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 “종교”, “믿음” 그리고 “하나님”이란 단어는 심지어 산타 클로스나 이스터 버니 보다 더 실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되어버렸다. 단지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 적인 믿음”은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만약 하나님께 서 직접 창조했다거나 기독교 복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공적으로 주장 한다면, 아마도 이러한 주장은 지나친 상상, 비이성, 또는 그보다 더 나쁜 것으 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적인 인식이 복음에 대한 적대감의 뿌리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론이 기원에 대한 질문에 충분한 답을 제시한다는 추측 에서 시작한다.
명백히, 진화론은 적절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물질주의적 추측 (materialistic speculation)이 마치 과학이 기원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진화론은 매우 못된 일을 해왔다. 얼마나 많은 수 학을 무시해야 우리가 생명이 없는 화학물질로부터 처음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물리학을 부정해야 차가운 암흑 물질같은 상상속의 물질과 급격한 팽창이 만들어낸 상상 속 빅뱅이론을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잘 속아야 유익한 돌연변이가 나의 모든 유전자를 만들어 주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물질주의적 과학은 확실히 우주, 생명, 동물, 그리고 사람의 기원에 대한 질문에 신뢰할 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는 사실 과학적 넌센스이다. 학생들은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의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 가 궁극적으로 사실인지 여부 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모든 공교육에서 금지되어 있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적 합의이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간다. 싸늘한 반응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자연이 스스로를 창조했고 하나님이 하 시지 않았다면 모든 종교들은 단지 임의적이고 인간의 상상물 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 누가 감히 그들의 상상의 신이 다른 종교의 신들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편견과 세상의 악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 아 니겠는가?
공립 학교들이 많은 부분에 실패하긴 했지만, 학생들이 진화 과정의 산물이며 우주에 홀로 있는 존재라고 설득하는데 관해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의미와 목적은 사람들이 찾아보려고만 한다면, 모든 피조물 속에서 – 인간 관계속에서, 만물 속에서, 심지어 그들이 상상으로 만든 ‘ 신’ 안에서조차 – 발견된다. 그런데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언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서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복음에 대해 분노가 증가하는 경향을 설명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청중들에게 사도행전 17장과 14장에서 두 번 주장했다. 유대인과 다르게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이러한 이방 문화에서는 (루스드라에 서 신은 단순히 우상이었고, 아테네에서는 우상숭배와 에피쿠로스 및 스토아 학파의 명백한 물질주의였다) 알 길이 없었다. 어느 쪽이든 우주는 스스로 창조 되었고 초월적인 창조주는 불필요했다. 그들의 믿음이 오늘날 칼 세이건 (Carl Sagan)아니 리차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와 같은 물질주의자들의 믿음과 큰 차이가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상 숭배가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하는가? 분명히 그러하다. 바울이 이러한 청중들에게 어떻게 연설했는지를 생각해보라.
1. 바울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선언하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루스드라와 아 테네의 시민들에게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그들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중요했다. 4 십자가를 설교하기 전에 이것은 필 수적이다. 스스로가 기원에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적절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의 자격이 없다고 두려워하며 이 과정을 피하는 설교자들은 자의적인 메세지를 전하게 된다.
2. 바울은 아테네의 혐오스러운 우상들을 조사했다. 왜 일까? 이러한 우상들은 한 유대인인 바울에게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확실히 바울은 하 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우상들을 조사했다. 바울은 문화와의 연결점을 찾고 있었다. 이것은 아가페 사랑이다. 현 시대의 진화론의 우상을 조사하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간다는 점에 있어서 아가페 사 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3. 바울은 불신자에게 다가갈 때 이유를 두려워하지 않고 증거를 보여주려 했다.
믿음과 합리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복음이 오랫동안 “과학과 종교”라는 수렁에 빠져있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진리가 항상 고통을 겪었다. 그리스도인의 복음은 진리의 복음이다.
4. 바울은 하나님이 생명과 존재의 주인이라고 선언했다. 바울은 기원의 중요성을 이해했고 헬라인들이 고대부터 갖고 있었던 세 가지 중요한 철학적 질문 들을 정확하게 정의했다. 그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했다. 그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가지 질문 모두에 대한 유일하고도 충분한 원인임을 선언했다.
5. 바울은 이방신들의 무력함을 보 였다. 생명의 주인, 인류의 조상, 그리 고 나라의 기초, 식물의 제공자, 그리 고 최후의 심판자인 하나님을 높임으 로서 우상들의 무능력이 노출되었다.5 부활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증명이었다.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 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1)
6. 바울은 하나님의 대사처럼 말했다. 그의 연설은 “…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와 함께 끝났다. 이 구절에서 동사는 선언하다 또는 명령하다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는 설교를 거의 듣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직 신적인 권위와 함께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의 설교가 그의 복음이 아니라 하 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적대적이었던 대학 캠퍼스의 군중에게 전했던 그 목사의 즉석 복음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 창조자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당신이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오늘날 우리 세대에 만연한 물질주의를 생각해보라. 우리의 문화는 이방 문화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창조주는 반드시 중심이 되어야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 (God who is there)이 계신다. 그리고 그는 침묵하지 않으신다 (He is not silent).
1. 2012년 6월, 칙필에이 (Chick-Fil-A: 미국의 프랜차이즈 닭고기 음식점)의 CEO는 동성결혼을 “선동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2. 1925년 테네시 주의 대이튼 시에서 일어난 스코프스 재판 (원숭이 재판)은 미국 역사의 큰 전환점이었다. 이때 진화론은 “인정될” 전조였고 기독교는 공적으로 조롱을 받았다.
3. 2008년 개봉된 영화 추방된 자들: 허용되지 않는 지성 (Expelled: No Intelligence Allowed)은 여러 대학교 교수들이 단지 진화론에 회의적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출된 일들을 담았다. 제리 버그먼과 캐빈 워스가 제작한 영화 반대자들의 학살 (Slaughter of the Dissidents) 또한 학문적 자유를 제한하는 많은 사례들을 영화화 했다.
4. 바울은 자연을 통해 (롬 1:20)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증언하는데 자신 있었다 (롬 2:14-16).
5. 우상은 언제나 특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공격한다. 그러나 신약과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상을 조롱하고 넘어뜨리며 경고하셨다 (출 32:1-6, 20-24; 유 6:25-27; 시 115:4-8; 사 40:18-26, 41:6-7, 22-24; 44:9-20; 45:9-10, 20-21; 렘 10:2-5, 8-12; 14:22; 51:17-19; 롬 1:21-25; 고후 10:3-6; 요일 5:21). 우상 숭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