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o We Know Bible is True(II): Ch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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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빠진책들?

 바울 사도가 교회들과 서신을 주고받을 때조차 위조범들은 존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들에게 편지하며, 그는 그들이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할까” 걱정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2). 바울은 서신을 기록할 때, 그가 말한 것을 기록해 주는 서기관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신자들이 그 편지가 위조가 아닌, 바울에서 온 것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그의 서신의 끝에 친필로 서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는 그의 “표시” 혹은 서명을 언급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7).

추가적으로, 사도인척 한 어떤 사람들은(요한계시록 2:2, 고린도후서 11:5) 진리를 왜곡하고 오직 창시자들에게만 이해되는 숨겨진 “지혜”를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교회를 안심시켰습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고린도후서 4:2).

그러면 이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기록했습니까? 1세기의 교회는 어떻게 위조범들과, 거짓 글들로부터부터 진리를 가려낼 수 있었습니까?

위대한 사도들 위조범들

기독교 공동체 초기에, 진리에 대한 특별한 깨달음이 있었다고 주장하거나, 예수님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거나, 사도들로부터 온 것처럼 편지를 위조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단지 가장 중요한 몇몇 집단을 다루겠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초기의 이단들 중 가장 위험하고 광범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 이단의 초기적 형태는 신약의 바울과 요한 사도를 목표로 한 듯 보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gnosis)로부터 왔으며, 그들은 구원이 그들의 글에서 밝히는 비밀스러운 수수께끼를 깨닫는 개인적 계몽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다른 지도자들과 믿음을 가진 몇몇 분파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그들 모두는 구약을 악하고 열등한 신이 만든 것이라고 폄훼했고, 자연적, 물질적 세계는 그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물질적 세계는 영적인 세계에 반하여 악한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이 자아 계몽을 통하여 받을 수 있으며, 그들이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여긴 육신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깨달음을 주시는 사람이지만, 4복음서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모습과는 매우 다릅니다.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단지 실재 사람이라고 믿었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직전,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믿었습니다. 많은 영지주의자들은 이 대체자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믿었습니다.

마르키온은 A.D. 144 여름에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영지주였는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영지주의의 많은 관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마르키온은 구약을 거부했고, 누가복음의 일부와 그가 편집한 바울의 10편의 편지만을 이용했습니다. 마르키온은 로마 교회에의해 재판에 넘겨졌고, 이단죄로 유죄가 선고되어 파면되었습니다.

마르키온과 동시대에 살았고,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발렌티노는 영향력있던 영지주의 지도자였고, 나그함마디 본문 중 하나로 알려진 “진리의 복음”을 사용했습니다.

바실리데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고, 영지주의자들 중 가장 능력 있고, 문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견해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24권의 책을 썼습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 중 하나였던, 이레내우스는, 이 책들은 “그의 교리를 어마어마하게 발전시킨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책들의 일부만이 남아있지만, 바실리데스는 그리스 신화와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에 못박혔고 예수님은 그 동안 시몬의 형상을 하고, 옆에 서서 그들을 비웃었다고 하는 “사실”을 포함한, 왜곡된 복음서의 기록들을 제시합니다.

이레내우스는 또한 예수님이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라고 믿었던 영지주의의 한 종파를 이끌었던, 카포크레이트를 공격했습니다. 아마도 “마가의 비밀복음”은 이들로부터 나왔으며, 이레내우스는 그들의 추악한 야간 의례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마르커스는 발렌티누스의 제자였으며, 이레내우스가 마르커스주의자들을 책망했을 때, 그는 특별히 “그들 자신이 위조하였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당황하게 하며, 성경의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셀 수 없을 정도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겉으로만 그럴싸한 글들”을 만들어낸 것에 대하여 책망했습니다. 아레내우스는 “진리의 복음”에서 발견된 많은 그들의 거짓말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영지주의 양성소에서 초기 몇 세기동안 나온 거의 대부분의 거짓 기록들이 나왔으며, 이러한 거짓 기록들이, 7세기의 이슬람에 의한 기독교에 대한 첫번째 오해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코란은 영지주의에 의해 퍼트려진, 오랫동안 신빙성이 없다고 여겨진 이야기들을 영속시켰습니다.

몇몇 거짓 복음들

교회의 초기 몇세기 동안, 사도들로부터 온 것처럼 위조된 편지들이 나타났습니다. Pseudepigrapha 로 알려진 이것들은 문자적으로 “거짓 기록”을 의미하지만, 어떤 개인이 쓴 것으로 거짓 주장하는 글들을 가리킵니다. 아마도 총 60여 편의 이러한 글들이 있습니다. 거짓 복음서들은 종종 “출처가 불분명한 복음서”로서 언급되는데, 이러한 글들은 약 12편이 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몇몇 “복음서들”은 종이 파편에 불과하지 않으며, 그중 어느 하나도 신약의 정경으로 포함될 것으로 고려된 적이 없습니다.

헤롯의 편지 (위조범은 불행하게도, 예수님 탄생의 헤롯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의 헤롯이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빌라도의 편지, 아리마대 요셉의 편지, 혈루병에서 치유받은 여인의 편지 (마태복음 9:20-22), 바울과 세네카(로마의 철학자이자 네로의 가정교사) 사이의 서신서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편지와 같은 희한한 위조문서도 있습니다. 오늘날 그 누구도 이러한 문서들이 진짜라고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유다복음 (The Gospel of Judas)

2006년 4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이레내우스가 “그들이 유다복음이라고 거창하게 부른…. 허구의 역사”라고 부른 때 (A.D. 180)부터 알려져 왔으나,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거짓 복음의 조각을 발표했습니다. 어리석게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그들의 발표가 “믿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발견된 파피루스는 아무리 일러도 A.D. 220년이라는 연대가 추정되었으며, 아레내우스가 A.D. 180에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초기 문서의 필사본임이 명백합니다.

유다복음은 “예수님이 유월절 며칠 전 가롯 유다와의 대화에서 말씀하신 계시에 관한 비밀 기록”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구약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자들을 비웃으시며, 유다에게 그가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한 유일한 제자였다고 안심시키는 이야기를 합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그는 “다른 모든 제자를 능가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옷입은 사람을 희생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예수는 십자가로 갔지만 그리스도는 가지 않았다는 영지주의적 관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유다에게 그를 배반하도록 격려하며, 이는 유다를 이야기의 영웅으로 만듭니다. 질문의 여지 없이, 이것은 영지주의적 기록입니다. 왜 유다복음이 3,4세기 경에 모래 아래로 사라져 버렸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서재에도 있을 만한 가치가 없으며 – 그렇지도 않습니다.

도마 유아기 복음 (The Infancy Gospel of Thomas)

아마도 2세기 중엽 쓰여진, 도마 유아기 복음 (내그 함마디 도서관의 일부인 도마복음과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은, 하나님이 침묵하시기로 한, 12살까지의 예수님의 일생의 간극을 메우려고 합니다. 그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인이자, 철학자인 도마의 주님의 어린시절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

예를 들면, 다섯살 때, 예수님은 진흙으로부터 12마리의 참새를 만드셨고, 그가 박수치자, 진흙참새들은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이 이야기 직후에는, 예수님의 기적을 망친 어떤 소년이 예수님에 의해 벌을 받고, 곧 “완전히 말라죽게된”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향해 어깨로 돌진한 한 소년은, 예수님이 저주하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습니다. 예수님의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예수님을 꾸짖은 사람들은, 눈이 멀게 되거나 다른 형벌을 받았습니다. 더 긍정적인 면으로는, 예수님의 뛰어난 지혜가 그의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으며, 아픈 사람들을 고치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들을 살리게 했습니다. 누가복음 2:42-52에 기록된 것과 비슷한, 예루살렘에 홀로 남겨진 이야기는 저자가 복음서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유아기의 아랍 복음 (The Arabic Gospel of the Infancy)

이 기록은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이 이집트로 도망쳤을 때 어떤일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이 8세기보다 훨씬 이전에 쓰였는지는 의문이 갑니다. 그러나 명백하게 저자의 의도는 많은 기적을 행한 마리아의 위상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두 강도를 만나고, 어린이 예수님은 이들이 나중에 자신과 함께 못박힐 것을 예언하기까지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예수님은 7살때, 진흙으로 동물들과 새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걷고 날아가게 합니다. 이 기록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몇몇 구절들은 저자가 복음서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허위의 마태복음 (The Gospel of Pseudo Matthew)

허위의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축복받은 마리아의 탄생과, 구원자의 유아기에 관한 책. 축복받은 전도사 마태에에 의해 히브리어로 기록되고, 축복받은 장로 제롬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됨.” 초기의 필사본은 5세기로부터 나오고, 마리아 숭배를 격려하기 위해서 쓰여 졌습니다.

마리아는 음식을 그녀와 자주 이야기하던 천사로부터 받은 완벽한 어린이로 제시됩니다. 그녀는 일생을 처녀로 남을것을 결정하였고, 결국 요셉의 보살핌을 받기로 합니다. 마리아는 성령님에 의해서 잉태되었고, 많은 꾸밈이 포함되지만,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복음서와 다소 비슷해 집니다. 중요하게, 누가복음 2:1-2가 말 그대로 인용되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많은 상상으로 꾸며낸 구체적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이야기는 명백히, 5세기에 널리 퍼졌던, 마리아가 계속 처녀로 남았다는 견해를 반영하며, 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하여 몇몇 기적들이 추가되기조차 했습니다. 이야기는 아기 예수님의 할례, 동방박사의 방문, 헤롯에 의한 베들레헴 남자 아기들의 살육, 이집트로의 피난으로 이어집니다. 이집트의 우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다양한 기적들이 묘사됩니다. 이로부터, 이야기는 예수님의 유년시절로 전개되며, 몇몇 이야기는 도마 유아기 복음의 내용을 반영합니다.

베드로 복음 (The Gospel of Peter)

이 짧고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는 약 1886년 프랑스의 고고학자에 의해 이집트의 사막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2세기 중엽에 기록된 것 같은 원본의 필사본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재판으로 시작되며, 헤롯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데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가정합니다. 로마의 통치자만이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으므로, 이것은 즉각 늦은 기록 연대와 작가의 부족한 역사적 지식을 배신합니다. 처음의 역사적 실수로 조명해 보면, 추가적인 구체적 묘사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야기는 무덤으로 왔던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이 부분은 복음서의 기록과 매우 근접합니다. 베드로는 그 후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말하며, 제자들 모두가 두려워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이야기는 갑자기 끝나며, 나머지는 소실되었습니다.

베드로복음은 예수님의 재판과 죽음에 관하여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문서적 효력이 없으며, 다시금, 왜 이것이 초대 교회에 의해 거짓된 것으로서 거부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히 베드로에 의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마가의 비밀복음(The Secret Gospel of Mark)은 현존하지 않으며, 그것을 “위조문서”라고 평가절하 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쓴 편지에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 (The Gospel of the Lord)은 전반적으로 A.D. 130년 경의 누가의 복음의 개요입니다. 목수 요셉의 역사 (The History of Joseph the Carpenter)는 아마도 기원후 4세기에 기록되었으며, 마리아가 계속 처녀로 남았다는 후대의 견해를 지지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의 일생에 관한 우리의 이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울과 테클라의 행적 (The Acts of Paul and Thecla)는 아시아의 한 장로에 의해 창작되었으며, 그는 “그가 바울을 사랑해서 그렇게 했다고” 인정했습니다. 4세기의 누군가는 바울이 골로새서 4:16에 언급한 편지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라오디게아인들에게 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간략하며, 골로새 교인들이 메신저를 라오디게아로 보내 필사본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보다 더 믿기 어려운 위조를 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베드로의 설교, 베드로의 행적, 베드로가 말하는 종말 역시 그것이 위조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며, 1,2 세기의 교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적이 없습니다.

나그 함마디 도서관

1945년, 한 소작농이 나일강의 동쪽 제방 위에 있는 나그 함마디 마을 근처의 모래 아래에서, 52개의 독자적 문서들을 포함한 13 권의 책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은 5세기 경 기록되었지만, 아마도 3세기 정도의 문서의 필사본으로 여겨집니다. 심하게 훼손된 문서들은 1977년 영어로 번역되었고, 초기 영지주의의 믿음에 관하여 우리가 그들 자신이 기록한 것들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기록들은 “지루하고 장황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나그 함마디의 대표적인 책들만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리의 복음 (The Gospel of Truth)

진리의 복음은 나그 함마디의 책들 중 영지주의적 생각을 가장 온전히 표현하는 책이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약 2세기 중엽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영지주의자였던 발렌티누스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모호한 영지주의적 사랑을 드러내며, 표현과 사상은 정경의 4복음서와 매우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 주제는, 성부에 대한 무지는 어두움이며, 어두움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음으로써 떨쳐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전적인 영지주의입니다.

진리의 복음은 구원에 관한 신약의 기록과 그 어떤 유사성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기독교 영성이라고 전혀 생각될 수 없는 철학체계입니다. 기원후 180년까지 이레내우스는 이 소위 “복음” 이라고 하는 것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회자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진정, 그들은, 그들의 비교적 최근 글의 제목을, 그것이 사도들의 복음과 전혀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복음 (The Gospel of Truth)라고 이름지음으로써, 최고로 뻔뻔함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복음이 아닌, 진정 신성모독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그들이 출판한 것은… 우리가 사도들로부터 전수받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도마복음 (The Gospel of Thomas)

도마복음은 (도마 유아기 복음과는 다릅니다) 아마도 내그 함마디 문서 중에서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는 114 개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 중 많은 것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들과 유사합니다. 어떤 것들은 복음서들을 직접 인용한 것이고, 따라서 저자는 복음서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나머지 부분들은 모호하거나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레내우스는 도마 복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고, 그는 영지주의 문서 대부분에 대해서 익숙했기 때문에, 도마복음이 A.D. 180년 이후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사도들이 죽고, 4복음서들이 널리 알려진 한참 후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파괴된 이유들 중 하나는, 그것들이 1세기 교회에서 여성들의 리더쉽에 대한 긍정적인 역활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를 밝혔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도마복음”의 다음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시몬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마리아로 하여금 우리를 떠나게 합시다. 여자들은 생명을 가질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녀 또한 너희 남성들을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그녀를 남자로 만들기 위해 내 자신이 그녀를 이끌 것이다. 남성으로 된 모든 여성들은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빌립복음 (The Gospel of Philip)

빌립복음은 본질적으로 영지주의적 사고의 안내서입니다. 그것의 많은 부분은 모호합니다. 빌립복음의 견해가 무엇이든간에, 우리의 4복음서가 명료하고 간결하다는 것을 감사하지 않고거 그것을 읽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분명히, 이것은 그 몇몇 표현들이 이단적이기 때문에, 주류 기독교 가르침 바깥에 있었던 사람의 작품입니다. 예를 들면, 이책은 동정녀 출산을 부인하며, 실수를 통해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빌립복음이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에 대해서 소개한 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셨다는, 매우 과장된 주장을 하게 합니다. 사실, 이 책은 그러한 주장을 실재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생각들이 상상되었습니다.

마리아 복음 (The Gospel of Mary)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실재로 무엇을 말했다고 하는 것인지를 평가하기란 매우 불가능합니다 – 약 1000 글자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빌립복음과 같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그 어떤 것도 알 수 있게 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복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오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신비주의적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제자들은 절망했고, 막달라 마리아가 그들을 분발하게 하여 행동하게 하고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비밀을 전달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은 정보를 가지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지주의의 신비를 확증하는 것 이상으로 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사도들보다 더 뛰어난 영성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밝힙니다. 그녀가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제안할 만한 것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집트인들의 복음 (The Gospel of the Eguptians)

나그 함마디 도서관에서 가장 이상한 문서는 이집트인들의 복음입니다. 몇몇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것을 언급하지만, 그것이 거짓된 것이라며 거부했습니다.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고, 그것을 어떻게라도 복음이라고 부를 근거는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적 이야기나 기독교 종교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종교적인 글을 쓰려 한 것이 아닌, 단지 미친 사람이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사랑받은 에우그노스토스”에 의해서 기록된 그 책은, “위대한 보이지 않는 영혼의 거룩한 책”이라고 주장하며, 거짓의 상징물과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왜 이러한 괴상한 철학에 반대하는 데 그토록 단호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동일하게 이러한 문서들이 이집트의 모래 아래 1800년 동안 묻혀 있었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The Apocryphon of James

이것들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베드로에게 알려진 비밀 계시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제자들간의 대화의 형태이며, 명백히 이 책의 내용은 예수님이 “12제자 모두에게 알리기를 원치 않으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어째서 그러했는지를 상상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들은 비밀에 붙혀져야 할 성질의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특정 지식에 조금도 더 추가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다음과 같은 것을 공개적으로 혹은 비밀리에 말씀하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성부께서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 가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필요로 한다. 성자의 아버지는 너희들이 필요 없다.”

몇몇 굉장한 허구

감사하게도, 교회에 진리를 강력하게 변호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첫 2세기 동안 폴리갑, 저스틴 마르터, 이레내우스, 그리고 터툴리안과 같은 존경받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거짓 기록들을 진리로부터 구별해 내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무라토리의 카논은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쓸개즙이 꿀과 섞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가장 능력있던 두명의 지도자인, 카르타고의 터툴리안 (115-220)과 리용의 이레내우스는 마르키온과 발렌티누스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터툴리안은 이 두사람의 방법을 대조합니다:

“마르키온은, 그 자신의 주제에 맞게 성경을 삭제했으므로, 공개적으로 펜이 아닌, 칼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발렌티누스는, 이러한 삭제를 삼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특정 단어의 올바른 뜻을 제거하고, 실존하지 않는 것들의 기상천외한 배열을 추가함으로써, 더욱 많이 삭제했고 더욱 많이 추가했기 때문입니다.”

이레내우스는, 그의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책, Against Heresies 에서 그가 당시의 거짓 문서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음을 보이며,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그들 모두는 그들의 능력에 맞게 새로운 것들을 매일 만들어 냅니다; 그 만들어진 굉장한 거짓말들 중 완벽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4세기 초,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축출되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을 거의 겪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교회들 중 일부는 출처가 분분명한 글들을 얼마간 정경으로서 받아들인 적이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당시 대부분의 교회가 믿었던 것을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현대의 이단집단의 견해가 오늘날 교회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따금 몇몇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출처가 불분명한 문서를 암시한 것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에서 언급된 소위 “복음서들”을 언급한 것은 아니며, 이러한 출처가 불분명한 글들에게 신약성서와 같은 권위를 부여하지도 않았습니다. 몇몇 흩어진 잡초가 전체 들판을 묘사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이러한 출처가 불분명한 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어떤 글들은 서서히 진행된 로마 카톨릭의 오류를 강화시키는 데 유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목수 요셉의 역사는 로마 카톨릭의, 마리아가 영구히 처녀로 남았다는 교리를 지지합니다. 다른 많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은 중세시대에 인기가 많았던 교훈극과 기적극, 예술 작품, 그리고 성무일도서 그리고 후대의 크리스마스 캐롤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황소와 나귀가 아기 예수를 흠모하는 이미지는 사이비 마태복음 (The Gospel of Pseudo-Matthew)로부터 직접 나온 것입니다. 7세기의 마호메드가 4복음서보다 출처가 불분명한 복음서에 더 익숙했던 것은 슬픈 역사입니다. 슬프게도, “더 오래된 진리보다, 덜 오래된 거짓이 선호되었습니다.”

교회에 좋은 책들

이러한 이상하고 모호한 영지주의적 가르침과 4복음서의 간극을 매우려는 시도 외에도, 초대교회 지도자들에게 읽히고, 인용되기까지 했던 좋은 책들도 있었습니다. 디다케는 정통적인 믿음과 일치되는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바나바의 서한과 헤르마스의 목자는, 가끔 상상속에 나오는 듯 하거나, 환영적이긴 하지만, 교회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클레멘트, 이그나시우스, 폴리갑, 저스틴 마르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및 다른 사람들의 진짜 편지는 정도에 따라 가치가 있었으며, 그 시대에 인기가 있었지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정경으로 인정된 적은 없으며, 그들도 결코 그것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진실성이 빠져있다

우리는 거의 3년에 걸친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의 작은 부분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도 요한 자신도 선언하듯,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0:31, 21:25).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신약을 잘 읽은 사람들은 출처가 모호한 복음들의 완전히 다른 문학장르를 인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문학학자이며 비평가인 C.S. 루이스는 이러한 독자는 그 자신이 찾을 지 모른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때, 이 점을 잘 표현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좋은 말이지만 그의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약 학자인 부루스 메츠거 가 지적하듯이, 어떤 것들은 복음을 보충하려 하고, 다른 것들은 4복음서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Some set out to supplement and others to supplant the four Gospels). 그러나 그것들의 시도는 어리석습니다: “진실성 (ring of truth)” 이 결여되어 있고, 역사적 배경이 부정확하며, 기적들은 자주 경솔합니다. 보통 조심스럽고 차분한 저자였던 메츠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정경의 복음서들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으며, 2, 3세기부터 나온 대부분의 복음의 따분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지 4권의 복음서만이 교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고 하는 것이 성경에 관한 단순한 사실입니다. 가장 초기의 기록으로부터, 그 어떤 다른 복음도 신약의 정경의 한 곳을 차지할 후보로서 고려되었던 적조차 없습니다. 거짓 “복음서들” 대부분은 우리에게 완본이 아닌 부분들로만 알려져 있으며, 교회에 의해서 신뢰할 수 없기에 거부되었으며, 읽혀지지 않았고, 결국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그것들의 중요한 가치는, 대조적으로, 신약의 복음서들의 아름다움과 단순함, 그리고 진실성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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