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o We Know Bible is True(II): Ch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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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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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종교 개혁은 교회 내의 분열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몇세기동안 쌓여왔고 마침내 일어난, 매우 필요했던 분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실수로부터 진실을, 암흑으로부터 빛을 끄집어 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진 이래, 16세기에 전개되기 시작한 종교개혁보다 더 큰 사건은 교회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gates)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는, 놀라운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성경에서 “gates” 는 성문이 한 성읍의 근거지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 정문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권세와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 , 권세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성문은, 서구인들에게 있어서 시청과 다름없습니다. 중요한 일처리는 성문에서 행해졌습니다.

주님께서 그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고, “음부의 권세 (gates of Hades)”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을 때, 그는 사탄과 죽음의 조직된 권세를 이기신 그의 승리를 그리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사탄이 승리하지 않도록,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종교개혁은 예수님이 그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종교개혁은 미신과 타락, 비성경적 생각들과 율법주의의 진흙탕에 빠진 시대에, 진정 성경에 기반한 기독교의 회복을 추구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착수

우리가 종교개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한꺼번에 시작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교회가 소멸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월절 교회가 시작된 날부터, 그리스도는 늘 그의 백성들을 소유하셨습니다. 처음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교인들은 가정과 공공장소에서 모였고, 약 3세기 중엽에 결국 건물에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의 오심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은 항상 그의 백성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모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조직되고, 가시적인 교회가 너무도 타락하여 교회 내의 개인들이 교회를 개혁하려고 추구한 때가 있었습니다 – 그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돌이키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들을 “개혁가들”이라 칭합니다. 개혁가들은,  존 녹스, 존 칼빈, 하인리히 벌링거, 필립 말랑크톤, 토마스 크랜머, 휴 라티머, 및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모하여 로마교회를 반대하는 것은, 이르게는 8세기 부터 폴리시언파, 보고밀파, 그리고 베긴회파 와 같은 몇몇 집단들 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이후 12세기와 13세기에, 알비파와 발도파라는 이름의 집단이 남부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 지역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초기에 공격을 선봉에서 이끈 한 개인을 꼽으라면, “개혁의 새벽별”이라고 적절하게 불린 옥스포드의 학자 존 위클리프일 것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4:4의 “때가 차매”의 메아리로써 루터와 1517년 위템부르크의 성 교회의 정문에 붙은 95개조의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타락한 교황과 수도원주의의 변화,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과 그리스어 신약의 출판과 연결된 학문적 사상의 부패 모두는 사치와 고행, 실적제와 억압의 카톨릭 교회 시스템으로 쇄도한 사상의 쓰나미에 기여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신학적 논쟁으로 도전하기 위하여, 논지를 교회 정문에 못박는 관습적인 행위는, 우리의 언어로 하자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기” 위한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독일에서의 개혁과 거의 동시에, 스위스에서도 변화가 찾아왔고, 그 다음 영국과 스코틀랜드, 프랑스, 그리고 네델란드와 다른 유럽국가들로 번져 갔습니다.

보다 최근의 학문적 연구결과는, 때때로 종교 개혁의 “좌익” 혹은 “제 2선”이라고 불린, 유럽의 거대한 운동을 조명했습니다. 더 일반적으로 “재세례론자”들로 총칭해서 불리는 이들은, 메노파, 모라비안파, 후터파, 휴제노트파 등을 포함합니다. 이들에 관해서는, “카톨릭 당에 대항한 고통은, 제 2선이 당한 고통에 비교하면, 단지 어린아이의 장난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 스위스의 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의 말을 통해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아마도 모든 개혁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고 잘 알려졌기 때문에, 그와 로마 카톨릭 간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가 어떤 면에서는 일반적이고 이야기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아이셀벤에서 태어났고,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엄청난 희생을 통해,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법대에 보냈고, 그는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 중 하나였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도서관에서 라틴어 성경을 발견함으로써, 성경을 처음 접했습니다.

1505년,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거센 폭풍 속에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통해, 루터는 법을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적 평안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그의 영적 상태에 대해 두려워했고, 그가 그의 친구처럼 거센 폭풍우 속에서 갑자기 죽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해 했습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1505년에 성 어거스틴의 신부가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루터가 법대에서 라틴어 성경을 읽을 때 주님이 그의 삶을 만지셨지만, 에티오피아 내시처럼, 그는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당시 루터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기도와 금식, 선행과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려고 애쓰다가 지쳐서 방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을 때, 요한 본 스타우피츠 라는 어거스틴교 수(首)신부(?) 는 루터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루터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용서를 구할 것과, 그리스도가 먼저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사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두려워했습니다.

1507년 5월, 그는 주교로 임명되었고, 1508년 위텐버그 대학의 교수가 되도록 초빙받았습니다. 대학에서 일하면서, 1510년, 루터는 거룩한 제사장들과, 주교, 그리고 신부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대신, 그는 타락한 교회를 보았습니다…부를 축적하며 살아가고,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을 믿기조차 하지 않는 성직자들을 보았습니다. 그가 용서를 발견할 것을 기대했던 “거룩한 계단”으로 올라가는 루터의 무릎의 성지 순례와 함께, 이 사실은 그를 혼동스럽게 했고, 루터는 왜 자신이 평안을 찾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루터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용서를 깨닫도록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그 후 2년동안, 루터는 로마서를 공부하며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약 1515년에, 그는 로마서 1:17을 묵상하고 있었고, 그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구절은 그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개인적 확신을 갖게끔 했습니다 – 오직 믿음을 통해서.

그는 그의 로마서 주석의 도입부에서, “저는 다시 태어났다는 것과,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구원은 노력에 의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받아야만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루터의 인생은 급진적으로, 영원히 변했습니다. 그는 이제,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원에 근거한 구원을 발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열열히 바랬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단순한 메세지가 선포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요한 테첼이 그가 살던 위텐부르크에서 면죄부를 파는 것을 목격한 루터는, 교회를 변회시키거나 “개혁시킬” 필요가 있다고 명백히 깨달았습니다. 면죄부란, 교황의 이름이 적히거나 도장찍힌 종이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가 죽을 때 사면된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종이였습니다. 돈을 조금 내면, 연옥을 회피할 수 있으며, 천국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옥은 로마 카톨릭이 믿었던, 영혼이 “제거”되거나 깨끗해지는 가상의 장소입니다. 그 당시의 유명한 구호는, “헌금 상자에서 동전이 땡그랑거리면,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튀어오른다 (When the coin in the coffer rings, the soul from Purgatory springs)” 라는 것이었습니다. 면죄부를 판매한 돈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다시 짓는데 쓰여졌고, 또한  교황과 주교들의 사치스러운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데 쓰여졌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마틴 루터로 하여금 1517년 10월 31일 위텐베르크의 교회 정문에 유명한 95개 조항을 붙이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로마 교회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루터가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정문에 문서를 붙이는 것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학문적 관습이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정문에 붙혀 졌기 때문에, 그것은 논쟁으로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루터의 주장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많은 관습과 교리적 입장에 도전했습니다. 이 문서는 처음에는, 학문적 언어였던 라틴어로 기록되었지만, 곧 거의 대부분의 유럽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일반인들은 곧, 어떻게 루터가 확립된 교회에 도전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하나님이 개혁을 시작하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루터와, 루터같은 사람들은, 교회의 타락이 끝나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선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루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많은 성직자들이 루마의 확립된 교회 수뇌부에 대하여 “대항했기”  때문에, 이 운동은 “개혁신앙 운동(Protestant Reformation)”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종교 개혁의 중심적인 교리였을까요?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가들은 무엇을 믿고 있었을까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개혁가들이 특정 교리적인 주제에 관하여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이 다른 교파로 갈라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본질적이고 타협할 수 없다고 여긴 것에 대한 교리적 연합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교회의 건강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믿었던 이러한 타협 불가능한 교리들은 종교 개혁의 Solas 가 중심이 됩니다. Sola 라는 라틴어는 영어로 “alone” 혹은 “only”라는 뜻을 갖습니다. 종교 개혁 기간, 종교 개혁 운동의 기반이되는 교리를 대표하는 다섯개의 solas 가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다섯개의 중심적 진리를 이해하지 않고, 종교 개혁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Sola Scripture: 오직 말씀으로

Sol scriptura 는 성경이 유일하게 영감을 받고, 실수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이 말씀하실때 우리가 말할 수 있고, 성경이 권위가 있을 때 우리가 권위있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 말씀이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성경이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에 대한 문맥적, 역사적, 문자적 해석의 중요성을 묵살하지 않으면서, 루터와 다른 개혁주의자들은 오직 교회의 리더들만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루터가 보았을 때, 로마 카톨릭에는 성경의 영역을 벗어났거나,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관습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개인이나 교회가 믿는 모든 것들은 무언가에 기반해 있다는 진리를 이해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결론적으로,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거나, 혹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따라서, 진리를 확인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시험지는 sola scriptura 였습니다.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Sola Gratia 는 구원이 노력이나 선행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아무런 공로를 요구하지 않고 주시는 호의에 근거한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거짓 교사들이 스며들어 온 갈라디아 교회에게, 은혜에 의한 구원에 대한 변론을 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21; 로마서 5:15). 우리는, 오직 은혜에 의한 구원이라는 바울의 말을 다음과 같은 다른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가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신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님은 그의 목숨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주시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 10:17-18).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이 전개되는 양상은, 예수님이 그의 생명을, 완벽한 죄의 대속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주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 18). 개혁주의자들은 이것이 공짜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이 로마교회에 쓴 편지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로마서 11:6).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아닌, “그의 은혜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다”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디도서 3:7). 개혁주의자들에게, 구원은, 성경에서 밝혀진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죄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 홀로 일하셨기 때문에, sola gratia 는 개혁 신학의 다섯가지 근본적인 믿음들 중 하나입니다.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는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근거하여 얻어질 수 있다고 하는 가르침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은혜에 의해, 오직 믿음을 통하여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지치지 않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칼빈, 츠빙글리 등 모두는 sola fide 를 “물질적 원칙”으로 언급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누군가 구원받기 위하여 이해하고 믿어야만 하는 바로 그 “문제 혹은 물질”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만약 누군가가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외에 다른 것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오직 믿음의 가르침은, 오직 은혜의 교리로부터 흘러 나옵니다. 구원은 온전히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받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단순한 진리는 성경 전체를 걸쳐 수많은 구절에서 발견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했을 때, 그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라고 기록했습니다.

16세기의 조직된 교회가, 인간은 구원을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거나, 그의 행위로 부분적인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sola fide를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의로운 행위는 구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구원받는 데 도움을 줄 수 조차 없으며, 의로운 행위는 진정한 개종의 증거와 열매일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온전히 믿고 신뢰함으로 인해서만이 우리는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루터의 시대의 로마 카톨릭 교회는 믿음과 의로운 행위를 통해 의롭다 여기심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의롭다 여기심을 받게 되며, 선한 행위는 뒤따라온다는 것을 강조한 개혁주의자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다른 말로 하면, 카톨릭의 신학에서는, 구원을 위한 부분적인 전제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더불어 의로운 행위가 고려됩니다.

성경적 신학과, 개혁 신학에서 선한 행실은 그리스도를 믿게된 사람의 결과와 증거라고 봅니다. 오직 믿음에 의한 의롭게 여기심을 받는 것은 개혁주의자들이 sola fide 로서 이해한 것입니다.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말씀만이 우리가 믿는 바를 결정하는 최종 권위이므로 (sola scriptura), 개혁주의자들은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sola gratia), 오직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만(sola fide)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눈앞에서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하여 용서받았고 깨끗하다고 여기심을 받았다고 선언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이라고(solus Christus) 가르쳤습니다.

마틴 루터의 시대동안, 중세 교회는 명백히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교회는 명목상의 교회라고 주장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구원이 온전히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라고 더이상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사역 위에 추가적인 많은 인간의 노력을 더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 그리고 부활이 공로 없는 구원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이단적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러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다른 예수님”을 가르치는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4). Solus Christus의 격언은 예수님의 죄 없으신 삶과 대속적인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이미 이루신 일 위에 그 어떤 것도 더해질 수 없다고 확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진리를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그 어떤 “복음”도 다른 복음, 혹은 거짓 복음이며, 따라서 그 누구도 구원할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6-9).

개혁주의자들은 죄를 짓지 않으신 구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몸소 지시고  “우리를 위한 죄”가 되셨고, 회개하는 죄인들은 오직 이 사실에 근거해 의롭다 여기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21; 베드로전서 2:24).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한 우리의 죄악과 수치는 그리스도께로 전가되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올 때, 우리는 그분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에대한 댓가를 온전히 치루셨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해 가지셨던 모든 명령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요한복음 19:30; 히브리서 10:10-14), 더이상 종교적 예식이나, 성만찬 테이블에서 계속된 희생을 구하거나, 성직자나 성인들 혹은 예수님의 모친을 통한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Solus Christus 는 오직 그리스도가 구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오직 한분의 중재자만이 계시며, 그는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디모데전서 2:5; 사도행전 4:12; 요한복음 14:6). 추가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의 죄악을 위한 완벽하고도 완전한 대속이었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이며, 우리 자신을 위한 제사를 드릴 때, 인간 제사장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나 성직자들이,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오늘날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제사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가리기 위한 제사가 아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우러나오는 감사인 것입니다. Solus Christus 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의 초대였습니다.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각각의 위대한 solas 는 다섯번째 개혁의 구호인 soli Deo Gloria 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이라는 뜻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당시에 인기 있던 신학에서 인간이 그 자신의 구원을 얻는데 스스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당시의 기성 교회는 인간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교황과 성직자들, 그리고 공표된 성인들이 오직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빼앗았다고 믿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의 주이시므로, 그 누구도 인간을 높여서는 안되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높여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Soli Deo Gloria 는 정확하게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36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살아야 하며, 인간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타락되었던 기성 교회를 개혁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의 온 마음을 사로잡았던 목표였습니다. 인간 중심의 종교는 인간에 대한 존경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은 주님께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올려 드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7:12) 이라고  말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루터의 파문

1521년, 마틴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서 파문되었고, 이단이라고 선언되었습니다. 그를 죽일 수 있는 자유가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루터를 작센지방의 프레드릭 왕자 소유이 성에서 보호하셨습니다. 루터는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그곳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루터가 “95 개조항”을 위텐베르크의 교회 정문에 붙힌 지 12년 후, 개혁의 운동은 매우 커져서 “개혁주의자 (Protestant)” 라는 말이 카톨릭 교회에 대항한 루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매우 대중적인 단어가 되었습니다.

개혁은, 수많은 사람들을 성경을 최종 권위로 여기도록 바로잡았기 떄문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그들은 구원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얻어지며,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틴 루터와, 그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몇 세기의 역사의 경로를 바꾸었던, 개혁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죽음을 이기심으로 “음부의 권세를 파하실 것이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 생생한 방식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개혁은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에게 하신 그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다시금 개혁을 허락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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