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o We Know Bible is True(I): Ch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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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했는가?

최근 2-300여년 간, 성경은 온갖 종류의 과학적, 그리고 철학적 비평가들에게 공격당해 왔습니다. 과학주의적인 세대에서, 가장 많이 공격을 받은 책은 아마도, 창세기, 특별히 첫 11장이었습니다. 오래된 지구 지질학, 빅뱅 우주학, 세속적 고고학,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에 대한 철학적인 공격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은 사실이 아니며, 따라서 신뢰할 수 없다고 믿게끔 만들어 왔습니다.

지난 300년간 성경에 대한 큰 공격들 중 하나는, 모세와 모세 5경(창세기- 신명기)을 정말 모세가 썼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나머지 성경의 기초가 되는 모세 5경에 대한 공격은 비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기독교인이라 고백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나왔습니다.

신학교 과정, 신학 교과서들, 성경의 모세오경에 대한 도입 설명, 그리고 세속적인 미디어들은 모세가 모세 5경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생각을 장려해 왔습니다. 대신, 적어도 4명의 다른 저자들이  모세 5경의 여러 부분을 여러 세기에 걸쳐 기록했고, 한명 혹은 여러명의 편집자들이 여러 해에 걸쳐, 이를 종합하고 재구성해서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조사한 한 성경은 모세 오경의 도입 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계획과 목적 잘 조직되어 있지만, 이 책은 복잡한 과정이며, 단 한명의 저자의 작업이라고 볼 수 없다. 많은 원문들이나 문학 전통들을 최종 편집자가 편집 과정에서 사용했음을 식별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야위스트(Yahwist(J)), 엘로히스트(Elohist(E)), 그리고 프리스틀리(Priestly(P))등의 더 오래된 구전들을 반영하는 것들이 있다…..

또다른 성경의 구약의 도입부에서 J 문서는 모세보다 훨씬 더 이후에 남유다에서, 그리고 E 문서는 북이스라엘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설들을 방어하기 위해 내놓아진 주장들을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서(혹은JEDP) 가설

이 가설에서, 많은 모세5경의 부분들이 J,E,D, P로 알려진 여러 저자들의 저술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 가설을 문서가설 (혹은 JEDP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이 가설은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여러 유대인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세 오경을 누가, 어떤 부분을 언제 기록했는가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경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일반적인 동의에 이르게 되는데, 각각의 문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J 문서는 하나님을 야훼(여호와)라는 히브리어를 써서 지칭하기 좋아하는 한명 혹은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서 기록된, 부분, 구절, 혹은 구절의 일부입니다. 이 저자(들)가 기원전 약 900-850년 경 기록했다는 제안입니다.

E 문서는 엘로힘(Elohim) 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문장이며, 기원전 750-700년 경 기록되었다는 주장입니다.

D 문서는 신명기(Deuteronomy)를 가리키며, 아마도 요시야 왕의 개혁 때인 기원전 621년 경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입니다.

P 문서는 제사장(Priest) 을 가리키며, 레위기의 문장들과 모세오경 다른 부분의 제사장(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기원전 586년 이후 바벨론에서의 귀환시 기록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약 400년 경, 편집자들이 이러한 네 개의 독립적으로 기록된 문서들을 조합해 모세 오경을 만들었고, 이것이 예수님의 시대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서 가설의 발전

이븐 에즈라는 12세기의 매우 영향력 있는 유대인 랍비였습니다. 그는 모세가 모세 오경의 저자라는 것을 믿고 있었지만, 창세기 12:6, 22:14 같은 몇몇 구절들이 이상하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비밀을 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약 500년이 흐른 후, 유명한 유대인 철학자 바루크 스피노자(1632-1677) 는 이븐 에즈라가 언급한 것을 토대로 에즈라는 모세가 모세오경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믿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븐 에즈라의 다른 언급들을 지적하며, 스피노자의 결론이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범신론자였고, 따라서 유대교 사회에서 파문되었으며, 기독교계로부터 맹렬히 비난을 받은 스피노자가 1670년에 쓴 신정논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에서, 그는 모세가 모세오경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븐 이즈라가 발견한 구절들 이외에, 스피노자는 이후 몇 세기 동안 기독교 저자들에 의해 쉽게 답변된, 모세가 저자가 아니라는 몇몇 간단한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모세오경의 저자라는 것에대한 공격은, “모세의 몇몇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는,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함에 있어서 사용한 듯한 , 최초의 기억에 관한 추측” 이라는 책(1753)을 쓴 프랑스의 쟝 아스트룩에 의해서 더욱더 거세졌습니다. 그는 모세가 모세 오경의 저자라는 것을 믿긴 하였지만,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아스트룩은, 그의 시대 이전 사람들처럼, “어떻게 모세가 그 자신이 살았던 시대 이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는가(예를 들면 창세기에 기록된 역사)”에 대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세는 도대체 어디에서 모세5경의 정보를 갖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세가 이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많은 경로가 가능하겠지요: 하나님의 계시, 오랜 세대에 걸쳐 전달되어 내려온 기록 문서들,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구전 등. 어쨌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베드로 후서 1:20-21), 모세의 책들은 오류가 없는 완벽한 진리로서 기록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스트럭은 또한 엘로힘(Elohim)이 창세기 1장에 쓰이다가, 창세기 2장에서 야훼(Jehovah)로 바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스트럭은 이렇게 이름이 바뀌는 이유는 모세가 각기 다른 원문을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별히 그는  창세기 1:1-2:3이 하나의 창조 이야기 이며, 창세기 2:4-24는 다른 창조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엘로힘 부분과 여호와 부분을 갖게된 것이라는 것입니다(E and J 문서). 결국  “다른 신적인 이름을 사용한 것은 본문의 서로 다른 저자를 의미한다”고 하는 첫번째 문서가설의 가정이 확립되었습니다.

독일의 학자 요한 에이크혼은 아스트럭의 생각을 창세기 전체에 적용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처음에는 “1780년의 구약의 도입부”라는 책에서, 그는모세가 그 이전 세대의 문서를 차용했다고 말했습니다.그러나 그 이후판에서, 그는 다른 이들이 주장하던, J-E 구분이 모세 오경 전반에 적용될 수 있고, 모세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인정합니다.

에이크혼 이후에, 구약의 모세 오경의 저자가 모세라는 것을 부인하는 다른 학설들이 대두되었습니다. 1802년 요한 베이터는 창세기가 적어도 39개의 작은 문서들로부터 구성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805년, 빌헬름 디 베테는 모세 오경중 다윗왕 이전에 쓰여진 것은 하나도 없으며, 신명기는 요시아 왕 때 기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부터 모세 5경의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다는 많은 주장들이 계속되었습니다. J 문서 , E 문서, 그리고 D 문서 뿐 아니라, 레위기와 모세 5경의 다른 부분들이 유대교 제사장들(priests)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되었고, 따라서 P 문서로 명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 다른 문서 가설이 존재합니다만, 가장 인기 있는 가설은 줄리어스 웰하우젠 이 1895년 제시한 것일 것입니다. 웰하우젠은 네 문서에 연대를 부여했고, 그 중 기원전 900년 이전에 쓰여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약학자인 글리슨 아처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웰하우젠은 아무런 언급할 만한 혁신에 기여하지는 않았지만, 문서 가설을, 뛰어난 말기술로써, JEDP 순서를 진화론적 기반으로 지지하며, 재언급하였다.”

아주 많은 학자들과 대부분의 대중들이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말 그것이 사실일까요? 모세는 정말로 창세기와 나머지 모세 오경을 기록함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몇몇 증거들은 우리로 하여금 문서 가설을 불신자의 조작으로서, 따라서 거부해야 할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해 줍니다.

문서 가설을 거부해야 이유들

이러한 성경에 대한 비평적인 공격을 거부해야 할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 자신이 모세 오경의 저자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모세가 저자라는 성경적 증거

  1. 아래의 표는 모세 오경 안에서, 모세가 이 책들을 썼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17:14, 24:4, 34:27; 민수기 33:1-2; 신명기 31:9-11. 웰하우젠은  모세가 저자라는 사실을 거부하며, 위의 성경적 증거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저자라는 사실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무시한다면, 쉽게 거부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직한 학문 활동은 아닙니다.
  2. 우리는 또한 구약의 나머지 부분의 증거도 있습니다: 여호수아 1:8, 8:31-32, 열왕기상 2:3, 열왕기하 14:6, 21:8, 에스라 6:18, 느헤미아 13:1, 다니엘 9:11-13, 말라기 4:4.
  3.  신약에서도 이러한 증거는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9:8, 요한복음 5:45-47, 7:19, 로마서 10:5, 마가복음 12:26. 구약의 구분( 모세오경, 선지서, 문학서)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이미 명확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모세의 법을 말씀하실 때, 유대인 청중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몇몇 참조들은 모세의 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7:22 와 사도행전 15:1은 모세가 할례의 법을 주었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또한, 이것이 창세기에 아브라함때로부터 왔다고 기록합니다. 어쨌든, 그것이 모세의 기록에 적혀 있으므로, 결국 모세가 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약은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의 모든 책이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는 사실에 대한 공격은 성경의 나머지 저자들과 예수님 자신에 대한 공격입니다.

모세가 기록하기에 충분히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모세가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는 충분한 성경적 증거가 있을 뿐 아니라, 모세는 모세오경을 기록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 왕족의 교육을 받았으며(사도행전 7:22), 많은 참조와 암시, 이집트의 장소, 인물 신들 및 이집트의 단어, 숙어, 그리고 문화적 요소등을 포함한,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사건들을 실재로 목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가나안에 대한 외부인적 관점(이집트 혹은 시내)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전해내려오는 기록 혹은 구전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모세를 인도하여 무오한 창세기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고대의 히브리인들 중 모세만큼 모세 오경을 기록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비평가들의 잘못된 추론

문서 가설을 배격하고, 모세가 모세오경을 기록했다는 성경적 증거를 받아들여야할 마지막 이유는, 자유주의적 학자들과, 다른 비평가들의 잘못된 가정과 추론입니다.

  1. 그들은 그들의 결론을 가정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가 아니라고 가정한 후,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성경의 기록을 조작했습니다. 그들은 암암리에 이신론적이거나 무신론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2.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의 종교가 모든 다른 종교처럼 사람이 만들어 낸 것 혹은 진화의 산물로 가정했습니다.
  3. 진화론적 사고 및 가정에 근거해, 그들은 “다윗 왕조 이전에는, 이스라엘에게 글쓰는 기술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모새의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문서적 기록은 존재할 수 없다”고 가정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지적수준에 대한 공격일 뿐 아니라, 모세를 훈련시킨 고대 이집트인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인들이 모세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을까요? 문서 가설이 최초에 제시된 이래, 고고학자들은 모세의 때 이전의 상당히 많은 기록된 문서들을 발굴해 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대의 이웃은 읽을 줄 알았던 반면, 유대인들은 읽을 수 없었다고 믿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4. 자유주의적 성경학자들은 그들이 이론이 성경적 근거에 바탕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이론을 반박하는 성경적 증거들은 회피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선별적 자료수집”방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정직한 학문활동일 수 없습니다.
  5. 그들은 임의적으로 히브리 저자들은 역사의 모든 다른 저자들과 다르다고 가정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히브리 저자들은 하나 이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쓸 수 없었고, 그 주제에 상관 없이 하나 이상의 문체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하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몇가지의 가능한 동의어를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6. 그들의 주관적 편견은 그들로 하여금, 어떤 성경의 문장이 믿을 수 있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신뢰할 수 없다는 불합리한 가정을 하게 했으며(비록 그들이 다른 어떤 고문서나 현대적 문서에 같은 기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성경과 다른 이교도적 문서 사이에 어떤 불일치가 발견될 경우, 자동적으로 성경과 반대되는 문서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위에 놓여지도록 하였습니다. 앞의 언급은, 의심의 이득은 비평가가 아닌, 문서 자체에 부여 되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으로 잘 알려진 개념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혹은 어떤 다른 책들)은 유죄라고 판명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여겨져야 한다는, 혹은 비 신뢰성이 강렬하게 보여지기 전까지는 믿을만한 책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7. 고대 셈 언어의 저자들이 글쓰는 기술 중, 반복과 되풀이를 사용하는 많은 예가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비평적인 학자들은 히브리 작가들이 같은 방법을 사용했을 때, 그것은 성경을 기록한 여러 명의 작가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가정합니다.
  8. 비평가들은, 성경과 비교할 수 있는 어떤 다른 고대 히브리 문서 없이,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성경의 저작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오류적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9. 지금까지, J 문서, E 문서, P 문서, D 문서 혹은 다른 어떤 독립적인 작은 부분만을 기록한 필사본 증거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고대 유대의 주석도 이러한 상상의 문서, 혹은 소위 이러한 이름 없는 저자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모세 5경의 필사본 증거는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모세5경이 모세의 기록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유대교의 증언은 이러한 증거를 확증합니다.

JEDP/ 문서 가설과 창세기의 평판(tablet) 모델은 같은 것인가?

창세기를 나누는 이러한 두가지 방법은 같은 것이 전혀 아닙니다. 평판 모델은 창세기에 11번 나타나는(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6:9, 37:2), 히브리 단어인 톨레도(toledoth) 라는 말에 기초해 있고, 이 단어는 창세기 전체를 하나의 역사로 묶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어 성경은 톨레도를  “this is the account” 혹은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아담, 노아, 셈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톨리도가 그것과 연결되는 문장 뒤에 오는 지 앞에 오는지에 대하여 동의 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문장 뒤에 온다고 결론 짓는 학자들과 동의 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 경우, 톨레도와 연관되어 있는 이름은 저자이거나, 그 부분의 관리인입니다. 어쨌든, 11번 사용된 톨레도는 창세기를 중요한 사건 및 창세로부터 모세까지의 사람들의 역사로서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JEDP 모델과는 다르게, 평판 모델은 창세기 본문의 연관성과, 성경이 제공하는 분명한 구분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구분은 구전이나, 창세기의 족장들로부터 그들의 후손에게 전해 내려온 문서 형태를 반영하며, 모세는 이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성령님의 영감 하에,  창세기를 완결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미 기록된 문서를 가지고 작업했다는 것이 매우 확실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두번째 톨레도(창세기 5:1) 는 “이것은 아담의 역사에 관한 책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책은” 일반적인 히브리 단어로 기록된 문서로 번역됩니다. 또한 세번째 톨레도(창세기6:9) 이후 홍수 기록은 항해 일지처럼 기록되었습니다. 오직 진화론적 사고만이 우리로 하여금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문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결론짓게 합니다.  최초의 사람들은 매우 똑똑했습니다: 가인은 도시를 건설했고 (창세기 4:17), 여섯 세대 후, 사람들은 악기를 만들 었으며,  원석을 채굴해서 금속을 제련하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창세기 4:21-22). 노아는 그의 가족들과 몇천 마리의 동물들이 일년에 걸친 홍수를 살아남을 수 있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모든 책들이 하나님이 인간 저자에게 한글자 한글자씩 불러주심으로 쓰여졌다고 결론짓게 만들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알려 주신 것은, 선지서와 같은 경우(예를 들면, 선지자가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를..”)에 자주 사용된 방법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저자의 목격한 경험담으로부터 쓰여졌거나(베드로후서 1:16), 저자의 연구의 결과로써 쓰여졌습니다(누가복음 1:1-4). 그리고 현대의 기독교 저자가 비 기독교 원천에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이 진짜로 한 발언을 발췌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의 저자들도, 잘못된 내용을 성경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비신앙인이나 성경 이외의 문서들을 발췌할 수 있었습니다(예를 들면, 여호수아 10:13, 사무엘하 1:18, 사도행전 17:28, 디도서 1:12, 유다서 14-15). 따라서 모세가 창세기를 집필할 때, 이미 존재했고,  잘 보존된 구전이나, 족장들로부터 전해진 기록된 문서를 사용했다는 것은 완벽하게 이성적인 사고입니다.

모세가 창세기의 저자임을 인정하고 문장을 톨레도에의해 나누는 사람들과는 달리, JEDP 지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따라 구분하고, 기껏해야 모세는 단지 이러한 문장들을 서로 상충되는 방식으로 꿰어 맞췄다고 이야기했거나,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열띤 JEDP 옹호자들은, 창세기와 모세 5경은 나중 세대에 많은 저자 및 편집자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모세는 이 책들을 기록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몇몇 반대 의견에 대한 답변

문서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많은 반대 의견이 제시되어져 왔습니다. 그것을 모두 다루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므로, 몇몇 일반적인 의견에 대한 답변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다른 반대의견들 역시 논리적인 결함이 있거나, 성경 본문을 주의깊게 살피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1. 모세는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썼을 리 없고, 따라서 신명기를 쓰지 않았다.

모세의 죽음은 신명기 34:5-1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의 마지막 구절들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다른 모든 문학작품들처럼,저자가 죽은 후, 특별히 책을 집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은 후, 사망 기사가 덧붙여 지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 사망 기사는 저자가 그 책을 기록했다는 주장을 효력없이 만들 수 없습니다.

신명기의 경우, 모세의 사망 기사를 쓴 사람은 아마도, 모세와 가까이 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도록 부름받았으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구약의 바로 다음 책을 기록했던,  여호수아 였을 것입니다. 비슷한 여호수아의 사망 기사가 여호수아의 끝에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편집자에 의해 추가되어 있습니다(여호수아 24:29-33).

  1. 창세기 12:6을 기록한 사람은, 모세의 죽음 훨씬 이후에 일어난 일인,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땅으로부터 쫒겨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의 큰 나무 앞에 이르렀는데 당시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2:6)

논점은, 가나안 사람들이 모세가 죽은 이후에 그들의 죄로 인해서 여호수아의 때에 그들의 땅에서 쫒겨났기 때문에, 모세 이후의 저자가 위의 본문을 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두 가지 측면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모세는 가나안 사람들이 그의 죽음 이후에 쫒겨날 것이라는 것을 모른 채 충분히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중인 왕국들 등 다른 요소들로 인해, 민족들이 그들의 땅에서 쫒겨나는 일들이 일반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단지 아브라함의 때에 그 땅에 누가 살고 있었는가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러나 또한, 위의 글은 성령의 영감을 입은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추가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편집자의 언급은 절대로 창세기가 모세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편집자는 가끔 죽은 저자의 책에 문구를 추가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누구도 고인이 그 책을 썼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1. 창세기 14:14는 단이라는 이스라엘 지명을 언급하는데, 이는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의 정복전쟁 기간 중 단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따라서 모세가 이 구절을 썼을 수 없다.

아브람은 자기 조카가 포로로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 집에서 낳아 훈련받은 사람 318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습니다. 한밤중에 아브람은 그의 종들을 나눠 그들을 공격해 쳐부쉈습니다. 다메섹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그들을 추격해..(창세기 14:14-15)

창세기 14:14은 단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문맥상 단은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을 취할 때 이스라엘 단 지파에게 주어진 지명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던, 갈리리 바다 북족에 위치한특정한 고대의 도시인 단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예수님의 때 바로 이후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아브람이 그들의 재앙에 대하여 들었을 때, 그는 그의 조카인 롯을 걱정하며, 소돔 사람들과 그의 친구 그리고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지체치 않고 달려가, 5일 만에 단 근처에서 앗수르인들을 공격합니다. 단은 요단의 다른 샘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장하기 전, 아브람은 그들이 아직 잠을 자고 있을 때, 그들이 다가올 공격을 의심하고 있지 않을 때,  그들을 베어버립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았건, 너무 술취해서 싸울 수 없었던 이들은 도망갔습니다.

이 특별한 장소는 아브라함에게 요단의 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심판(judge)” 을 의미하고, 그녀의 하녀의 아들의 이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창세기 30:6), 라헬이 그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라헬은 이사건을 하나님이 마침내 심판을 돌려, 그녀에게 아들을 허락하시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이곳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그의 적들을 심판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만일 “단 근처, 이는 요단의 다른 샘의 이름이다”라는 것이 후대의 성령의 영감을 입은 편집자에 의해 추가되었을지라도, 그것은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 창세기 36:31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는 모세의 훨씬 후대의 일이므로, 모세는 이것을 썼을 리 없다.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창세기 17:6), 야곱(창세기 35:11)에게 이스라엘에 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이 이스라엘 국가에 관해 계시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모세 자신 또한 신명기 17:14-20에 이스라엘이 왕을 갖게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따라서 왕들이 곧 세워질 것이라는 것은 모세에게 있어서 이미 상식이었습니다.

결론

이스라엘이 이집트 포로 생활을 끝낸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이전에 광야에서 헤매는 동안(약 1445-1405 B.C.) 모세가 모세 5경을 썼다는 많은 성경적, 그리고 성경 외적인 증거들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다른 비평가들의 견해와는 달리, 모세 5경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500 B.C.). 모세가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지적으로 움추러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적하는 자들이야말로 심사숙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실을 정직하게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완벽한 정확성과 글의 완벽한 권위를 보장하시는성령님의 감동하심 아래에서, 모세는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의 기록은, 그들의 가르침과 복음의 진리를 모세의 책들에 나타난 진리(6일 창조에 관한 진실, 아담의 범죄시 온 창조 세계에 닥친 저주,노아의 때의 전 지구적, 격변적 홍수에 의한 심판)에 기반을 두었던, 예수님과 신약의 사도들에 의해서 지지되었습니다.

모세가 모세 5경을 기록하였다는 것에 대한 공격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 신뢰성, 권위에 대한 공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지적인 자만감에 빠져, 의식중 혹은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림으로 그들 자신의 생각과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정당화하려는,  교회 안밖의 틀리기 쉽고, 죄악된 비평가들 대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3:4에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해도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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